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 서정준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제법 컸지만, 나비석을 제외한 1, 2층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문득 '이 객석이 꽉 채워진다면 배우들이 얼마나 기분 좋게 공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오는 4월 14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 6.25 전쟁까지를 배경으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 윤여옥, 최대치, 장하림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을 다룬다.

김지현, 문혜원, 박민성, 김수용, 김보현, 테이, 이경수 등이 출연하며 주인공 못지 않은 존재감을 선보이는 구준모, 조태일 등의 배우들과 함께 김진태의 묵직한 연기가 힘을 보탠다. 앙상블에도 가희, 한수림 등 타 작품에서 주조연을 맡았던 배우들과 DIMF 뮤지컬스타 출신의 이주연 등의 신예까지 골고루 섞여 눈에 띄는 연기를 선보인다.

<여명의 눈동자>는 공연이 올라가기까지 상당한 애로사항을 겪은 작품이다. 당초 블록버스터 창작 뮤지컬로 개발이 되던 와중 투자자와의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하며 공연이 아예 엎어질 뻔했다. 그 때문에 2월 개막이 예정돼있다가 3주간 개막이 밀리며 지난 1일에서야 겨우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계에서 금전적인 문제로 공연 취소가 되거나 공연 도중 조기폐막을 하는 등의 문제들은 꽤나 자주 있는 편이다. 하지만 <여명의 눈동자>는 작품 규모를 축소하고 제작사, 스태프, 배우들이 힘을 모아서 공연을 올렸다. 계약금 외에는 티켓 판매 수익을 정산 후 분배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는 그렇게까지 해서 이 공연을 올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유명 드라마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작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은 흔한 편이다. 통상 수백 페이지, 수십 시간의 러닝타임을 통해 촘촘하게 구성한 서사를 2, 3시간으로 압축할 경우 관객과 작품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 서정준

 
그러나 <여명의 눈동자>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의외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우선 음악이다. '음악이 좋다'는 말은 요즘 뮤지컬에서 빼놓지 않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는 빈약한 서사를 다채로운 음악과 배우들의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메꾼다는 말이기도 한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음악은 서사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데 성공했다.

관객들에게 눈에 띄는 넘버를 내놓기 보다는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드라마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고조시켜준다. 드라마에서 BGM을 통해 극이 완성되듯 <여명의 눈동자>도 그러한 맥락에서 음악을 활용한다.

이는 빈약한 무대와 맞물려 오히려 배우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배우들은 대체로 텅 빈 무대 위에서 한 두 가지의 소품을 놓고 연기한다. 의상이나 소품 역시 눈에 띄게 적다. 조명도 거의 배우들의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강하게 쓰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미니멀리즘한 무대를 구현했다.

물론 이 작품이 정상적인 대극장 뮤지컬이라면 결코 이런 부분을 칭찬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은 좋지만 만듦새가 모자라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겠지만, <여명의 눈동자>는 최고 등급의 좌석인 R석과 나비석이 7만 원짜리인 작품이다. 이 정도의 만듦새라면 나쁘지 않다고 봐야할 것이다. 즉 제작진의 투혼이 높은 가성비로 이어졌다고나 할까.

또 앞서 말했듯이 음악이 더해진 서사는 분명하게 박진감 넘친다. 앞서 말했듯 극의 방대한 서사를 모두 표현할 순 없기에 주요한 순간마다 배우들을 투입시키는 느낌인데도 어색하지 않아 배우들의 강한 감정 연기가 결코 '투 머치' 하지 않다. 이는 배우들의 노력에도 크게 박수를 보내야 할 부분이다. 그덕분에 '위안부' 윤여옥과 최대치의 첫 만남부터 이어지는 스토리들이 150분 동안 쉴새 없이 흐른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 서정준

 
작품의 주요 스토리라인이 3.1 운동 100주년 기념을 맞이한 올해 더욱 와 닿는 면도 있다. 특히 해방부터 제주 4.3 사건, 6.25 전쟁 등의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도 매력적이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작품을 비롯해 3.1 운동에 관계된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여명의 눈동자>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만 흠잡을 부분도 있다. 보통의 뮤지컬 문법이라면 2막은 사건이 해결되어야 할 텐데 2막 역시도 인물들의 서사가 워낙 길고 방대하기에 이를 겨우겨우 뒤쫓는 느낌이 든다. 반면 1막은 빠른 전개와 인물에 대한 집중도가 매력적이지만, '위안부'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조차 여성 댄서들의 섹시한 춤이 들어간 쇼 스타퍼가 필요한지는 크게 의문이 든다.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가장 부적절한 장면이었다고 보인다. 경쾌한 파티나 흥겨운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남자 배우들도 응당 같이 들어갔어야 할 장면이다.

그러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볼만한 작품이다. 공연을 보고나면 확실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가성비'와 '가심비'를 지녔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커튼콜 때 힘찬 박수를 보내다보면 관객들 역시 기자처럼 '이 극장이 꽉 찼으면 더 좋았겠다' 싶어질 거다. 이 작품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여명의 눈동자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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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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