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2014년 부산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이후 박근혜 정권이 국내 영화제 출품작들을 사전에 파악해 문제작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등 사실상 검열을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박근혜 정권은 <다이빙벨> 논란 당시 문화융성위원장이었던 김동호 위원장을 활용해 압박하려 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김동호 위원장의 역할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류재림 전 영상자료원장은 블랙리스트 실행 외에 비위 혐의도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발간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이하 백서)에 담겨져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공동위원장 도종환 신학철. 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2017년 7월 31~2018년 6월 30일까지 활동과 결과물을 정리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를 지난 27일 발간했다.
 
본책 총 4권, 부록(사건별 진상조사 결과보고서) 6권 등으로 구성된 백서에는 조사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진상이 확인되지 않은 사안들도 많았지만, 지난해 5월 종합발표 때 공개되지 않은 세부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김동호 위원장,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제재에 역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2014년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청와대의 관여 아래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당시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또한 <다이빙벨> 상영금지(차단) 및 이 영화의 상영으로 인한 제재 행위에 관여하였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백서에 따르면 이런 판단의 근거는 2017년 9월 조사과정에서 이뤄진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현 이사장)의 진술과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고합102 증거기록 중 당시 문체부 1차관 김희범의 진술조서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2017년 조사 당시 진술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위원회가 과연 개입을 했느냐, 안했느냐는 문제가 있는 데 내가 알기로는 개입을 했다"며 "당시 문화융성위원장이 김동호인데 감사방식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협조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전 집행위원장은 "2014년 10월경에 부산국제영화제 행정지도 자료를 들고 부산 정무특보라는 사람이 문화융성위원장을 찾아와서 '영화제가 이렇게 문제가 많고 이용관도 문제가 많으니 물러나야 될 것 같다'라고 하자 김동호 위원장이 '이걸 검찰에 가져가야지 왜 나한테 가져 왔냐'고 답했다고, 김동호 위원장이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고 밝혔다.
 
 김희범 전 문체부 1차관 수첩 메모

김희범 전 문체부 1차관 수첩 메모ⓒ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사건2017고합102 증거록 중 당시 문체부 1차관 김희범의 수첩에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이름 아래 김동호 위원장 이름과 다이빙벨 다큐, JTBC 손석희, 업무 방해죄 고발/고소 등이 기재돼 있었다.
 
김희범의 진술조서(2016. 12. 31.)에는 "김소영 비서관이 자신에게 김동호 위원장으로 하여금 이용관 위원장에게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으나, 융성위는 대통령 직속이니 청와대에서 직접 김동호 위원장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런 내용을 종합해 김동호 위원장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조사권한 및 기한의 부족으로 이에 대해 충분히 규명해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다이빙벨> 제작 및 투자 배급 과정에 깊이 관여한 영화계 인사는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영화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아닌 김동호 위원장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 당시 공항에서 영화사로 오셔서 사무실 스크린을 통해 <다이빙벨>을 본 후 크게 문제가 될 내용도 담지 않았기에 '부산 상영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봐야할 영화다'라고 했다"며 "이후에도 상영여부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4년 부산영화제 개막 리셉션에서 당시 교문위 상임위원장을 지낸 한OO 의원이 영화제 인사에게 반말로 '뭐 그런 영화를 트냐'라고 항의했던 사실도 백서를 통해 드러났다. 2016년 집행위원 임기만료에 따른 재위촉 승인, 요청 과정에서 배우 문성근만 제외됐던 내용도 기록돼 있다.
 
사전에 출품작 파악해 영화제 검열
 
<다이빙벨> 상영은 이후 국내 영화제들에 대한 사실상의 검열로도 이어졌다. <다이빙벨>, <불안한 외출> 상영을 막지 못한 문체부 담당 과정은 징계를 받아야 했다.
 
백서에 따르면 '문제영화' 상영을 가로막지 못하거나 사전에 '검색(검열)'하지 못한 이유로 문체부 공무원에 제재를 가했고, 문체부 공무원들은 각종 국내 개최 국제영화제의 상영작에 대한 '검색(검열)'을 강화하여 보고해왔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에 공개된 문체부의 국제영화제 관련 보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에 공개된 문체부의 국제영화제 관련 보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예를 보면 2015년 8월 제7회 국제다큐영화제에 대해서 "국가정체성이나 국가수반의 명예를 훼손하는 작품"에 대해 1차 걸러낸 뒤, '세월호' 등을 주제로 한 작품에 대해 추가로 보고하고 있다. 2016년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련해서는 영화 <불안한 외출>, <자가당착>, <다이빙벨>, <레드헌터> 등 상영과 관련하여 향후 국제영화제 지원 사업 평가 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제시(보고)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영상콘텐츠산업과에서 영화제 등에서 영화 상영과 관련하여 '이념성, VIP를 비하한 영화, 세월호 관련된 영화' 등 특이사항을 정리하여 청와대로 보고할 문건을 작성한 바 있다"며 "'문제 영화'를 찾기 위해 (영화제나 기관으로부터) 상영작 목록을 제출받을 때, 줄거리나 개요(시놉시스)를 쓰게 하여 세월호 관련이나 박근혜 관련이라는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한다"고 진술했다.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출한 자료 중에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여성영화제, 부천판타스틱 국제영화제 등 각 국제영화제의 상영 영화를 검토해 보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국가정체성 훼손', '국가수반의 명예를 훼손'하는 작품의 상영 여부 그리고 특별히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보고를 담당한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관계자는 "<다이빙벨>로 인하여 왜 그것이 상영작에 올랐는지 먼저 파악하지 못 했는가 문책 등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영화제 측에서 행사개요와 출품작 줄거리 등이 오면, 사회여론화될 소지가 있는 작품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이를 추슬러 사무관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는 BH(청와대) 등 윗선의 관심사이다 보니 작성하여 보고하였을 것입니다"라고 진술했다.
 
당시 국내 영화제들은 작품을 통해 정권에 저항적인 모습을 나타냈는데, 2017년 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이 25억으로 크게 낮아진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류재림 전 자료원장 블랙리스트 실행에 비위 혐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상자료원ⓒ 성하훈

 
한국영상자료원 류재림 전 원장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모은영 전 프로그래머를 인사조치해 불이익을 준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류 전 원장은 이를 줄곧 부인해 왔으나 블랙리스트 조사위는 블랙리스트에 따른 부당한 인사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백서에 따르면 "문체부 및 자료원 직원들의 진술과 입수 자료들을 통해 확인된 바, 문제 영화와 특정 영화인을 배제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문체부를 통해 자료원으로 하달됐으나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에서 문제 영화 배제 및 봉준호, 이송희일 감독 초청 배제 등의 지시를 모은영이 거부했고, 인사발령 직전 <위로공단> 상영 관련하여 문체부의 상영 배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던 사례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단지 조직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중간관리자 양성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사조치라고 보기 어려우며, 모은영을 문제가 되는 프로그램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법으로 승진시켜 다른 팀으로 인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류재림 전 원장은 이에 대해, "상황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보복성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백서는 "박근혜 선거 캠프 출신으로 영화 분야 전문가가 아님에도 박근혜 정부에서 자료원장으로 임명되었던 점,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 있다고 외부적으로 공표하였던 점을 미루어 보면,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유일하게 자료원 직원으로 이름을 올린 모은영에 대한 인사조치는 원장의 인사권을 활용한 특정 직무에서의 배제, 인사에서 불이익을 준 차별적 조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백서는 또한 "특히 자료원의 프로그래머는 '순환보직'에 어울리지 않는 직무라는 자료원 직원 다수의 진술과 '프로그래머'로서 모은영의 역량에 대해 고전 영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기획력과 기관 및 영화인들과의 폭넓은 네트워크, 다양성영화, 독립영화 관련 기획에서 강점이 있다는 직원들의 공통된 평가가 인사 조치의 부당성을 역으로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류재림 전 영상자료원장

류재림 전 영상자료원장ⓒ 한국영상자료원

 
류재림 원장이 재임 과정에서 직원들에 대한 부당인사 조치 등을 한 것과 관련 문체부의 감사를 받았고 퇴진했는데. 이 내용도 백서에 일부 공개됐다.
 
백서에 공개된 문체부 '2018년 4월 영상자료원장 비위혐의 조사결과 보고'에 따르면, 류재림 원장의 비위행위에 대해 '지인 등 특정업체와의 계약 지시' 및 '지시를 불이행한 담당자를 사전 인사예고도 없이 부당인사 조치', '사업과 관련 없는 업적 평가를 거론하여 사업담당자가 공정한 직무수행을 하는 데 지장을 준 사실'이 확인되었고, '기관장으로서 제반 규정을 준수하여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직무 수행을 부적절하게 하여 직원과의 신뢰를 잃었음'이 감사 결과에 적시되어 있다.
 
문체부 감사 결과는 블랙리스트와 직접적 관련성은 없으나, 류재림 원장의 부당한 지시와 이와 연계한 부적절한 인사조치가 여러 차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백서는 "류재림 원장은 '특정업체와의 계약과 관련하여 직원에게 관련된 소개만 했을 뿐 계약지시를 내린 적이 없고, 담당자를 부당하게 인사 조치하지도 않았다'는 이의를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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