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시나들> 포스터

영화 <칠곡 가시나들> 포스터ⓒ 단유필름

 
<트루맛쇼> < MB의 추억 > <쿼바디스> <미스 프레지던트> 등 권력을 비판하는 다큐 영화를 연출해온 김재환 감독이 이번엔 <칠곡 가시나들>로 돌아왔다. 27일 개봉하는 <칠곡 가시나들>은 이전 작품과 달리 시골 할머니들이 한글 배우는 과정을 훈훈하게 담아 감동을 주고 있다.

개봉을 앞둔 느낌과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 지난 20일 서울 공덕역 근처에서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인터뷰 이후인 24일 인터넷상에 공개편지를 올려 CGV측이 "개봉일 실적에 따라 향후 '유동적으로' 몇 회 상영할지 결정하겠다"고 전해왔다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CGV가 정한 모욕적인 룰은 거부한다"라며 CGV 보이콧을 선언했다.

다음은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절..."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 단유필름 제공

 
- 2년 만에 선보이는 다큐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일곱 할머니 모두 건강하게 '까르르' 하며 함께 영화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요. 한 분이라도 돌아가시고 그분 얼굴이 스크린에 나왔다면 할머니들이 많이 우셨을 거예요. "

- 지난달 31일 언론 시사회 하셨는데 반응이 어땠나요?
"언론시사회 반응 믿으면 안 돼요. <트루맛쇼> 언론시사회 때도 이 사람들이 왜 이리 좋아하지, 관객들이 좀 보러 오실까? 했거든요. 근데 영화관을 안 열어주면 힘들어요."

- <칠곡 가시나들>은 할머니들의 한글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거잖아요. 처음 어떻게 이걸 주목하게 되신 건가요?
"칠곡 할머니들에 대해 알게 된 건 김사인 시인의 <시시한 다방>이란 팟캐스트를 통해서입니다. 시를 읽어주는 칠곡 할머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주변 소음이 다 차단된 것 같은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할머니들을 만나고 싶어서 칠곡에 갔더니 한글학교가 27개나 있더군요."

-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많네요.
"전국적으론 600개가 넘는다고 들었어요."

-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분이 많다는 의미인 거 같아요.
"2017년 교육부 산하 평생 교육진흥원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한글을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전국에 311만 명이나 된다고 해요. 대부분은 할머니들이에요."

- 그럼 한글 모르는 할아버지는 없나요?
"어르신들 문맹률은 할머니 쪽이 훨씬 심각해요. 의무교육 시행 전에 태어나 아들에게 가정의 모든 교육자원과 물적 정서적 자원을 몰아주는 문화 속에서 학교에 갈 기회조차 없었던 분들이 많아요."

- 이번 영화는 3년 동안 촬영한 건가요?
"2016년 봄에 할머니들 처음 만난 지 3년이고요, 촬영 기간은 그보다 짧아요."

- 전작인 <미스 프레지던트>도 2016년 제작하신 걸로 아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둘 다 노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요. 양쪽 다 설렘을 찾아 나서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젊은 시절 주인공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그분을 찾아 나서죠. 뒤를 돌아보다 더 큰 비극에 빠지는 오르페우스 같은 존재들입니다. <칠곡가시나들>은 한글을 만난 후 일상에서 새로운 설렘과 재미를 찾아 모험을 시작하는, 용감한 동시대인의 이야기입니다."

- 최근 <말모이>란 영화가 있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말모이> 순희의 80년 후 실사판이 <칠곡 가시나들>입니다. 주인공들이 전원 1930년대 생입니다. 곽두조 할머니의 경우 소학교 4학년까지 다니셨는데 구구단을 아직도 일본어로 외우세요.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절에 태어났고, 다행히 학교에 갈 기회를 잡았던 분들도 한글을 배울 수 없었던 험한 시절이었어요."

들에서 일하다가 교복 입은 여학생 보고 우셨다는 할머니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 단유필름 제공

 
- 할머니들에게 한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도 할머니들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던 적이 있어요. 들에서 일하다 등 펴고 저쪽을 보면 여학생들이 교복 입고 가는데, 그걸 보고 눈물 난 적이 있다고 얘기하신 분들이 있었어요. 공통으로 느끼시는 거 같아요. 교복이란 의미가 한글이란 것 하고 비슷하게 받아들여지는 거 같아요. 너무 배우고 싶고 나도 선생님 있으면 좋겠고 학교도 가고 싶은데, 교복을 보는 순간... 그러지 못했던 것이죠. 1930년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단당했는데 교복을 본 순간 왈칵 쏟아진 거죠.

그게 한글로 치유되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니 나에게도 주석희라는 멋지고 훌륭한 선생님이 생겼어요. 그리고 친구가 생겼어요. 보고 돌아서니 잊어버리시지만 공부하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한글은 할머니들이 다시 자신감을 찾게 하고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되는 거예요. 옛날에 교복은 자기들이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꿈 같은 거였는데 한글은 세상 속으로 할머니들이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통로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단유필름

 
- 그것도 그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할머니들이 소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데.
"어린 시절 모두가 경험한 글자를 알아가는 설렘이 누군가에겐 80대 후반에 기적처럼 찾아와 일상을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거죠. 마음만은 소녀시대예요."

- 할머니들에게 영화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반응이 궁금해요.
"영화란 매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TV엔 언제 나오냐고 맨날 물어보셨어요."

- 당사자들이 영화라는 걸 몰랐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설명하고 촬영했나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신 게 아니라, 영화 보는 장면이 나온 TV 드라마로 영화를 아시긴 해요. 칠곡에 영화관이 없었는데 작년 12월에 생겼고 거기서 당신이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으로 생애 첫 영화를 보신 거예요."

- 촬영을 거부하시진 않았나요?
"할머니들이 저희랑 노는 걸 좋아하셨어요. 한 달에 몇 번씩 칠곡에 와서 할머니들이랑 즐겁게 수다 떨어주는 젊은 친구들을 거부할 할머니들은 없으실 걸요. 사실 할머니들이 제일 기다리는 건 손주들이지만, 저희가 3년간 '손주 대행'을 한 거예요."

- 영화 중간중간 할머니들이 쓰신 글씨를 자막으로 내보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할머니들이 한 글자 쓸 때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모르시죠. 달달 떨리는 거친 손으로 몽당연필을 잡고 한땀 한땀 공책을 채워가는 글씨는 경이롭고 아름답죠."

- 할머니들은 영화 보시고 뭐라고 하세요?
"'이제 영화도 봤고 즐겁게 죽으면 되겠다'고 하시던데요."

- O.S.T도 제작하신 거 같던데.
"바버렛츠가 노래를 불렀어요. 바버렛츠 1집은 정말 훌륭한 앨범이에요. <칠곡 가시나들>의 설렘과 딱 맞는 분위기거든요. 계속 바버렛츠 1집을 들으며 촬영했어요."

"삶의 재미 포기하지 말고, 모두 재밌게 나이듦 추구하면 좋겠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 이영광

 
- 제목이 <칠곡 가시나들>이잖아요. '가시나'는 듣기에 따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목을 이렇게 잡은 이유가 있나요?
"'가시나'요? 전 예쁘기만 한데요. 아름다운 우리말이에요. 또 할머니들께 가장 큰 상처로 남은 말이 '가시나들 공부 가르쳐서 뭐해' 같은 말이에요. 비수가 되어 꽂혔죠. '그래, 우리가 칠곡 가시나들이다 어쩔래'라는 반항심도 담긴 제목이에요. 남성 중심 가부장 문화에 한 방 먹이는 거죠."

- 영화 끝부분에 봄나물 캐는 장면이 있잖아요. 전 그게 인상적이던데.
"칠곡에서 봄을 세 번 지냈어요. 당연히 봄나물 캐는 장면도 많이 촬영했죠. 칠곡에서 사계절을 지낸 후 꼭 봄이란 계절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얼마나 많든 설렘이 있는 사람들은 '봄'의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 명절에 자식이 왔다 가는 장면도 있는데요. 남은 할머니에게 외로움, 쓸쓸함이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이 1년 중 가장 많이 아플 때가 요즘이에요. 설 지나고 봄이 오기 전 이맘때. 원래 환절기 때 아픈 분이 많은데 설 지나고 특히 더 아픈 건 외로움 때문이에요. (명절 연휴에 왔던) 모두가 떠나고 난 후 이불 개면서 우시죠."

- 부제가 '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이잖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한마디로 설렘이죠. 나이 들어도 설레고 재미있는 게 더 많아지는 삶.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할머니가 주인공이라 <워낭소리> 분위기를 떠올리실 분이 많을 텐데, 저는 <쉘위댄스>의 칠곡 할머니들 버전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

- 할머니도 우리와 똑같네요.
"나이 들수록 더 재미를 추구해야 생의 가장자리가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요. '재밌게 나이 듦'이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좋은 게 많은 인생입니다.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좋은 관계, 열정, 배움에 대한 설렘, 나이 들어서도 이런 게 많은 거죠. 아침에 눈 떴을 때 일용할 설렘이 있는 삶이죠. 나이가 들수록 더 뭔가를 배워야 해요. 근데 이 시기에 배우는 건 더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거든요. 오직 재밌기 위해서 배우는 거예요."

- <칠곡 가시나들>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이 듦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삶의 재미를 포기하지 말고, 모두 재밌게 나이 듦을 추구하면 좋겠습니다."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글을 깨우친 후 간판을 읽고 있는 할머니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단유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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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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