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스틸컷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오마이스타>의 공모를 읽어내려 갈수록 내 얘기다 싶었다. 그러나 예시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부분이 이미 있었기에 마음을 접었다. 그러나 그날 하루 종일 머릿속엔 '오마이스타 기사 공모'라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9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난 내가 시차 9시간의 먼 나라 록 그룹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전까지 전혀 하지 못했다. 왕년에 아이돌 그룹 '덕질'을 한 나였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학창시절의 이야기다. 현재는 K팝에 무지한, 간간이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것은 개봉한지 일주일도 안 된 시기였다.

그룹 '퀸'에 대해서는 그저 영국인이라는 것 이외에는 전혀 몰랐다(그 마저도 2012 런던올림픽 때 알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엔 정말 말 그대로 심장이 터질 뻔 했다. 퀸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들은 적도, 화면에서 얼굴을 접해본 적 도 없지만 20대인 나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곡들이었고 영화 속 밴드의 모든 서사도 드라마틱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그 후로 이 위대한 퀸을 더 알아보고 싶어서 각종 매체를 통해 조사하고 공부했고, 그 과정이 더 깊어지면서 '덕질'이 됐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이런 감정을 느낀 젊은이(혹은 어르신)들은 나뿐만이 아니었고 극장가와 배급사도 나의 덕질을 도와주었다. 태어나서 극장에서 노래를 불러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싱어롱' 상영관이 따로 생겨 우리는 매주 라이브에이드 현장에서처럼 '떼창'을 하고 콘서트를 즐겼다. 어느 날은 방송사에서 퀸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며 <보헤미안 랩소디> 대관 관람을 진행하고 그 안에서 일명 '퀸치광이'가 된 사람들을 취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콧수염을 붙이고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또 그곳에 모여 '퀸친'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위 아 더 챔피언!" 2002년 월드컵 때 같았다. n차 관람(똑같은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는 행위)도 놀랍고 코스프레도 물론 놀랍지만, 또 다른 놀라운 점은 퀸의 팬에는 남녀노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성별은 물론이거니와, 나처럼 영화를 통해 새로이 알고 '입덕'을 하게 된 2030세대, LP시절 들었던 퀸을 추억하는 4050세대까지. 그들의 밸런스가 적절하다. 나 또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여러 번 봤지만 볼 때마다 극장 분위기도 좋았다.
 
 11월 26일 45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딱 네 가지만 '주접'을 떨어보겠다. 첫 번째로 안타깝게도 이 글을 번역한다고 해도 읽을 수 없게 된 프레디 머큐리(1945~1991)는 최고의 보컬리스트이자 밴드의 프론트맨이며 프로페셔널한 불멸의 퍼포머다. 프레디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남성성 짙은 콧수염과 대비되게, 그는 생각보다 굉장히 여리고 배려심이 상당한 인물이다. 또한 고양이를 좋아하는 등 소년같은 면도 있는 '스윗'한 사람이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1947~)는 천체물리학 박사 출신인데다 영국 여왕의 훈장을 받은 적도 있으며 한 때는 퀸과 대학교 총장까지 겸임한 천재적인 캐릭터다. 퀸의 백 보컬이기도한 로저 테일러(1949~)는 혹평가들도 칭찬할 수준의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외모를 가진 반면, 모든 인터뷰에 거침 없는 불타는 드러머다. 프레디의 사망 후 브라이언과 함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은퇴한 존 디콘(1951~)은 굉장히 조용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인터뷰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본인이 맡은 바 할 말은 하는 성격이랄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퀸은 정말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영화와도 같은 밴드다. 예전 일화나 데이터들을 살펴보면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더 영화 같은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퀸의 전 앨범은 자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Under pressure 데이빗 보위와 공동 작업) 그들이 범 우주적인 장르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멤버 4명의 각기 다른 매력이 만나 태양계와 같은 안정된 균형을 이루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가끔 소행성만한 충돌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퀸은 20세기의 거대한 센세이션이었다. 지금 그 노래를 들어도, 그 무대를 보아도 세련되게 느껴진다. 게다가 지금 세대의 사람들도 거의 다 알 만큼의 대중적인 곡들을 남겼다는 것은 밴드로서 매우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활동 당시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 게 많아,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그들이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어도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이 정도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극장상영이 내리는 날 끝이지만 퀸과 '퀸치광이'들의 광시곡은 무한히 연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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