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내가 좋아하는 여성 배우의 연기 톤이 있다. 배두나와 이나영이다. 힘을 들이지 않고 무심하게 하는 연기가 좋다. 간만에 이나영이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반가웠다. 배경도 출판사라니, 이쪽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반갑다.

이나영의 비현실적 미모가 자꾸 집중력을 흐트려뜨리긴 하지만, 로맨스의 달인인 정현정 작가가 '경력 단절 여성'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서 자꾸 당겨 앉게 된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살다가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 집도 절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만 몇 년이나 일을 쉰 여성을 반기는 곳은 없다.

면접 때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뻔한 말들은 무심히 넘기다가도 반복되면 상처가 된다. 내 잘못이 아닌데 점점 내 잘못이 되어 버리는 듯한, 블랙홀에 빠지기 십상이다. 결국 이나영은 고졸 사원을 뽑는 것에 응시한다. 대졸 전문직 여성이 '경단녀'가 되면서 한 단계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다. 첫째 자녀를 임신한 직장여성의 65.8%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사회 문제다. 언론은 인구가 줄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연일 보도한다. 어디 그뿐인가. 성별과 상관없이 비혼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여성들의 비혼 추세는 무서운 기세다. 아이를 낳기가 겁나고 두려운 시대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저런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는 질이다.
 
얼마 전 한국 엄마의 삶을 보면 성별 간 임금 격차의 진실이 드러난다는 기사를 봤다. 아이를 낳고 퇴사한 엄마는 40세쯤 재취업을 하게 되는데, 경력을 살려서 취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고, 이때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개선이 어려울까 한숨이 나오려는데 댓글을 보고 뜨악했다.
 
"당연하지."
 
출산과 양육을 위해 퇴사했다가 다시 일하러 나온 여성들이 받는 차별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부일 것이라고 믿지만, 어쩐지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세상에 당연한 차별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싶어서. 차별이 당연하다는 시각은 출산과 육아는 여성들에게 아무런 경력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가 쓸모없는 일인가?

내가 아는, 눈물겨운 '워킹맘' 후배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직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후배는 눈물겨운 '워킹맘'이다.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맞벌이를 하며 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도 있었고, 일을 그만두기에는 이 친구의 능력이 아까웠다.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 2년쯤 지나서 일을 시작하려는데 취직이 안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편집일을 하다가 얼마 전 한 기관의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보수가 턱없이 낮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할 때보다는 수입이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출근을 한 시간 늦게 해도 된다는 조건도 크게 작용했다.

경력을 인정 받아서 제대로 회사 생활을 했다면, 차장이나 부장급의 연봉을 받았을 친구인데 지금은 초임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경력만큼 돈을 받지는 못해도, 그나마 자신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공연히 속상해졌다.

게다가 취업을 해도 고단한 워킹맘의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다. 워킹맘들은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처럼, 후배도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아이도 조금 컸고, 일과 육아를 같이 할 수 있도록 남편의 동반 참여가 뒷받침되긴 하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지금 내 옆에 여성 동료들이 씨가 마른 게 당연하다 싶다.

실제 초임여자 교사는 70~80%인데 여자 교장은 23~24%, 대학교는 조금 더 심하다. 여성 교수는 30% 정도, 여성 총장은 1% 정도에 그친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임신과 동시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 첫째 아이까지는 출산휴가를 쓰며 어떻게든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도 아이가 조금 크거나 둘째가 생기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던 사람들 중 다시 일을 시작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나 자기가 예전에 했던 일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사실 급여도 문제지만 일단 나이 먹은 여자는 일자리가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걸까.
 
그나마 요즘 의미 있는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용어도 '경력보유'라는 말로 대체해서 사용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단절이라는 언어가 주는 수동적인 느낌보다는, 경력 보유의 관점에서 여성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용어 하나 바뀐다고 뭐가 바뀌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용어가 바뀌어야 패러다임도 바뀔 수 있으니 중요한 출발이다. 그러면 일자리 창출 등 관련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일 수 있지 않을까.

이나영, 이종석 힘 빌리지 않고 성장하길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같은 맥락에서 난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이나영(강단)이 이종석(은호)의 힘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현실에서도 혼자 일어설 수만은 없으나, 로맨스 상대 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단녀를 배려하고 돕는 시스템과 동료들의 협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단녀가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애인의 도움과 사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쩐지 로맨스가 별책부록이 아니라 본권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이 들기도 하지만, 부디 내 노파심이길.

그래도 강단이(이나영) 경험을 살려서 마케팅 분야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제가 해봐도 될까요?"라며 기죽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은 보기 좋다.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차가운 듯 보이지만 객관적이고 뼈 때리는 조언을 하며 단이를 지켜보는 고 이사(김유미)나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제안하는 단이의 의견을 "그거 좋다" 하면서 받아주는 서 팀장(김선영)도 호감이다.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낼 공감과 협동의 연대가 기대되는 이유다.

출산율 감소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오늘만 해도 대한민국이 합계출산율 0명대 시대에 진입했다는 기사가 떴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18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출생통계 작성(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과 양육 때문에 겪는 경력단절로 인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각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여성에게 '돈 줄 테니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더 폭력적이다. 경력의 지속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야말로 저출산을 해결하는 열쇠 중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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