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창의적인 사람들,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다. 스릴 넘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내가 이렇게나 운이 좋다니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지금까지 한 카메오 연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작년 11월 작고한 '마블의 창시자' 스탠 리의 회고다. 그가 운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마블의 영화들이 확실히 창의적이라는 것 하나는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사실 슬슬 지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2008년 <아이언맨> 이후 10년 넘게 지속돼 온 마블의 권세와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지칠 줄 모르는 확장세 말이다.

올해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오른 <블랙팬서>는 '흑인 히어로' 영화로서 그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은 경우다. 비록 미술상과 의상상에 그쳤지만, 마블로서는 흥행과 비평 모두를 만족시킨 작품으로 기록될 듯싶다. 어디 그뿐인가. <어벤져스>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수렴되는 MCU의 세계관은 개별 히어로물에서는 장르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앞서 <앤트맨> 시리즈는 가족 코미디 영화로서의 면모를 과시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복고를 품은 B급 SF 장르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이번엔 DC <원더우먼>에 이은 '여성 히어로의 탄생'이다. 5일 언론 시사회를 거쳐 6일 개봉한 <캡틴 마블>는 이러한 스탠 리의 창의적인 경험을 관객들 역시 거부할 수 없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게 해 준다.

DC <원더우먼>에 성공적인 여성 슈퍼 히어로 영화

역시나 시작은 미비했다. '캡틴 마블'로 거듭나기 이전, 외계 행성 크리의 정예부대 스타포스의 전사였던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는 멘토이자 '비어스'라는 이름을 준 사령관인 월터 로슨(주드 로)에게 종종 핀잔을 듣는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크리의 숙적인 탈로스 무리와 전투에서 잡힌 댄버스는 과거의 기억을 접하게 되고, 결국 탈로스를 쫓아 과거 기억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지구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는, 1995년의 지구에서 만난 쉴드 요원 닉 퓨리(사무엘 L. 잭슨 분)와 뜻하지 않은 협력과 모험, 슈퍼 히어로서의 자각을 경험하게 된다.

"<캡틴 마블>이 중요한 이유는 여성이 주연이고, 여성이 맨 앞줄과 정중앙에 서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캡틴 마블>은 분명 소녀들뿐만 아니라 소년들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 시리즈에서 역시 '여성 전사'인 에이전트 메이를 연기 중인 중국계 배우 밍나 웬은 <캡틴 마블>의 의미를 위와 같이 정의했다.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한 달 전에 공개된 <캡틴 마블>은, 이렇게 마블의 첫 번째 '여성 히어로물'에 쏟아진 (남성들의) 소셜 미디어상의 여러 잡음들을 뒤로 하고 DC <원더우먼>과 함께 성공한 오락영화로 남을 공산이 커 보인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캡틴 마블>은 기존 마블 히어로물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여성이라서 더 특별하지만, 결코 그러한 이점이나 차이에만 기대지 않는다. 여성이라서 나타나는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그 매력을 부드럽게 승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분명한 장점이자 매력이다.

무엇보다 '반은 인간, 반은 크리'로 살아가던 캐럴 댄버스의 영웅 탄생 서사에 충실하면서도 잃어버린 기억 찾기라는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캡틴 마블>은 이러한 여정과 고난을 딛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성'이라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페미니즘' 서사임을 숨기지 않는다. 여성 히어로를 관능적인 시선과 같이 성적 대상화로 소비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더불어 히어로들의 감정선을 잘 따라잡기로 유명한 마블이니만큼, 캐럴이 기억을 되찾고 '캡탄 마블'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 역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하다. 과거 동료 전투기 조종사였던 마리아(라샤나 린치)와 그 가족과 만남과 화합도 이를 강화하는 요소다. 기존 마블 히어로물에서 찾기 쉽지 않았던 '감성'이랄까.

'빌런'으로 출발, 이후 위상이 변화되는 스크럴 족의 묘사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끊임없이 얼굴을 변형하는 이들은 우주 전쟁의 피해자이자 일종의 우주 난민이다. 이들과 협력하는 여성 슈퍼 히어로의 묘사 역시 <캡틴 마블>의 차별성에 기여한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캡틴 마블>의 재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기대케 하다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스케일을 자랑하는 만큼, 액션의 다양성도 충만하다. 액션만 놓고 보면, <아이언맨> 시리즈의 그것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SF적 화면을 매끄럽게 합쳐 놓은 듯한 인상이다. 초반부 다소 설명적이고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후반부 액션이 몰아치면서 전반부의 약점을 상쇄한다고 볼 수 있다.

코미디는 닉 퓨리가 맡는다. MCU 영화들에서 시종일관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로 '떡밥'을 투척하던 사무엘 L. 잭슨은 1990년대로 돌아간 이 복고풍 영화에서는 기존의 껍질을 벗어버린 채 마음껏 '드립'을 날리며 개그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뽐낸다. 짧은 순간 등장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고양이 '구스'와의 화학 작용이 그 좋은 예.

'젊어진' 닉 퓨리의 얼굴을 창조하기 위해 제작진은 몇 달간 컴퓨터 앞에 앉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CG 작업에 매달렸다는 후문. 얼굴 변신에 능한 스크럴 족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던 CG 아티스트들이 사무엘 L. 잭슨과 콜슨 요원 역의 클락 그레그의 얼굴을 만지고 또 만지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길.

그리하여, 2개의 쿠키를 남긴 <캡틴 마블>은 다음 달 개봉하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와의 연결고리와 그간 뿌려왔던 '떡밥'들을 제대로 회수하며 끝을 맺는다. 캡틴 마블이 "나 여기 있어!"라며 어벤져스 동료들에게 외치는 순간, 관객들은 여지없이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관람하기 위해 티켓을 끊는 자신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마블의 창의성이 이렇게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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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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