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메인포스터 영화 <증인> 메인포스터

▲ 영화 <증인> 메인포스터영화 <증인> 메인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국내 작품만 따져보더라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폐증을 앓는 캐릭터가 있었나 생각해 본다. 가까이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진태(박정민 역)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아이였고,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신현준 역)이 역시 지능이 8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노총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었다. < 7번방의 선물 >에 나와 예승이만 찾던 6살 지능의 딸 바보 용구(류승룡 역)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 법한 대표적인 캐릭터만 나열했을 뿐, 이 외에도 정신적 장애를 겪는 인물들을 극의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처음에 이 영화 <증인>을 두고 우호적인 기대를 크게 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작품을 관람하고 난 뒤의 감상이 호의적인 쪽으로 기운다고 해도, 자주 반복되는 유사한 캐릭터의 활용과 그를 둘러싼 사건의 전개 방식 등을 막상 떠올려보면 처음부터 미간을 찡그리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생기고 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력이나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것이며, 특별히 이 장르적 특성에만 작용하는 것 또한 아니다. 남성이 중심이 된 범죄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던 때에도 동일한 반복에 점차 무뎌지는 감정을 막을 방법은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오빠생각> 등의 작품으로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감정선을 전달하는 데 완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한 감독의 연출 아래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이는 각각의 내러티브 속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힘이 되며,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증인> 스틸컷 영화 <증인> 스틸컷

▲ 영화 <증인> 스틸컷영화 <증인>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2.

영화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세상과 타협해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변호사 순호(정우성 역)에게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기회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10년 동안 함께 산 할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선 가사도우미 미란(염혜란 역)이 무사히 풀려날 수 있도록 변호하라는 것이다.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자폐를 가진 소녀 지우(김향기 역). 자폐 정도를 고려했을 때 그녀를 법정에 세울 수만 있다면 이 소송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순호는 지우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계속되는 재판 속에 순호는 이 사건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자신의 양심과 지우의 진심, 부와 명예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순호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개의 시퀀스를 엮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 중 하나는 순호의 내면적 갈등에 대한 부분이다. 순호는 파키슨 병에 걸린 아버지 길재(박근형 역)가 남긴 수억 원대의 빚을 갚고 자신의 삶을 물질적으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현실과의 타협과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순수한 신념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다른 하나는 순호가 맡게 된 미란의 변호 소송을 계기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지점의 이야기다.

동일한 지점을 순호 외부의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다. 순호의 내면에 대한 시퀀스를 일반화하여 삶의 유혹과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이상적 신념을 저버린 개인이 특정한 계기를 통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내용, 그리고 순호가 아닌 지우의 시선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말이다. 이 경우, 순호를 중심으로 설명한 앞선 내용과 정확히 상응하며 영화 속에서는 또 다른 하위 시퀀스를 형성하며 활용된다.
 
영화 <증인> 스틸컷 영화 <증인> 스틸컷

▲ 영화 <증인> 스틸컷영화 <증인>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3.

한편,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통해 내면적인 성장과 더불어 정의를 되찾는다는 순호의 내러티브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인물이 조력자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는 지우의 내러티브도 마찬가지로 신선하지 않다.

대신, 영화는 이 두 가지 소재를 법정 드라마의 형식으로 묶어 그 가운데 '증인'이라는 소재를 심음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순호에게는 증인(지우)이라는 요소가 자신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지우에게는 스스로가 증인(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되도록 유도함으로써 말이다.

그런 점에서 증인의 속성이 이 작품에서 활용되고 있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원래 증인이라 함은 증언을 하는 자, 즉 법원 또는 법관에 대하여 자기가 과거에 견문(見聞)한 사실을 진술하는 제3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 그 증언이 법률적으로 효력을 지니느냐 아니냐 혹은 그 증언이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판단하기 이전까지는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현재 알려진 사실의 여부를 확정하는 역할이 아니라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사건의 유일한 사료로 활용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작품 속 증인인 지우의 상황처럼 말이다. 이 지점, 증인의 역할을 하는 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쪽의 입장에서 '신뢰'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신뢰의 문제는 법정 내에서 사건에 대한 진술을 내놓는 지우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변호를 맡은 피의자 미란의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는 순호의 입장에서도 발생하고, 자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려고 하는 순호를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지우의 입장에서도 역시 일어난다. – 순호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로 미란을 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 이 과정에서 순호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을 건넨 미란에게는 배신을 당하고, 불순한 의도로 믿음을 구하고자 한 지우에게는 믿음을 얻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타인의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그 의중을 알 수 없으며 상호적 신뢰를 구축할 수 없음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체 내용에 대한 부분은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지우의 대사 한마디로 모두 정리가 된다.

04.

어느 작품이나 그렇듯이, 잠시 현실과 타협한 순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그 주변 인물들의 역할은 큰 비중을 갖는다. 자신의 병을 간호하고 남긴 빚을 갚느라 자신의 인생을 돌보지도 못하는 아들에 대해 아버지가 갖는 미안함. 함께 정의를 외치던 그의 오랜 친구 수인(송윤아 역)이 겪게 되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 그리고 평생 차별과 편견 속에서 자신의 세상에 갇혀 있던 어린 지우가 세상과 올바르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까지. 이런 요소들이 순호의 마음을 다시 정의의 편에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 속 메시지가 맹목적으로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극 중 순호가 로펌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고 지우의 편에 서게 되면서 포기한 것들에 대한 현실적 대가를 짊어지게 된다는 점이 그가 입고 있던 양복을 통해 명확히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 작품 속에서 순호의 옷차림은 저렴한 양복에서 고급스러운 것으로 변했다가 다시 한번 저렴한 차림으로 돌아오게 된다. – 또한, 대사를 통해 자신의 의뢰인을 배신한 대가를 업계에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것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 대신에 얻을 수 있게 된 것 또한 분명히 있다.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과 수인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 그리고 지우로부터의 온전한 신뢰.
 
영화 <증인> 스틸컷 영화 <증인> 스틸컷

▲ 영화 <증인> 스틸컷영화 <증인>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5.

소재의 선택에 있어 다소 평범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영화 <증인>은 안정적인 연출과 뛰어난 연기, 시나리오의 탄탄함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상당히 탄탄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특히, 각각의 인물에서 뻗어 나오는 시퀀스들이 서로 잘 조화롭게 뭉쳐지며 스토리를 매끄럽게 진행해 나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자폐를 표현하는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이를 폭력적으로 묘사하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오히려 그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갖도록 유도한다.

간혹 어떤 이들은 '순하다'라는 표현이 항상 '재미없다' 혹은 '평범하다'라는 단어와 동의적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 <증인>을 관람하는 일은 그런 편견이 사라지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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