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1975년 UN에 의해 공식 지정되었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2018년에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세계적으로는 그 지위가 다릅니다. 구 공산권이라 할 수 있는 동부유럽의 많은 국가들, 아프리카 남부의 몇몇 국가들, 베트남과 북한까지 공휴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고, 중국 등 몇몇 나라는 여성만 공휴일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날의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910년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주창해 이듬해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하고 조직해 기렸습니다. 1857년과 1908년 3월 8일에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벌인 대대적인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선거권은 여성의 지위 향상,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는 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즉, 여성으로서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 말이죠. 그런데, 과연 지금 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요?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과 생각들을 영화로 간략히나마 들여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올해 2019년까지 4년 동안, 매해 나온 1편의 대표적 영화들을 뽑았습니다. 투철한 문제의식, 현실적인 생각, 여성만의 관점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 참정권의 역사, <서프러제트>(2016)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UPI코리아?

 
20세기 초 영국,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 모드 와츠가 여성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는 구호 하에 폭력적인 활동을 합니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모드 와츠가 '서프러제트'와 함께 전진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인물인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역사적 사실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기반으로, 여성으로서의 기본권에 대한 투철한 문제의식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이들의 대단한 여정이 빛납니다. 마치 '세계 여성의 날'의 시작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네요.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여준 건 여성 참정권 운동의 좌절과 전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녀평등 쟁취와 실현에의 물음일 것입니다. 여성참정권을 위해 많은 사람이 참으로 오랫동안 끊임없이 투쟁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겪은 차별, <히든 피겨스>(2017)
 
 영화 <히든 피겨스> 포스터.

영화 <히든 피겨스>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초 미국, 위대한 우주 비행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천재 흑인 여성들 3명의 이야기를 진지하지 않고 유쾌하게 그려내어 색다른 빅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들은 각자 관리자, 엔지니어, 로켓 발사 담당자로 출중한 능력을 뽐내지만, '흑인 여성'이라 이중 차별과 멸시를 당하죠. 

영화는 굉장히 유려하게 할리우드식 웰메이드의 수순을 따라갑니다. 차별 당하는 인물과 차별을 이겨내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하지만 이면을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들 곁엔 백인 남성 상사가 있었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들이 받는 차별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가 없는 체제였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들이 '출중한 실력을 갖춘' 여성이 아닌 일반적인 '여성'이었다면 과연 백인 남성 상사가 차별 철폐에 앞장섰을까? 이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고 특수한 게 아닌가? 나름 독특함이 있는 영화였지만, 보다 전투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게 아쉬움 아닌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육아는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툴리>(2018)
 
 영화 <툴리> 포스터.

영화 <툴리>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두 아이를 키우는 마를로는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그녀는 차원이 다른 전쟁에 돌입하는데, 관심 없는 남편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게 보모를 추천하고 보모 툴리가 옵니다.

영화 <툴리>는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헌사인 동시에 가장 끔찍한 현실을 그린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육아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한 아이 키우기 영화는, 사실 엄마를 위한 영화이자 엄마만 보아야 하는 영화여서는 안 됩니다. 엄마 아닌 이들이 보아야 하는 영화이죠.

한편,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만 아이를 키운다는 전통적이고 비상식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마인드가 걸립니다. 과연 엄마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일 뿐인가, 그렇다면 여자는? 10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서프러제트>의 주인공이 들었던 '여자는 남편의 아내이자 엄마의 아이'일 뿐이라는 말과 다를 게 뭔가?

이 영화를 보며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양육자는 반드시 여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남자도 키울 수 있고 키워야 하죠. 그와 별개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엄마이자 여자는 배려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자가 전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궁 안 여성들의 권력 싸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포스터.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절대권력의 여왕 앤과 앤의 조력자 사라 그리고 사라의 하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사랑, 욕망이 휘몰아치는 관계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사라와 애비게일은 여왕의 여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죠. 여왕 앤은 허울뿐인 권력을 누리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요.

18세기라면 참으로 옛날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여성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할 것 같이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한 나라를 이끄는 절대권력과 측근이 모두 여성입니다. 영화는 치밀하고 치졸하고 치열한 불편함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그런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게 하지만 말이죠.

비단 권력뿐이 아닙니다. 사랑과 질투도 여성들끼리, 욕망에 몸부림치며 광기를 내뿜는 것도 여성들끼리, 밑바닥으로의 한없는 추락과 파멸 그리고 불안하고 불쾌한 성공과 유지 또한 여성들끼리입니다.

남자로서 이 영화가, 여성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이 모습이('옛날 여성'이라는 시대적 의아함이 아닌) 전혀 불쾌하거나 의아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제 개인의 생각 덕분일까요. 혹은 2019년 지금 시대의 정신 덕분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이 기막히게 완벽한 영화 덕분일까요.

여기까지 '세계 여성의 날'에 볼 만한 영화 4편을 선정해 봤습니다. 극 중 여성 서사를 다루는 방향이 각자 다른 영화들을 두루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동등해야 마땅하지만 때로 동등하지 못한 상황을 돌아보면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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