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의 작품 포스터

영화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의 작품 포스터ⓒ 트리플픽쳐스


이 영화는 전체 러닝타임의 절반에서 분절되었다. 2시간여의 <군산>은 1시간인 중간 지점에서 앞뒤를 바꾼다. 전반부는 군산으로 놀러 온 두 사람이 서울로 돌아오는 것. 이때 영화의 제목이 중앙에 뜨고 후반부로 넘어간다. 후반부는 서울에서 놀던 두 사람이 군산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다.

"사실과 기억의 순서는 다르다"라는 장률의 말은 이 형식에 대한 대답이다(국민일보. 2018.11.05. '군산' 장률 감독 "영화엔 일상이… 뒤죽박죽 삶과 같아"). 즉 앞뒤를 바꾸지 않은 이야기,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서울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건 '사실'이다. 또한 앞뒤가 바뀐 이야기, 윤영과 송현이 군산에서 역사를 확인하는 건 '기억'이다.

윤영은 송현과 군산으로 떠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식량 수탈의 항구였는데, 그때 생긴 적산가옥이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치욕의 역사로 생각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적산가옥은 청산의 대상이자 통탄의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군산은 적산가옥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것을 남겨둔다. 커플이 자주 놀러 온다는 장률의 설명, 그래서 사랑이 넘치는 도시. 누군가는 이를 두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부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률은 과거를 성찰하는 게 반성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곳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낫다고 말한다.

커플이 자주 놀러 오는 도시라는 장률의 설명은 윤영과 송현에게도 적용된다. 두 사람은 놀러온 군산에서 커플로 오인받는다. 윤영은 정말로 커플이 되기 원하지만, 송현은 그렇지 않다. 결국 장률의 전작 <경주>처럼 이들의 사랑은 맺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이 맺어지지 않는 건, 군산이라는 도시가 사랑스러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영화는 사랑이 맺어지지 않는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장률이 영화의 앞뒤를 바꾸어 가면서까지 먼저 말해야 했던 건, 역사에 관한 경각심인 셈이다.

영화의 앞에 자리 잡은 역사를 먼저 살펴보자. 시인 윤동주에 대한 윤영의 집착은 그가 과거를 성찰하는 인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윤영과 송현은 재일교포(정진영)가 운영하는 적산가옥 민박에서 묵게 되는데, 윤영이 윤동주를 말하는 반면 송현은 가옥을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윤영은 송현과 민박집 주인의 사이를 부러워하는 듯 보이지만, 적산가옥에 머무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가옥에서 빠져나와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과거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송현은 그런 과거를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민박집 주인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다. 그는 재일교포인데, 죽은 아내를 떠올릴 수 있는 건 군산뿐이다. 민박집 주인은 자신의 실수로 아내가 죽었다며 고통스러워하는데, 송현은 지나간 건 잊어야 한다며 다독여준다. 그곳은 후쿠오카이고 이곳은 군산이라며. 그리고 이때 우리는 생각해본다. 슬픔에 빠진 민박집 주인이 군산으로 도피한 게 아니라, 미련없이 군산에 올 수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즉 그는 현재의 아내를 후쿠오카에 묻어두고, 과거의 아내인 군산으로 달려온 것이다.

민박집 주인은 현재를 묻고 과거로 왔다. 아내의 과거에 해당하는 군산에서, 죽은 아내는 어디에도 있다. 다시 말해, 그가 묻어둔 건 '그곳'의 '기억'일뿐이고 '이곳'의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말하자면 민박집 주인은 슬픈 추억은 묻어두고 결혼했었다는 사실만을 남겨두었다.

송현이 민박집 주인에게 이곳에 왜 왔느냐고 묻자, 죽은 아내의 고향이 이곳이라고 답해준다. 결국 이들과 군산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아내'라는 타인을 거쳐야만 연결된다. 이때 아내는 죽은 사람이므로, 민박집 주인이 잊으려는 기억이므로, 등장인물들은 '잊으려는 것'을 통해 이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군산에서 지나간 것을 떠올린다는 점으로 윤영과 민박집 주인의 성격은 일치한다. 그들은 각각 윤동주와 아내를 떠올린다. 기표로는 '윤동주'와 '아내'이지만, 기의로는 '죽은 사람'이다. 더 나아가서는 '죽은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도시 군산은 죽은 역사가 현재에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윤영의 아버지는 거위에게 노래를 시키는데, 군산에서는 윤영이 거위를 노래한다. 그렇다면 거위가 윤영을 노래하는 것인가? 아니면 윤영이 거위를 노래하는 것인가? 거위는 '사실'이고, 윤영은 그런 거위를 '기억'한다. 장률이 말하는 사실과 기억의 관계가 그렇다. 둘은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거위의 꿈'처럼 모호한 관계다. 다만 이 영화의 도입부가 '군산'에서 시작하듯, '기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게 장률의 생각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갈등들, '빨갱이'와 '조선족'과 '재일교포'라는 한중일 문제는 모두 기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과거/기억/군산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그것은 서울/사실/현재에 우선한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