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코리아] 선미 인터뷰 신곡 '누아르' 발표 예정인 선미

▲ [빌보드코리아] 선미 인터뷰 신곡 '누아르' 발표 예정인 선미 ⓒ 빌보드코리아

 
선미의 시작은 원더걸스(Wonder Girls)였다. JYP 출신 5인조 걸그룹은 2007년 'Irony'로 데뷔해 국민가요 'Tell me'를 탄생시켰고, 그로부터 2년 뒤 발표한 'Nobody'가 (현아가 빠지고 유빈이 들어온 시기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Hot 100 차트에 오르면서 케이팝을 가시화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국으로 날아가 그곳의 음악 시장을 체득, 체화하기도 한 선미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음악적 발판을 촘촘히 채워나가고 있었다.

JYP 프로듀서 박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솔로로 데뷔한 선미는 더욱더 독해진 향기로 다시 가요계의 문을 두드렸다. '24시간이 모자라'와 '보름달'로 치명적인 매력을 선보이면서 솔로 가수로서 성공적으로 활동을 마친 선미는 원더걸스의 자작곡이자 사실상 마지막 활동 곡이었던 'Why so lonely'를 뒤로 한 채 오랜 보금자리였던 JYP를 떠났다.

선미가 달라진 건 이때부터였다. '막춤'을 추고 바닥을 구르며 손가락 욕을 하는 선미는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는 과감한 모습이었다. 항상 예쁘고 청초하기만 했던 아이돌 멤버가 망가지고 넘어지며 소리를 지른다. 이어 선미는 노래에 담고 싶은 말을 직접 적어 내려가고, 마침내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까지 스스로 해내며 무대 위의 선미와 이선미 본연의 정체성을 한 앨범에 녹여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이렌'의 자아와 이를 받아들인 조타수로서의 선미. 커리어의 키를 쟁취한 그가 약 12년간의 활동 기록을 되돌아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선미를 이야기한다.
 

- 첫 월드투어를 앞둔 소감이 어떠신가요.
"북미를 시작해서 유럽, 남미, 아시아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제가 항상 꿈꿔왔던 부분이었는데 기회가 많이 없었죠. 그 꿈이 지금 실현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역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음)"

- 투어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퍼포먼스가 있나요?
"한국 팬분들도 보지 못하셨던 앨범 수록곡에 대한 퍼포먼스도 있고, 기존 퍼포먼스를 변형한 무대도 있어요. 구성이나 테마, 이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서 아마 다양한 모습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월드 투어와 함께 신곡이 깜짝 발표될 예정이라고 하셨어요.
"'누아르(Noir)'라는 제목의 노래예요. 프랑스어로 '검은, 우울한, 불길한' 이런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의 '누아르'는 무엇인지 그게 궁금해졌어요. '좋아요'나 '구독' 수를 올리려고 위험한 곳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다가 죽는 사람이 매해 늘어난대요. 저한테는 그게 누아르인 거죠. 누아르가 영화의 한 장르지만, 저는 그 단어를 하나의 의미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런 이슈도 누아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빌보드코리아] 선미 인터뷰 선미

▲ [빌보드코리아] 선미 인터뷰 선미 ⓒ 빌보드코리아

 
선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대중과의 호흡을 강조했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전위적인 음악으로 탄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언제나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최신 트랜드 스타일인 뭄바톤 장르를 차용한 '가시나'나 캐치한 멜로디의 댄스 팝 '주인공'은 각각 듣기 좋은 하나의 싱글 앨범이지만 '사이렌'까지 모두 모인 < Warning >은 무대 위의 페르소나를 담은 콘셉트 앨범이다.

가요와의 접점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선미의 색을 녹여내기 위해, 그는 과거의 유산에서 힌트를 찾았다. 올해로 27세를 맞는 92년생 아티스트는 원색의 색감과 광택 재질의 파워숄더 재킷, 1980년대 유로 비트와 디스코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 스타일 등 현재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에 알맞은 아이템과 장르를 가져왔다.

- 매 앨범에 선미만의 색을 담아 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제 색이 너무 많이 담겨서. (웃음) 저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성을 많이 고려하는 편인데, 그 '대중성'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는지의 척도라고 생각하거든요. (노래를 만들 때) 좀 어렵나, 너무 갔나,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해요. 다행히도 많은 분이 절충해주시고 또 아이디어를 더해주시고 하다 보니까 잘 풀려가는 것 같아요."

- 선미의 음악에는 80년대 모티프가 많이 보입니다. 왜 하필 80년대인가요?
"저희가 미국에 딱 도착했을 때 박진영 PD님이 숙제를 내주셨어요. '너희들이 어쨌든 미국에서 음악을 할 거면 미국 음악 시장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겠냐' 하시면서 모타운 아티스트들의 노래 200곡을 주셨어요. 한 곡 한 곡 듣고 느낀 점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생전 처음 듣는 음악이었죠. 그때 제 나이가 열일곱, 열여덟, 이랬는데. (웃음) 그러다 보니 1970, 80, 90년대나 1960년대까지 정말 시대별로 다양한 장르와 음악을 접할 수 있었어요. 'Nobody'는 1960년대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죠."

- 가장 인상 깊었던 80년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프린스! 프린스 노래 중에 'Purple rain', 'When doves cry'라는 곡이 있어요. 이 두 노래를 듣는데 그 사람의 목소리가 툭 들어오는거예요. 다른 아티스트들은 되게 소울풀한 음악을 했거든요. 리듬감도 있고. 프린스도 물론 그렇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어요. 음악도 특이해, 뮤직비디오도 특이해. 제목도 특이하잖아요. 보라색 비, 비둘기가 울 때라니. 그래서 흥미로웠어요.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선미의 취향은 원더걸스의 정규 3집에서도 드러났다. 국내에서는 조금 생소했던 프리스타일 장르를 비롯해 1980년대 댄스 하위 장르로 꽉 채운 < Reboot >의 '사랑이 떠나려 할 때'는 선미가 송 메이킹에 참여한 노래로,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대 초반 국내 가요 시장을 강타한 시티팝 감성을 듬뿍 담은 곡이다. 그는 포스트 김완선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시절의 감성을 매끈하게 표현하며 과거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알렸다.

이처럼 해외 레트로 음악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국내 가요와의 결을 유지하는 선미의 음악관은 케이팝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요계에 오랜 시간 몸담았던 아티스트로서, 선미가 생각하는 케이팝은 무엇일까.

- 10년 전과 지금의 케이팝 시장이 많이 다른가요?
"일단 빌보드 코리아가 생겼잖아요. 빌보드 내에 케이팝 섹션이 생겼어요. 그게 말해주지 않을까요. 그 시절 케이팝의 위상과 지금의 위상. SNS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케이팝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동영상 뷰(조휘수)가 늘어나요. 케이팝이 하나의 문화가 된 거죠."

- 선미가 생각하기에 케이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요?
"거의 모든 장르가 다 나왔다고 보시면 될 정도로 이런 음악들이 모든 나라에 다 있어요. 그중에서 케이팝을 구분할 수 있는 점을 찾으라고 하면 비디오, 시각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이런 친구들이 조회수가 엄청 높잖아요. 우리만의 시각적인 것들이 어필이 되는 것 같아요. 음악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보이는 것도 중요한 요소인 거죠."
 
[빌보드코리아] 선미 인터뷰 선미

▲ [빌보드코리아] 선미 인터뷰 선미 ⓒ 빌보드코리아

 
원더걸스의 선미는 청순하고 가녀렸다. 4차원의 매력과 도도한 표정으로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충실했던 지난 10년, 그는 이미 무대 위의 선미가 아닌 '이선미'의 목소리를 서서히 내고 있었다. 밴드로 활동할 때는 베이스를 연주해 그룹의 중심을 잡았고, 자신의 곡을 앨범에 실었으며 인생의 정점에서 안정 대신 모험을 택했다.

- 진정한 홀로서기를 한 지금, 원더걸스 시절과 다른 점이 있나요?
"작업 과정이 제일 큰 차이점이에요. 모든 것에 제 손이 닿으니까. 외롭기도 하죠. 그룹으로 활동하면 어떤 친구가 원샷을 받을 때 누구는 안 잡히고. 그때면 잠깐 쉴 수 있고 표정도 풀 수가 있는데 솔로로 활동하면 카메라가 저만 잡고 있으니까. 그 3, 4분 동안 몰입하는 강도가 달라요."

-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너무 어릴 때부터 활동해서 내가 누군지 몰랐어요.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달려온 거에요.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덕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깊숙이 파고들면서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했어요. '자유로움'. 찡그릴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고, 욕할 수도 있고. 이런 표현에 대한 자유로움. 예쁘게 나오는 장면도 아닌데 제가 굳이 가져다 쓰는 이유는 '이 음악과 이 감정이 이 순간에서 이랬기 때문에' 저는 과감히 써 달라고 말해요. (뮤직비디오를 보면) 제가 휴지도 맞고 넘어지고 이러잖아요. '사이렌'에서는 섬뜩하게 나오기도 하고. (웃음)"

- 홀로서기를 결심했을 때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무엇이 선미를 움직이게 했나요?
"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어요. 다음 단계에서 뭘 해야 할지를 알았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그런 면에서 오는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것도 자기 덕질을 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내가 누군지 잘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술술 흘러가는 거죠."

- 선미는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보라색. 빨강이랑 파랑이 섞이면 보라색이잖아요. 중성적이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색. 인터뷰 내내 이야기했던 대중성과 나의 아이덴티티를 합친 게 보라색이에요."

- 음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람들이 노래를 딱 들었을 때, '선미 음악이다!' 하는, 선미라는 장르가 구축되는 게 제 꿈이에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루고 싶은 꿈이죠. 저의 음악과 룩이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는 것. 선미 카테고리, 선미 스타일. 제가 영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전체 인터뷰는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빌보드코리아(www.billboar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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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IZM 필자 정연경입니다/digikid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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