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 JTBC

 
지난 15일 방영된 JTBC 예능 <방구석 1열>은 박중훈 특집이었다. 이날 방송에선 한국영화 100년사를 훑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올해를 한국영화 100주년으로 꼽는 이유는 1919년 연극과 영화의 형태가 결합한 첫 한국영화 <의리적 구토>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꾸준히 제작을 이어온 한국 영화계는 1950년대말부터 1960년대초까지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흔히들 이 시기를 한국영화 최대 전성기로 꼽는데, 지금도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히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가 모두 이 시기에 제작됐다.

하지만 서구 영화 부럽지 않은 퀄리티와 완성도를 자랑하던 한국 영화는 박정희 정권 이후 강화된 검열 등으로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 그러다가 1980년대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정지영 감독으로 대표되는 코리안 뉴웨이브의 출연으로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된다. 

불세출의 명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 JTBC



이날 박중훈과 함께 <방구석 1열> 게스트로 등장한 이는 코리안 뉴웨이브를 대표했던 이명세 감독이었다. 이날 방송에선 그가 감독을 맡고 박중훈, 안성기가 열연한 1999년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소개되었다. 1990년대 영화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각적인 영상미와 시대와 기술을 뛰어넘은 혁신적인 미쟝센이 돋보였던 이 작품은 한국영화 100년사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명작이다. 

개인적으로 이명세 감독의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방구석 1열>을 통해 다시 본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장면 하나 하나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이명세 감독만큼 독보적인 미쟝센을 구현하는 감독이 있을까.

물론 한국의 미쟝센 하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감각적이다 못해 실험적이기까지 한 이명세의 미쟝센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지금도 수많은 후배 영화인들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

이날 방송이 '박중훈 특집'인지라, 이명세 감독 영화 중 박중훈과 함께 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만 소개됐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이명세의 최고작으로 거론되고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론 그의 데뷔작인 <개그맨>(1989)과 개봉 당시 엄청난 혹평에 시달리며, 이명세에게 '불친절한 감독'이라는 오명까지 씌운 <M>(2007)을 더 좋아한다. 

이명세 감독의 재기발랄한 작품이 그립다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 JTBC



영화를 찍기 위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각종 일탈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의 치기어린 해프닝을 다룬 <개그맨>은 단언컨대, 시대를 한참 앞서간 괴이한 영화 였다. 처음에 <개그맨>을 봤을 때는 한국 영화의 암흑기라고 불리던 1980년대에 어떻게 이런 독특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개그맨>처럼 독특한 영화적 언어와 상상력을 갖춘 재기 발랄한 작품을 찾기 쉽지 않다. 1980년대 말은 한국의 표현주의 대가로 불리는 이명세 감독 외에도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등 감독만의 고유한 시선과 담대한 연출로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아낸 사회파 리얼리즘 영화들이 봇물을 이루던 시기였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검열 강화로 대중들 사이에서 '저질'로 인식된 한국 영화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6월 민주항쟁을 정점으로 폭발한 민주화 열기, 영화 사전 검열 제도 폐지 헌재 판결 등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한 영화인들의 노력이 컸다. 

1960년대 초까지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 했던 한국 영화가 1980년대 중반까지 침체기를 겪은 것은 독재 정권의 검열 때문이었다. 당시 검열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였나면, 검열당국이 박중훈의 데뷔작 <깜보>(1986)에서 주인공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두고, 전두환 대통령이 통치하시는 태평성대에 두 주인공이 헤어지므로 퇴폐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낙후된 장면이 조금이라도 나오거나 경찰, 군인들이 불량스럽게 나와도 이유불문하고 필름을 삭제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지만 이게 불과 30여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검열에서 벗어난 뒤 만난 스크린 독과점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JTBC <방구석 1열> 한 장면 ⓒ JTBC



민주화에 대한 시대의 열망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들의 노력 덕분에 영화 완성도의 발목을 잡곤 했던 검열 문제는 사라졌지만, 한국 영화는 최근 스크린 독과점 이라는 또다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애초 한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 대다수의 멀티플렉스 극장은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의 선택을 저해 한다.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특정 영화에 제작비가 편중되는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과연 한국 영화는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변화도 있었을까. 

< M > 이후 한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다가 2017년 JTBC <전체관람가>에서 선보인 단편영화 <그대 없이 못살아>로 화제의 반열에 오른 이명세 감독의 장편 신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다양성과 상영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해결돼야, 관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릴 독특한 표현주의를 고수하는 이명세의 신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명실상부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감독 이명세의 신작을 기대한다. 
방구석 1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감독 박중훈 스크린 독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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