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스틸 사진

영화 <항거> 스틸 사진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여성 독립운동가가 이렇게 많았어?" 영화관을 나오면서 관객들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는 물음이 가득했다. '부끄럽게도 유관순 말고는 잘 알지 못했다'는 영화 후기들도 가득하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 지난달 27일에 개봉한 영화 <항거>는 이 평범한 '사실'을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유관순이 갇혀 있었던 8호실 안에는 '파주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임명애도 함께였다. 유관순이 아우내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것처럼 임명애는 임신한 몸으로 파주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킨다. 이후 배가 불러 감옥에 들어와서 잠시 아이를 낳으러 감옥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 감옥에서 애를 기른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8호실 수인들과 유관순은 임명애의 아이를 정성을 다해 돌봐준다.

영화와 실제가 다른 사실이 있다면, 임명애 열사가 유관순보다 더 늦게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임명애 열사는 유관순의 죽음을 목격한 증인이라고 한다.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항거> 속에서 8호실의 임명애 열사를 연기한 배우 김지성은 연기하는 내내 "누가 될까봐 송구스러웠다"고 했다. 5일 오후 서울 도렴동 <오마이뉴스>에서 8호실 여성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인, 임명애 역할의 배우 김지성을 만났다.

"분량과 상관없이 무게감은 다 갖고 있어"

배우 김지성 역시 많은 관객들처럼 "유관순만 알았지 8호실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늦게 알게 돼 죄송하지만 이제라도 이 영화를 통해서 8호실의 수인들을 알게 돼 다행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존 인물, 그것도 여성 독립운동가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항거> 촬영에 들어가기 전 직접 임명애 열사가 만세 운동을 일으킨 파주의 한 초등학교와 서대문 형무소에도 직접 가봤다고 한다. 임명애 열사의 존재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김지성은 "하나하나가 다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항거>는 유관순이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8호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각 지역의 유관순이더라. 권애라(김예은 분)가 개성의 유관순이고 김향화(김새벽 분)가 수원의 유관순이라면 임명애는 파주의 유관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분량하고 상관없이 갖고 있는 무게감은 다 같았다고 본다. 임명애 열사는 아이가 함께 있었는데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무게감 때문에 촬영장에서도 웃고 떠들었지만 뒤로는 부담감이 느껴졌다. 연기적인 기량을 뽐내야 한다기보다는 이 분을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대사 하나하나를 심사숙고했다.

이순신 장군을 맡은 최민식 배우는 어떠셨을까. 실존 인물이라는 무게감을 처음 겪어봤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닌 것 같다. 임명애 열사님을 관객들에게 잘 전해드려야 할 텐데.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특히 유관순을 '밀고'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날 밤에는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긴장했다고 한다. 

"다른 부분은 거의 다 실화인데, 내가 밀고를 하는 장면은 실화가 아니다. 감독님에게 '이 분이 그러실 분이었을까요', '유족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조심스럽다'고 그랬는데 촬영을 하면서 느꼈다. 감방 안에서 2주동안 갇혀있다시피 하면서 연기를 하는데 '내가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계기였다. 애까지 배면서 독립운동한다고 밖에서 날 알아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기적인 건 아닐까, 가족을 내 신념 때문에 고생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8호실의 수인들 중 많은 이들이 주동자들이니 '내가 아니면 누가 했겠느냐'는 생각을 했겠지만 고문당해서 오고 그러면 현실적으로 흔들림이 있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누구도 돌을 던지지 못할 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게 임명애더라. 그렇기에 감독님께서 그런 미션을 주신 것 같다. 나는 굶어도 상관 없는데 애는 자랄 것이고 현실적으로 두려움이 크지 않겠나.

감방 안에서 다른 수인들에게 '밀고자'로 지목당한 뒤 감독님께서 내가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긴장했다. 딱 지목을 당했을 때 내가 가만히 서 있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부터 '이 여자가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을까' 싶었다. 신념이 투철했던 여자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지 않나. 그 자괴감을 이루 말할 수도 없었을 것 같고, 관순이 고문을 당해 몸이 괴사돼 왔을 때는... 내가 베드로가 된 것이다. 신념을 저버리는 죄의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 건지를 눈앞에서 보여주니.

임명애의 1년 6개월 수감기간 동안 그런 순간들이 매번 파동처럼 일어났을 생각에 온몸이 찌릿찌릿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촬영하는 내내 잠을 편하게 못 자겠더라.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감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김지성은 인터뷰 질문에 답변을 할 때 종종 '임명애 열사'와 '나'라는 단어를 혼동해서 썼다. 그가 촬영하는 동안 얼마나 <항거>에 빠져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8호실에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구나. 모두 유관순의 아우라를 갖고 있었구나 싶었다."

"'전 할 거예요'라고 말한 뒤 대본 받아"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가 <항거>에 합류하게 된 계기에는 "조민호 감독의 '급콜'"이 있었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조민호 감독님이 전화를 걸어서 갑자기 영화에 들어가게 됐다고 하시더라. 저예산으로. 조민호 감독님은 예전부터 내가 하는 공연을 많이 봐주셨던 감독님이어서 잘 알고 있었다. 항상 같이 작품 해보자고 했는데 15년 만에 이렇게 연이 닿게 됐다.

이미 (고)아성이랑 (김)새벽이랑 (정)하담이랑 (김)예은이랑은 캐스팅이 다 된 것 같더라. 유관순 이야기를 찍을 건데 감독님께서 스케줄이 맞느냐고 물어보셨다. 마침 딱 (영화 촬영 기간인) 2주가 비어 있었다. 유관순 이야기라니까, (삼일 운동) 100주년이니까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 볼 것도 없이 '전 할 거예요'라고 말하고 대본을 받았다."


그렇게 대본을 받아들고 김지성은 차례로 대본을 두 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의미는 있겠으나 대중성이 없어 관객들이 보러 와주실까" 싶었다고 한다. 한 번 더 읽었는데 "울림이 느껴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영웅담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영화에 유관순을 제외한 나머지 수인들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모두 각 지역의 유관순들이다. 그 사람들의 영웅적인 기개가 보이는 게 아니라 버티고 살아내는 사람들, 그런 게 참 좋았다."

영웅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감방 동지'로서 마주보니 자연스럽게 호칭도 '관순아'가 됐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내가 높으신 분을 관순이라고 불러도 되나? 이렇게 불러도 되는 이름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실제로 그때 이랬겠구나 싶더라. 그런데 어느새 감방 동기가 돼 '관순아', '애라야', '향화야'라고 서로를 부르고 있더라. 분위기가 돈독했다.

정말 (고)아성이가 관순이처럼 보이니 어리고 짠해 보였다. 실제 대사에 없는 애드리브까지 나왔다. 관순이가 "예쁜 아기가 나왔다"고 말해서 "나중에 (관순이도) 애를 낳지 않겠냐"는 말을 툭 던졌는데 신이 끝나고 나니 너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실제로 애를 낳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지 않나. 촬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너무 나더라. 그런데 감방 안에 있는 우리는 앞날을 모르니까."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김지성 배우는 8호실 수인들이 감방을 빙빙 도는 신, 추울 때 "꽃봉오리처럼" 서로 뭉쳐서 추위를 견디는 신을 좋은 신으로 꼽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방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를 향해서 지금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1919년 3월 1일에 전국민이 만세 운동을 했는데 집집마다 한 명씩 부상을 당했거나 감옥에 갔거나 죽음을 당한 것이다. 무력 탄압을 했으니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 민주화 운동도 광주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이를 대변한 게 만석모(김남진 분)의 대사인데 유관순을 모두가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서울 유학 갔으면 공부나 하지 동네 들쑤셔놔서 왜 내 아들 죽게 만드냐'고 한다. 그렇게 동네 들쑤신 분들이 다들 8호실에 계신 것이다. 서로에게 위로도 받았겠지만 자책감이 얼마나 컸겠나.

그 사이에 1년 동안 밖에서 지낸 사람들은 일상을 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삼일운동 1주년, 1920년 만세 운동을 다시 터트린 게 다른 데도 아닌 여자 8호실이었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만세운동을 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 속에서는 관순이가 '빨래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아마 실제로는 각자 8호실에 있던 분들이 1주년을 세고 있지 않았을까? 그 행동이 정말 영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도 좋다는 것이니까.

아성이가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데 심장이 벌렁벌렁 뛰면서도 호흡이 탁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독립선언문의 글자 하나하나가 다 가슴에 박히더라. 이 순간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자체의 감동이 너무 커서 어떤 단어로도 형언이 되지 않는다.

감독님이 '컷 오케이' 하자마자 전부 다 무릎꿇고 주저 앉아서 울었다. 스태프 분들도 우시더라.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느끼는 몫들이 각자 다 달랐을 것이다. 선열들에게 감사했다. 이렇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 아직도 그 울림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언제 대한독립만세를 이렇게 뜨겁게 외쳐보겠나."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배우 김지성 역시 "내가 당시를 살았으면 어땠을까"를 무수히 많이 곱씹어봤다고 한다.

"촛불집회를 1회부터 끝까지 거의 다 나갔다. 그때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가 6월 민주 항쟁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 거기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세상이 좋아지고 그분들 덕에 촛불 하나 들고 평화롭게 집회를 하지만 그때였으면 어땠을까. 못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삼일운동 당시에 전국에서 한 1/10 정도는 태극기를 든 것 같은데 또 당연히 하지 않았을까? 임명애 열사도 내 자식이 나오는 이 세상이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봉장에 섰을 테니까, 그 동기가 절박하고 절실했으니까."

이어 김지성 배우는 기자에게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일제 강점기 때 살았다면 삼일운동을 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들은 다들 했을 것 같다. '나였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항거:유관순 이야기' 배우 김지성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배우 김지성이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항거 유관순 임명애 김지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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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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