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 넷플릭스

 
지구가 '둥글다'라는 근거는 약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월식 때 달에 드리워진 지구 그림자를 보고 처음으로 주장한 이후, 마젤란과 콜럼버스 등의 탐험가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리고 지구가 둥글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이다.

과거 종교관에 의해 강요되었던 평평한 지구에 대한 개념은 거짓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의 주인공 마크 사전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평소 음모론에 관심이 많던 그는 누군가 사준 '평평한 지구'에 대한 책을 읽고 빠져들었고, 이후부터 지구는 평평하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국 전역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마크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거짓이라 주장한다. 그는 지구는 평평한 모양이며 그 끝이 모두 빙하로 이뤄져 있다 말한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처럼 전 세계 정부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주장하는 그.

영화 <트루먼 쇼>는 작은 섬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30대 남자 트루먼이 사실은 자신의 삶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대본대로 움직이고 TV로 방영되는 '쇼'라는 걸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마크는 정부가 지구가 평평한 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 때문에 진실을 숨긴다 말한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 넷플릭스

 
이 다큐멘터리는 마크의 모습을 통해 '확증 편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뜻하는 용어다. 이는 주장이나 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능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 가지에 따라 정보의 사실유무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첫 번째는 직감이다. 자신의 감에 따라 사실을 판단한다. 두 번째는 이해다. 사람들은 더 철저하고 완벽한 근거를 이해하는 게 아닌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근거만을 이해한다. 머리로는 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지구가 평평하다'는 확증 편향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일까. 이는 '인터넷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확증 편향을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 주류와 다른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반복해서 무시 당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접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의견이나 주장 하나 때문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망치며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데 인터넷은 전 세계에 펼쳐진 이런 '소수자'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유튜브에 평평한 지구와 관련된 영상을 올린 마크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인터넷에서 뭉친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튜브에 이와 관련된 영상만 800개 가까이 올리며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그들은 하나의 주류가 되었고 미국 방송에서 평평한 지구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할 만큼 세력을 과시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 '지구는 평평하다'는 주장을 할 때 이와 관련된 증거가 유튜브에만 무려 800개 가까이 준비되어 있으며 자신과 같은 목소리를 내어 줄 든든한 지원군이 확보된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 넷플릭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왜 어떤 학자나 전문가도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지 않는 것인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할 만큼 '지구는 둥글다'라는 근거는 약한 것일까. 이에 대해 다큐에 등장하는 전문가는 말한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은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머리로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닌 마음이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들과 토론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근거와 논리를 들이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지구가 평평하다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근거와 논리만을 절대적인 것이라 받아들이고 반대편의 의견을 무시한다. 신념에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의 열변은 헛고생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가장 큰 무기가 있다. '내가 믿고 싶은 걸 믿는 게 남에게 피해주는 게 아니잖아요'라는 입장이다. 마크를 비롯한 지구가 평평하다 주장하는 이들은 카메라에 대고 이 말을 반복한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지구가 평평하다, 아니다는 과학적인 토론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중요한 진실과 거리가 멀다. 그들에겐 '내가 믿고 싶은 걸 믿고 그 믿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행복이 더 중요한 셈이다.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사람들의 '유튜브 스타' 마크는 그들과의 실제 만남에서 마치 영웅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그와 사랑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선물을 주며,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한다.
 
남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은 외롭고 힘들기 마련이다. 특히 그 주장을 반복하고 더 힘주어 말할수록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고 조롱을 당한다. 이들에게 마크는 큰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이 진실이고 통용되어야 한다'는 강한 주장보다는, '남에게 피해주는 게 아니니 믿게 내버려두라'는 배려를 촉구한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는 확증 편향을 통해서라도 행복을 찾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로 끝을 낼 수 있었다. 마크와 친구들의 행복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끌 수 있는 선택이 있었음에도 카메라는 확증 편향이 지닌 블랙홀과 같은 함정을 보여준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마지막 인사와 함께 자신이 갇혀 있던 리얼리티 쇼의 세계에서 나와 실제 세계로 향할 수 있었던 이유는 30년을 살아온 세상이 '가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진짜 세상을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며 그들이 믿고 있는 게 오히려 가짜 세상이다. 그들은 진짜를 가짜의 눈으로 바라봐야 되기 때문에 더 깊은 늪에 빠진다. <트루먼 쇼>가 트루먼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 섬 전체를 세트장으로 만들었다면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새롭게 정의를 내려야 되는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마크는 평평한 지구의 세상에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여자를 만났고 자신을 추앙하는 신도를 만났으며 절친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주장을 해나가야 한다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단순히 '난 그렇게 믿어요'로 끝날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이 가짜에 너무나 깊게 들어갔으며, 그가 다른 주장을 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은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트루먼처럼 진실을 알고 거짓을 버리고 나갈 수 없다. 이미 그의 실제적 삶이 거짓에 너무 깊게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 넷플릭스

 
확증 편향은 단순히 개인의 의견과 생각이라 치부할 수 없다. 인터넷 시대에 하나의 의견은 커다란 힘을 지니게 된다. 잘못된 주장이라도 동조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유로 진실처럼 위장될 수 있으며, 거짓된 사실도 영상 속에서는 진실로 둔갑할 수 있다. 또 이런 확증 편향에 빠진 이들은 오류로 가득한 세계에 갇혀 보통 사람들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거짓된 삶에 스스로를 옭아맨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상에 빠졌던 마크는 처음에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표했으나, 그들이 거는 기대는 점점 마크에게 짐으로 다가온다.
 
확증 편향은 선입견에서 비롯된다. 어떤 특정한 문제나 대상에 대해 실제적인 체험보다 주관적 가치 판단이 앞서면, 모든 문제를 신념에 따라 재단하고 평가한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완전히 틀린 주장에만 확증 편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나 사법 판단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치 세력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만 모아서 주장하고 상대편이 내놓는 근거는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확증 편향의 자세는 명확한 가치 판단 없이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 많다면 무조건 옳다는 잘못된 생각을 지니게 만들며, 현실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사법 판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확증 편향을 가지면, 역시 증거주의에 입각한 판단이 아닌 자신이 보고자 하는 증거와 증언만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하는 황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증 편향이 지닌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건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에 기댄 확증 편향의 오류는 오히려 개인을 더욱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이 다큐멘터리는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그래도지구는평평하다 확증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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