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포스터.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17세 여고생 육상부 에이스 타치바나 아키라(코마츠 나나 분)는 아킬레스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다.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된 그녀는 육상부를 나와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재활훈련을 하는 대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타치바나가 알바를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 곤도 마사미(오오이즈미 요 분)는 45세의 '싱글 대디'다. 한때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 청년이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을 사는 흔한 중년이기도 하다. 그는 손님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성실하고 악의 없는 태도로 대하지만, 직원들은 그를 중년 아저씨로 그저 '쓰레기' 취급하며 '냄새'가 난다고 멀리 한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딱히 분개하거나 화를 내진 않고 그저 자기를 탓할 뿐이다. 

타치바나는 그런 곤도 점장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부상 당하고 우울해 할 때 비가 오던 어느 날 비를 피해 들어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곤도가 친절하고 성실하게 그녀를 대해주었기 때문. 그녀가 그곳에서 알바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는데, 이후 보이는 곤도의 모습들도 타치바나에겐 큰 호감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그에게 고백을 하고 앞뒤 잴 것 없이 직진한다.

"나 점장님 좋아해요. 점장님은 어때요? 말해주세요."

원조교제격 '로맨스' 아닌 '성장'의 청춘물
 
 로맨스 아닌 성장의 청춘물에 가깝다.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한 장면.

로맨스 아닌 성장의 청춘물에 가깝다.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일본에서 누계 발행부수 200만 부에 달하는 히트작인 동명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지난 2016년 한국에도 개봉해 소소한 반향을 일으켰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나가이 아키라 감독 신작이다. 

40대 중반 싱글 대디와 10대 후반 여자 고등학생의 '로맨스'가 스토리를 관통하는 큰 줄기이다. 다분히 중년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로맨스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들여다 보면 좌절과 상실의 나락에서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성장'을 그리고 있다.

혹자는 시놉시스 설정 자체로 중년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그에 따른 구조와 서사도 지극히 평범하고 전형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결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준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40대 중반의 곤도 점장이 아니라 10대 후반의 좌절한 여고생 다치바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로맨스도 성장도 그녀가 우선이고 먼저다. 곤도의 로맨스와 성장은 그에 뒤따르는 양상을 띈다. 

'사랑'과 '비'
 
 '사랑'과 '비'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한 장면.

'사랑'과 '비'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제목에도 나와 있는 '사랑'과 비'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곤도 점장을 향한 '사랑'은, 타치바나가 좌절하던 순간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다. 그녀는 그 덕분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건 곤도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꿈을 잃고 현실을 사는 그에게 좌절한 타치바나는 타자가 아닌 또 다른 자아다. 그의 그녀를 향한 사랑은, 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조언이자 응원이다. 그걸 잘 아는 그이기에 그녀를 육상에의 길로 다시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는 타치바나가 좌절하고 성장하는 시기이자 장소다. 우산이 없는데 비가 오면 피할 수밖에 없을 터. 그녀가 비를 피해 찾아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곤도가 점장으로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는 건 우연이자 필연이다. 

그래서 타치바나의 진짜 사랑은 비를 피해 들어간 패밀리 레스토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곤도를 향한 사랑에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갠 뒤에 즉, 육상을 향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곤도를 향한 타치바나의 사랑이 가짜라고 볼 수는 없다. 

봄에 알맞는, 용기를 주는 영화
 
 좌절과 상실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한 장면.

좌절과 상실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영화는 의외로 굉장히 발랄하다.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빠르고 역동적이기까지 한 카메라 워킹이나 연출은 참신하다. 

중년 남성의 판타지라고 '기대'하고 보든, '실망'하면서 보든 일단 영화를 보면 의외로 상상했던 것과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필자는 사실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 했다. 어쨌든 설정이 그러하기에, 어떤 방식을 썼든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장물과 판타지 로맨스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정도까지가 한계가 아닐까 지레 짐작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가이 아키라 감독의 긴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생각을 바꾸어 다른 시선과 다른 종류의 기대로 영화를 보았다. 그야말로 봄을 향해 가는 지금 딱 맞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웅크리고 움츠리고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계획 했던 일과 하고 싶었던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겨울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네 인생에선 누가 언제 어떻게 나에게 용기를 주고 살포시 등을 떠밀어 줄까.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살포시 등을 떠밀게 될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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