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2018) 포스터

영화 <가버나움>(2018)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지 못하는 어른들 속에서 자인(자인 알 라피아 분)은 그나마 자신이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아이다.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면서도 계속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거리로 내몬다. 

학교를 다니는 또래 아이들을 동경하고, 악동 짓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큰 불평 불만이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자인. 그가 폭발한 것은 자신의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 분)의 결혼이다. 16명의 아이를 둔 자인의 부모는 입 하나 줄이겠다는 심산으로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11살 딸을 그녀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동네 상점 직원에게 팔듯이 시집을 보낸다. 동생의 매매혼을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이를 저지할 아무 힘이 없었던 자인은 집을 뛰쳐나가고, 한 놀이공원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는 미혼모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 분)을 만난다.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가버나움>(2018)은 지난해 열린 제71회 칸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으면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현재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와 인접해있는 레바논 등 현재 이슬람 국가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총망라한다.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는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만 낳을 뿐, 아이들을 위한 어떤 노동도 돌봄도 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계의 책임은 오롯이 이제 겨우 12살(혹은 13살) 소년에 불과한 자인과 그의 동생들에게 떠넘겨진다. 자인의 부모는 이렇게 항변한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산 죄 밖에 없어요.'

자식들이 인간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거리에 나앉게 하는 부모. <가버나움>의 자인의 부모는 무책임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자인의 부모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 가족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자인의 부모를 비난할 수도 있다. 기자도 같은 심경이었다. 자신의 문제에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책임질만한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어도,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던 자인의 가족 상황은 자인의 부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에티오피아 출신 불법체류자의 등장으로 구체화 되어간다. 자인의 부모와 달리 라힐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행여나 자신과 아이 모두 레바논에서 추방되고, 아이마저 뺏길까봐 그는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가정부까지 그만둬야 했다. 갓난 아이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분)를 데리고 투잡을 강행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라힐은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자인의 부모도 매한가지다. 그런데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클 수 있게 노력하기보다, 아이들을 낳는 행위에만 열중하는 것 같다. 현재 아이들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인의 부모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으로 자신들의 가난과 고통을 보상받으려 하는 것 같다. 자인의 부모 또한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거리로 나 안기를 원하지 않았고, 이제 막 초경을 뗀 어린 딸이 팔려가듯이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다가 죽는 비참한 최후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둘러싼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각할 겨를 조차 없는 자인의 부모는 자식을 잃을 고통 또한 또다른 자식을 낳음으로서 극복하고자 한다.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가버나움>은 자인에게 벌어진 모든 불행과 비극을 그를 태어나게 한 부모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대책없이 아이만 낳은 자인의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허나 아직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 아이들을 돌볼 책임을 떠맡기게 된 자인의 고통에 대해 그의 부모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영화에서 자인과 그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허구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자인과 사하르에게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 난민촌 혹은 전쟁 혹은 기근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고, 라힐과 같은 불법 체류자 문제 때문에 전 세계가 시끄러운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인 알 라피아는 극중 자인처럼 실제로도 학교 문턱조차 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배달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이었다. 그를 포함한 출연진 대부분이 시리아 난민, 불법체류자 등 극중 인물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비 전문 배우들로 구성되어 더욱 현실감을 부여한 <가버나움>은 영화 속 자인이 처한 문제가 영화 밖 현실 세계에서도 계속 되고 있음을 환기 시킨다.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2018)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레바논의 일상적 풍경이 되어버린 난민 위기와 거리의 아이들에게 강한 죄책감과 문제의식을 느끼며 4년간 <가버나움> 제작 준비에 매달렸다는 나딘 라비키 감독은 촬영 후에도 출연 배우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는 한편, 자인과 같은 아이들을 위한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할 정도로 감독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는 아이의 고통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를 응시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감독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영화 <가버나움>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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