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몰카'라는 글자가 래퍼 산이의 지상파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한국은 아직 불법촬영 및 유포를 취향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무대 기획을 용인하고 그대로 송출한 MBC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13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페이스북 계정에 이 같은 글과 관련 사진을 공유했다. 두 눈을 의심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엄단'을 지시한 디지털 성범죄와 웹하드 불법 동영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나날이 여성들의 공분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이 버젓이 저런 문구를, 영상을 내보냈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확인해 봤다. 해당 영상은 지난달 31일 방송된 MBC 힙합 서바이벌 < Target: Billboard - KILL BILL >(아래 <킬빌>) 첫 회 후반부에 나왔다. 1차 경연 무대의 첫 주자로 나선 산이가 '워너비 래퍼(Wannabe Rapper)'를 선보였고, 해당 문구는 2절 "왜 여잘 혐오해", "I'm feminist"라는 가사 부분의 무대 스크린 배경에 등장했다. 누군가는 지나칠 수 있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해당 가사와 함께 충분히 인지될 만한 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13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에 따르면, <킬빌> 제작진 측은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에 대해서는 아티스트들에게 일임했다"며 "무대 내용과 콘셉트는 아티스트들이 전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밝혔다. 무대를 기획한 출연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이 정도 해명에서 그칠 일이 맞을까.
 
"여잘 왜 혐오해, I'm feminist (u know), I love them ladies."
  
 MBC < Target : Billboard - KILL BILL >의 한 장면.

MBC < Target : Billboard - KILL BILL >의 한 장면.ⓒ MBC

 
<킬빌>은 가수 김종국이 진행을 맡고 래퍼 도끼, 비와이, 리듬파워, 치타, 산이, 제시, YDG(양동근) 등 유명 래퍼들이 팀을 짜 출연하는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앞서 Mnet <쇼미더머니>처럼 힙합을 주로 듣는 10대와 20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MBC도 최근 "1월 31일 첫 방송된 MBC 힙합 서바이벌 <킬빌>이 방송 2회 만에 시청자들에게 파워풀한 영향력을 보이며 상승세를 입증했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킬빌>이 CJ E&M과 닐슨코리아가 공동 개발한 소비자 행동 기반 콘텐츠 영향력 측정 모델인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 Contents Power Index) 1월 5주차 순위 중에서 3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MBC는 "1월 31일 첫 방송된 신규 프로그램임을 감안하면 매서운 상승세"라고 자찬했다.

그렇다면 더욱 문제이지 않은가. 그 정도 영향력을 지닌 프로그램에서 'I ♡ 몰카'라는 문구가 걸러지지 않은 채 전파를 탔고,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같이 이를 발견한 시청자들이 불쾌감을 드러내고 항의에 나섰다면 말이다.
 
사실 'I ♡ 몰카'라는 문구도 문제거니와 산이가 '워너비 래퍼(Wannabe Rapper)'를 지상파 무대에 선보였다는 것 자체도 어떤 의도를 엿보이게 한다. 앞서 작년 10월 발표한 이 곡은 11월 공개한 '페미니스트'와 함께 논란을 불러 온 바 있다.
(관련 기사: '여혐' 딱지 억울하단 래퍼 산이... 만회할 방법은 딱 하나).

좀 더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소위 '여혐'을 드러내거나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투의 가사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산이는 <킬빌>에서 문제가 됐던 가사를 살짝 개사했다. 원곡에서 "I love them bitches"였던 부분을 "I love them ladies"로,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전 국민 쇼미더머니"로 바꾼 수준이다. 'I ♡ 몰카'라는 화면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킬빌>에서 선보인 가사는 이랬다.
 
"wannabe rapper/ 래퍼 되고 싶어/ 아빠 아빠도 봤지 잘 나가면/ 생겨 hater / 걔넨 걍 hate all /남북 편 갈러 /우린 달라(우린 틀려)/ 모 아님 도(흑 아님 백)/ 저기요 저기 개 돼지/ (제길 제길) (응 안 돼)/ 여잘 왜 혐오해(no no no)/ I'm feminist (u know) / I love them ladies."

단언컨대, '반어'라고 하면 반어의 뜻을 잘못 이해했고, 행여 '풍자'라고 한다면 지극히 1차원적인 가사의 반복 수준이다. 곡 전체 가사가 그 수준이다. 래퍼로서의 자의식을 한껏 드러내면서 한국 사회의 논란이나 갈등을 그저 나열한다.
 
곡 발표 당시 일각에선 "걔넨 걍 hate all 남북 편 갈러", "한남 김치 좌익 우익 (fight) 싸움 구경"과 같은 구절을 두고 '남녀혐오'를 모두 저격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과연 그런가. 이를 비판하는 산이는 이 곡에서 그 어떤 관점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이브한 '모두 까기'는 "난 달라 난 틀려", "우린 달라 우린 틀려"라는 구절을 심지어 '래퍼 산이 나는 다르다'로 읽히게 할 정도다. 이 시대의 '만병통치약'인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I ♡ 몰카'라는 '의견'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산이가 부디 반어법이라거나 실수라는 해명을 내놓지는 마시기를.
 
"하고 싶은 거 다 했다"는 산이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 
 
 MBC < Target : Billboard - KILL BILL >의 한 장면.

MBC < Target : Billboard - KILL BILL >의 한 장면.ⓒ MBC


<킬빌> 속 산이의 'I ♡ 몰카' 화면이 연상시키는 것은 잊을만 하면 논란과 비난을 불러 일으켰던 '일베'(일간베스트)의 이미지들이다. 방송국 제작진들이 내외부 자료 이미지를 잘못 사용했다고 해명하기 일쑤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이미지나 세월호 희생자 비하 이미지들 말이다. 작년 <전지적 참견 시점>이 일베의 세월호 비하 이미지를 사용해, 비난에 직면했던 방송사 역시 MBC였다.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비하하는 문구나 화면이 아니었다 해도, 제작진이 좀 더 세심하면 좋았을 일이다. 산이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와 웹하드 불법 동영상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진영논리의 문제도 아니고, 비단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안도 아니다. 이 '몰카' 범죄는 사회적인 논의 속에서 엄벌과 엄단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 상황에서 'I ♡ 몰카'란 문구와 화면을 버젓이 지상파에 내보낸 MBC 제작진은, 또 이 무대를 직접 기획했다는 산이는 어떤 해명을 내놓을 수 있을까. 누구도 세월호 희생자 비하나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를 '반어'라고 하지 않는다. 성립 자체가 안 된다. 행여 산이가 '반어' 운운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산이야 추하다 이런 거 던지고 하는 사람들한테 내가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노, 너네는 정신병."
 
작년 12월 2일 전 소속사였던 브랜뉴뮤직 콘서트에서 산이가 한 발언들이 파장을 불렀고, 결국 브랜뉴뮤직 측은 부랴부랴 "모든 논란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과와 함께 6일 산이 전속 계약 만료를 선언했다. 이후 산이는 지상파에서 얼굴을 비추기보다 '유튜버'로서 '여혐'과 '반페미니스트'의 투사(?)로 활약하는 중이다. 그 이후 산이는 "일베와 워마드 모두 폐쇄"를 부르짖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추천하는 아티스트에 등극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킬빌> 속 산이의 '워너비 래퍼' 무대와 'I ♡ 몰카'라는 문구가 브랜뉴뮤직 콘서트 당시 산이의 언행을 연상시키는 것은. 유튜브에 공개된 공연 전후의 전체 영상에서 산이는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을 훈계하고 가르치며 심지어 조롱하고 비하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마치 "정신병"을 가진 '어린' 페미니스트들이 한심하다는 듯, 혐오의 대상이라는 듯. 서구 사회는 그런 이들을 바로 극우 혐오주의자라고 부른다.

"(무대에서) 하고픈 거 다 했어요. 생각했던 그림 그대로 나왔던 것 같아요. 어떤 환경이건 간에 좋은 퍼포먼스면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킬빌> 1회에서 무대를 마친 산이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이의 말마따나, <킬빌> 속 '워너비 래퍼' 무대는 산이가 "생각했던 그림 그대로"이면서 "하고픈 걸 다 한" 무대였던 것 같다. "I ♡ 몰카"라고 외치는 산이가 과연 누구의,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지도 만천하에 알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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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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