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진행되던 빙상장 천장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경기가 진행돼 선수들의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는 등 안타까운 상황도 계속되고 있다. 불과 1년 전 동계올림픽이 열린 국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 다시 드러나 한숨만 더해가고 있다.
 
올해로 100회를 맞은 전국동계체육대회(아래 동계체전)이 지난 19일 개막해 서울과 강원, 충북, 경북 등지에서 나뉘어 개최되고 있다. 특히 이번 대회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활약했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컬링 등 스타 선수들이 대거 참가해 1년 전 영광을 되새길 기회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유서 깊은 대회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현재 동계체전은 최악의 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트랙에는 지붕 누수로 물이 떨어져 경기가 5시간 넘게 지연됐다. 또 피겨스케이팅은 이른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경기가 진행되도록 일정이 짜여,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던 일부 선수들의 기권이 속출하는 등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보수공사 진행 못 해 경기장 누수... 체전의 위엄 무너지다

 
태릉스케이트장 천장 누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경기장이 천장 누수로 물이 새 비닐이 덮여져 있다.

▲ 태릉스케이트장 천장 누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경기장이 천장 누수로 물이 새 비닐이 덮여져 있다. ⓒ 연합뉴스

사건이 가장 먼저 발생한 곳은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태릉 국제스케이트 경기장이다. 지난 20일 오후 오전 11시부터 스피드스케이팅 동계체전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지붕에서 물이 새면서 무려 5시간 넘게 경기가 지연됐다. 19일 전국적으로 내렸던 폭설로 인해 지붕에 눈이 쌓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녹아 경기장에 물이 떨어진 것이다. 400m 트랙 가운데 물이 고인 곳만 절반가량이나 됐다.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은 지난 1971년에 건립된, 무려 40년이 넘은 낡은 경기장이다. 태릉 선수촌 안에 위치해 있고 그동안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 올림픽 스타들을 배출해낸 링크장이지만, 워낙 낡은 탓에 경기장이 매우 춥고 빙질이 좋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국내 유일의 스피드스케이팅 링크였던 탓에, 선수들은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대회 준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곳에서 훈련을 해야만 했다.
  
태릉스케이트장 천장 누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경기장이 천장 누수로 물이 새 비닐이 덮여져 있다.

▲ 태릉스케이트장 천장 누수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경기장이 천장 누수로 물이 새 비닐이 덮여져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경기장이 낡았다면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제때 나서서 보수공사를 진행했어야 한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알고도 예산 배정 등의 문제로 지난해 여름 지붕에 방수비닐만 씌운 채 방치해두다가 결국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일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보수에 20억 원 상당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즉시 진행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방수비닐만 씌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이자 세계 최고 시설로 올림픽 기록과 세계신기록을 쏟아냈던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평창 대회 직후 곧바로 문이 잠겨 1년째 방치되고 있다. 사후 활용방안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정부와 강원도간의 팽팽한 '책임 공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 '혹사' 우려되는 피겨 동계체전, 이게 최선이었나

한편 피겨스케이팅 경기는 19~22일까지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바로 옆에 위치한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열리는데, 경기 진행 시간이 너무 길게 잡히면서 혹사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 장장 12시간 넘게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 시즌 한국 남자피겨 사상 최초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차준환(18·휘문고)은 21~22일 모두 오전 9시경에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경기에 출전해야만 한다.
 
이는 피겨 대회에 참가하는 인원 수가 늘어난 반면, 대회 일정이 불과 4일밖에 되지 않다 보니 생긴 일이다. 특히 아침 이른 시간이나 밤 늦은 시간에 경기에 나서야 하는 선수들은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경우 부상을 입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동계체전 경기 지원 20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천장 누수로 인해 지연됐다. 이날 오후 전광판에 경기 지연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 동계체전 경기 지원 20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천장 누수로 인해 지연됐다. 이날 오후 전광판에 경기 지연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참가하는 경기들은 대부분 오전 9시~오후 1시에 열려 그나마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이제 막 피겨를 배우기 시작한 꿈나무 선수들은 오전 7~8시부터 대회에 참가해야만 한다. 경기 시작 전에 링크장을 찾아 몸을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했을 때, 이들은 새벽 4~5시에 일어나 대회를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는 3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2019 세계 피겨선수권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차준환도 상황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차준환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는 21~22일 불과 이틀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12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을 해 한국으로 임시귀국해야만 했다. 체전이 끝나면 그는 또다시 캐나다로 장시간 비행을 하고 돌아가 세계선수권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차준환은 발에 맞는 부츠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부츠에 테이핑을 한 상태로 지낸 지 오래 됐고, 그로 인해 발목도 더욱 좋지 않은 상태다. 세계선수권 준비를 위해 한시가 급한데 국내대회가 그의 부담을 가중시킨 셈이다. 올 시즌 누구보다 엄청난 상승 구도를 달리고 있는 차준환이 과연 이런 상황에도 세계선수권에서 제 실력을 유지해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차준환이 무리를 해서라도 동계체전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체육특기생들이 대학 입시전형 때 내는 성적과 직결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입시경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상황을 좀 더 살펴보면 의문이 드는 구석도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목동링크에서 열렸던 전국 동계체육대회 서울시 대표 예선전 A조 출전선수. 남고부에 차준환만이 출전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목동링크에서 열렸던 전국 동계체육대회 서울시 대표 예선전 A조 출전선수. 남고부에 차준환만이 출전했다. ⓒ 대한빙상경기연맹

  
차준환은 이날 동계체전 본선 경기에 나서기 위해 지난해 12월 14~1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렸던 예선 경기에도 출전했다. 당시 예선 경기에서 A조 남고부로 출전한 선수는 차준환 단 한 명뿐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동계체전 피겨 남자 싱글 서울시 예선 당시 출전 선수가 부족해 차준환은 홀로 경기에 나섰고 그는 프리스케이팅만 소화한 이후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부상 방지 차원에서 4회전 점프는 생략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동으로 본선 경기에 나올 수 있게 배려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특히 당시 예선 경기는 차준환이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한 지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열렸고, 그 다음 주였던 12월 21~23일에는 국가대표 타이틀이 걸린 회장배 랭킹대회도 있었다. 즉 차준환은 3주 사이에 무려 3개의 대회에 나선 셈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도 대표 예선전에 나섰던 유영(15·과천중)도 차준환과 비슷한 시기에 의정부빙상장에서 무려 밤 12시 무렵에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성장하는 선수들을 위해 일정과 시설 점검을 좀 더 세심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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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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