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는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 올림픽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연히 국내에서는 더욱 낯선 스포츠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하고도 한 달 전이었던 2009년 1월, 같이 술도 종종 마시고 여행도 가끔 다니는 한 살 터울의 동생이 "보드 타러 가자"고 연락해 왔을 때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스케이트 보드는 <날아라 슈퍼보드>가 유행할 때 몇 번 타본 적이 있지만 스노보드는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심 자신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스키캠프를 2~3년 동안 다니면서 상급 코스에 오를 정도로 스키장은 내게 익숙한 곳이었다. 따라서 원리가 비슷한(?) 스노보드도 남들보다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중학교 진학 이후 15년 넘게 스키장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결국 나는 지금은 제수씨가 된 동생의 여자친구가 여행을 떠난 지금이 보드를 타러 갈 '적기'라던 동생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동생의 차를 타고 강원도 정선에 도착한 우리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카지노' 강원랜드에 들러 잠시 <오션스 일레븐> 놀이를 즐겼다(물론 나나 동생이나 담력이 약해 1만 원 정도의 소액만 베팅하고 시원하게 탕진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보드'였기 때문에 정선의 화려한 밤을 뒤로 한 채 인근 여관을 잡아 가볍게 캔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잠을 청했다(남자 둘이 갔는데 근사한 리조트를 잡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스노보드 처음 타 본 초보에게 닥친 상급자 코스의 절망
 
 난생 처음 스노보드를 타는 나에게 스키장 상급자 코스는 결코 신나는 공간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 스노보드를 타는 나에게 스키장 상급자 코스는 결코 신나는 공간이 아니었다.ⓒ pixabay

 
아침에 일어나 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곧바로 스키장 장비 대여소로 가 보드복과 보드, 장갑, 고글 등 필요한 장비들을 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전 처음 착용해 보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3년째 겨울마다 보드를 타러 다니는 동생이 나를 초급 코스로 데려갔고, 나는 나와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동료(?)들 사이에서 열심히 넘어져 가며 '무면허 강사'에게 속성과외를 받았다. 앞으로 다가올 불행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강의(?)를 마친 동생은 나를 끌고 상급자 코스 리프트로 데려갔다. 곧바로 상급자 코스를 소화할 자신이 없던 나는 당연히 강하게 반발했지만 동생은 "원래 이렇게 배워야 빨리 실력이 늘 수 있다"며 막무가내로 나를 리프트로 끌고 갔다(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은 애초에 나와 함께 보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거 같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리프트에 몸을 맡긴 채 스키장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를 정상까지 끌고 온 동생은 "내가 가르쳐 준 거 잘 생각하면서 천천히 잘 내려와"라는 무미건조한 격려를 남긴 채 홀연히 아래로 사라졌다. 스키장의 가장 높은 곳에 홀로 버려진 나는 하체에 잔뜩 힘을 준 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내려가던 나는 긴장이 풀린 순간 자세가 무너졌고 갑작스럽게 가속이 붙으면서 그야말로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크게 넘어진 통증보다 창피함이 더욱 컸던 나는 곧바로 일어나 다시 내려가려 했지만 점점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세가 흔들리고 다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절반도 채 내려오지 못하고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체력이 고갈된 채로 스키장 한 구석에 허탈하게 앉아 있는 내 맘도 모른 채 즐겁게 스키와 보드를 즐기고 있었다.

좌절하던 나를 벌떡 일으켜 세워준 소녀시대의 '힘내!'
 
 소녀시대의 위력은 스키장 구석에 앉아서 절망하던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울 만큼 강력했다.

소녀시대의 위력은 스키장 구석에 앉아서 절망하던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울 만큼 강력했다.ⓒ SM 엔터테인먼트

 
아직 한참 남은 코스를 내려올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스키장 벽에 쓰여 있는 비상 전화에 연락을 해 구조대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스키장 스피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걸그룹 소녀시대의 첫 번째 미니앨범이었다. 그리고 그때 소녀시대의 레전드 히트곡으로 꼽히는 'GEE'보다 더 내 귀를 사로잡은 노래는 다음 트랙으로 나왔던 '힘내!'였다.

"힘을 내라고 말해줄래. 그 눈을 반짝여 날 일으켜 줄래"로 시작해 "하지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거 아냐"로 이어지는 가사는 고작 스키장 코스에 좌절하던 나에게 큰 힘이 됐다. 그렇게 나는 '힘내!'를 들은 후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거침없이 바람을 가르며(?) 목적지에 도달했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우스꽝스런 자세로 스피드를 전혀 내지 못하는 초보자였겠지만 내 마음은 마치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라도 된 기분이었다(물론 당시엔 숀 화이트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찔한 추억을 남긴 스노보드장의 경험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녀시대는 'GEE' 한 곡으로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에서 14번이나 1위를 차지하며 인기 절정의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소녀시대에 '입덕'한 나는 주변 사람들(대체로 남자)에게 소녀시대의 위대함(?)을 열심히 전파하고 다녔다. 당시 나의 최애곡은 당연히 'GEE'도, '다시 만난 세계'도 아닌, 좌절했던 나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줬던 '힘내!였다.

스키장을 다녀온 지 3개월이 지난 2009년 4월, 갑작스런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실려 갔다. 중환자실에 열흘이나 누워 있는 동안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께 "마음의 준비도 생각하시라"고 말했고 실제로 중환자실에서는 옆 침대에 있던 분이 돌아가시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보드를 타다가 체력이 떨어졌을 때는 최악의 경우 구조대를 부르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이번엔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걷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했'더니 정말 걸을 수 있게 됐다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소원을 이룬 사람은 비단 나 하나 만은 아닐 것이다.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소원을 이룬 사람은 비단 나 하나 만은 아닐 것이다.ⓒ SM 엔터테인먼트

 
다행히 나는 뇌 속에 혈관을 누르고 있던 고인 피를 빼내는 수술을 받으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세가 왔고 오랜 기간 누워 있으면서 온몸이 다 굳어 버리고 말았다. 걸어 다니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화장실을 갈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수치심과 좌절감에 휩싸여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처음 뇌출혈로 쓰러진 후 6개월 동안 3곳의 병원을 다니면서 수술 및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 병원에 있던 2009년 6월 말, 소녀시대는 두 번째 미니 앨범 <소원을 말해봐>를 발표했다. 당시 나는 간신히 휠체어 신세를 면해 혼자 병실의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병원 복도를 다닐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때 소녀시대는 노래를 통해 '소원을 말해봐'라고 했고, 나는 혼자서 걸어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했다.

며칠 후 나는 두 군데의 대학 병원을 거쳐 재활 전문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혼자서도 병원 근처를 가볍게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회복됐다. 당연히 꾸준한 재활치료의 결과였겠지만 소녀시대의 신곡 발표와 나의 재활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 떨어졌다. 이미 '스노보드 사건'으로 소녀시대에게 깊은 호감이 있던 나는 이를 '소녀시대 효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6개월의 입원 과정을 마치고 퇴원했고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서 직장도 다시 나가고 가끔 지인들도 만날 만큼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물론 보드는 못탄다). 2009년에 있었던 2번의 사건(?)을 계기로 소녀시대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지면서 신곡이 나올 때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소녀시대를 열심히 응원했다.

물론 소녀시대에게도 긴 세월 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다. 멤버 제시카가 탈퇴하며 8인조가 됐고 지금은 티파니, 수영, 서현이 나란히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종료하면서 사실상 활동 중지 상태가 됐다. 하지만 소녀시대는 나에게 단순히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인기 많은 걸그룹,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팀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소녀시대 멤버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10년 전 소녀시대에게 두 번이나 은혜(?)를 입은 삼촌팬은 언제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소녀시대를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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