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차왕 엄복동>.

<자전차왕 엄복동>.ⓒ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손기정 선수보다는 덜 알려졌어도, 일제강점기를 풍미했던 운동 선수로 엄복동(1892~1951년)을 들 수 있다. 사이클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받은 엄복동을 다룬 <자전차왕 엄복동>이 오는 27일 개봉된다.
 
배우 정지훈(가수 '비')이 주연인 이 영화는 엄복동의 성장 환경을 짤막히 보여준 뒤 그가 싸이클 선수가 되는 과정과 이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우뚝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속 엄복동은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농사 일과 물장수 일을 한다. 딸 하나와 아들 둘인 이 집에서 장남인 복동은 아버지한테 설움을 당한다. 아버지는 법대 다니는 둘째아들한테는 돈을 투자하지만, 복동한테는 힘든 일만 시킨다. 그렇다고 복동에 대한 속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복동(福童)보다는 '콩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한 영화 주인공은 물장수를 하던 중에 자전거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동업자가 자전거를 구입해 기동성을 확보하고 복동의 거래처들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그런 복동을 보고, 동생은 아버지한테서 받은 학비를 깨서 자전거를 선물한다.
 
하지만 복동은 얼마 안 있어 자전거를 분실하고, 자전거 구입 내막을 알게 된 아버지한테 두드려 맞는다. 그런 뒤 서울로 야반도주해 일미상회라는 자전거 상점에 취직하고, 여기서 자전거 선수로 성장한다.
 
서울로 야반도주한 복동이 취직한 곳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일미상회는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애국단과 연계된 곳이다. 애국단 단원으로 등장하는 배우 고창석이 기관총을 연발하는 장면이 이 단체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반영한다. 이로 인해 영화에서는 '쌩~쌩' 자전거 달리는 소리보다 '꽝~꽝' 총탄 터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게 된다.
 
일미상회 사장 황재호(이범수 분)가 선수를 육성하는 것은, 일본 선수들을 꺾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시킬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것은 황재호의 독립운동 방식이다. 운 좋게도 그런 사장을 만난 덕에 복동은 자전거 선수로 성장해, 대회 때마다 일본 선수들을 앞지르고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애국단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면서, 복동의 삶은 한편으론 의미 있지만 한편으론 위험해진다. 무기를 들고 항일투쟁하는 김형신(강소라 분)과 썸 타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의 신변을 위협한다.
 
결국 복동도 간접적으로나마 독립운동을 돕게 되고, 그런 그를 일본 당국은 주시한다. 이렇게 감시 받는 속에서 복동은 대회 때마다 일본 선수들을 꺾어 조선인들을 열광시키며 체육 스타의 지위를 굳혀나간다.
 
꽤 흥미를 끄는 <자전차왕 엄복동> 속 사이클 경주 장면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자전차왕 엄복동>의 한 장면.ⓒ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실제 스포츠 경기에 비해 스포츠 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많이 끌기 힘들다. 실제 경기만큼의 '보는 재미'를 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자전차왕 엄복동> 속의 사이클 경주 장면은 흥미를 끄는 편이다. 총성과 포성이 난무하는 전투 장면보다는 엄복동이 일본 선수들과 부딪히며 페달을 밟는 모습이 훨씬 더 흥미롭다. 배우 겸 제작자로 참여한 이범수의 2004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처럼 이 영화도 실제 스포츠 경기 못지않은 재미를 주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엄복동이 조선인들을 열광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이 영화는 실제 사실에 잘 부합한다.
 
엄복동은 1913년(21세)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 1920년 호남자전차경주대회 및 경성상공인연합운동대회, 1922년 상주전국자전거대회 및 장충단자전거대회, 1923년 전조선자전차대회 및 중국대련(다롄)자전거대회, 1932년(40세) 전조선남녀자전거대회 등을 석권했다. 이는 입상 기록의 일부다. 이준호·신승환·유도상의 논문 '자전거 영웅 엄복동의 체육 활동과 그의 활동이 대한제국민들의 독립의식 고취에 미친 영향'은 이렇게 설명한다.
 
"'동양 자전거 대왕' 엄복동의 체육 활동을 요약해보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미상회에 취직하여 자전거 선수가 되었고, 국내뿐 아니라 국제대회까지 우승하면서 국민영웅이 되었다. 그의 체육 활동 업적은 경이롭다. 지금의 대한사이클연맹 회장배 격인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3번의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아시아 자전거경기대회에서도 우승하였다. 이러한 업적은 일본의 방해와 엘리트 선수들을 이겨내고 이룬 것으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현재에도 거두기 힘든 대단한 것이다."
-한국체육과학회가 2016년 발행한 <한국체육과학회지> 제25권 제6호에 수록.
 
큰 사랑을 받은 엄복동, 그러나...
 
 1986년에 공개된 엄복동 자전거. 제과업자 박성렬 씨(사진)가 당시까지 51년간 보관했던 것이다. 위 신문은 1986년 4월 12일자 <경향신문>. 경향신문

1986년에 공개된 엄복동 자전거. 제과업자 박성렬 씨(사진)가 당시까지 51년간 보관했던 것이다. 위 신문은 1986년 4월 12일자 <경향신문>. 경향신문ⓒ 경향신문

  
엄복동이 큰 사랑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엄복동을 편파적으로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분개해 1920년에 조선인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킨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임석원·박성수·김대한의 논문 '일제강점기 륜패천하의 주역 엄복동 생애의 명과 암에 관한 논고'에 사건 개요가 요약돼 있다.
 
"사건의 발단은 경복궁 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자리)에서 열린 경성시민 대운동회 자전거 경기에서 일어났다. 엄봉동의 유명(有名)을 시기한 일본인 선수와 대회 운영진은 온갖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여 엄복동의 승리를 저지하였다.
 
이에 격분한 엄복동이 항의하고 일인들이 엄복동을 집단 구타하자, 이를 지켜본 조선의 유민(나라 잃은 백성)들이 엄복동을 응원하고자 모두가 흥분되어 있던 차라 분기충천하여 운동장에 난입하게 되었으며, 저마다 항일투사로 돌변하게 된 것이다."
-한국체육학회가 2014년 발행한 <한국체육학회지> 제53권 제3호에 수록.
 
이 같은 엄복동의 체육 활동을 영화는 실제 사실에 근접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 있다. 그의 체육 활동을 독립운동과 연결시키다 보니, 스포츠맨 엄복동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린 점이다.
 
엄복동이 독립운동의 상징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것은 사실이다. 1926년 10월 7일자 <동아일보>는 "당대 조선에서 자전거 선수로 그를 당할 자가 없다고 하던 용감한 엄복동도 지금은 서대문형무소 철창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이더라"라고 보도했다. 그가 이곳에 갇힌 이유에 관해 이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단어를 현대어로 바꾸고 문장을 짧게 끊었다.
 
"조선에서 자전거 선수로 유명한 엄복동이 절도와 공범자가 되어 징역을 하게 되엿다.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 당의리에 원적을 두고 시내 병목정 210번지에 거주하는 이효진(35세)은 절도 전과 2범인 자로 금년 2월 25일부터 또다시 시내 여러 곳에서 남의 자전거 10여 대를 훔쳐다가 시내 초음정 111번지에 원적을 두고 병목정 229번지에서 자전거 영업을 하는 엄복동의 점포에 가서 그것을 팔아달라고 의뢰했다. 엄복동은 이효진과 함께, 절취하여 온 그 자전거를 여러 차례 원산으로 가지고 가서 팔다가 사실이 발각됐다.
 
두 명 모두 원산경찰서에 잡혀 함흥지방법원에서 리효진은 절도죄로, 엄복동은 절도장물사보죄로 예심에서 결정을 받고, 지난 9월 20일에 이효진은 징역 4년, 엄복동은 징역 1년 6개월에 벌금 50원의 판결 언도를 받았다. 둘 다 그에 불복한 후 수일 전에 경성복심법원으로 공소하고 올라왔다. 당대 조선에서 자전거 선수로 그를 당할 자가 없다고 하던 용감한 엄복동도 지금은 서대문형무소 철창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이더라."
  
 본문에 인용된 언론보도.

본문에 인용된 언론보도.ⓒ 동아일보

  
엄복동이 장물죄를 저지른 것은 돈 때문은 아닌 듯하다. 당시 엄복동은 경기 출전 조건으로 집 한 채 값을 선불로 받곤 했다. 거액을 선불로 받고도 출전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매우 바빴다.
 
그의 범죄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국전쟁 3개월 전인 1950년 3월 22일에는 자전거 절도를 시도하다가 체포됐다. 서울 청진동을 지나다가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에 손을 댔던 것이다. 이때는 기소유예(혐의 인정+불기소)로 풀려났다.
 
이처럼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적은 있지만, 그것은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의 치부와 관련된 일이다. 운동선수로서는 사회에 이바지했지만, 사생활에서는 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주인공의 스포츠 활동은 흥미롭게 묘사했지만, 그 활동을 독립운동과 연관시키다 보니 엄복동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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