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의 밀풍군 이탄(정문성 분).

<해치>의 밀풍군 이탄(정문성 분).ⓒ SBS

  
지난 11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SBS 월화 드라마 <해치>에 밀풍군 이탄(정문성 분)이 등장한다. 하근찬 소설 <수난이대>와 같지는 않지만 상당한 고난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1957년 소설인 <수난이대>는 대를 잇는 민족적 수난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일제 때 강제징용으로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 박만도와 한국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 박진수가 등장한다. 참전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맞으러 아버지는 신바람 나서 달려나간다. 하지만, 한쪽 다리 없는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가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껴고 서 있는데, 스쳐 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이는 것이 아닌가."
 
눈앞이 노래지면서 한참 멍멍했던 박만도는 "에라이 이놈아!"라며 모질게 토해낸 뒤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중에 개천이 나오고 외나무다리가 나온다. 아버지는 등어리를 아들 앞에 갖다 댄다. 아들은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아버지 등에 매달려 목줄기를 부둥켜 안는다.
 
부자는 그렇게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아버지는 속으로 '세상을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하고 외치고, 아들은 속으로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하며 중얼거린다.
 
실제 우리 민족의 처지는 이보다 더했다. 아들 세대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훈 혜택이라도 받았지만, 아버지 세대는 일본 정부로부터 여태껏 배상을 받지 못해 해방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일관계가 뒤숭숭하다. 우리 대법원이 '박만도'에 대한 배상을 명하자, 일본은 '다 지난 일'이라며 도리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인질이 돼 25세 나이로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

박만도 부자의 비극과 사정은 좀 다르지만, <해치> 속 소현세자 혈통의 시련도 상당했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뒤 인질이 돼 25세 나이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조선과 청나라의 평화협정을 담보하고자 인질이 됐던 것이다. 고생 끝에 귀국한 시점은 8년 뒤인 1645년, 33세 때였다.
 
왕조를 위해 8년간이나 희생했지만 보답을 받을 기회도 없이, 귀국 2개월 뒤 창경궁 환경전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음력으로 인조 23년 6월 27일자(양력 1645년 7월 20일자) <인조실록>에서는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러나왔다"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 같았다"고 했다.
 
 창경궁 환경전. 빨간 줄 친 부분에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곳"이라고 적혀 있다.

창경궁 환경전. 빨간 줄 친 부분에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곳"이라고 적혀 있다.ⓒ 김종성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있을 때 아버지 인조의 의심을 샀다. 청나라 사람들과 좋게 지내는 아들이 아버지는 의심스러웠다. 혹시 청나라를 등에 업고 자기 왕권을 위협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래서 인조는 사람을 시켜 소현세자를 사찰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벌어진 상태로 귀국한 직후에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진 것이다.
 
소현세자는 죽어서도 아버지의 미움을 받았다. 소현이 미웠던 나머지, 인조는 유족한테 증오심을 쏟아냈다. 며느리인 강빈한테는 시아버지 음식에 독약을 탔다는 혐의로 사약을 내렸다. 소현의 세 아들인 이석철·이석린·이석견은 제주도로 귀양보냈다. 소현세자의 비극이 자식 대로 이어지는 '수난이대'가 된 것이다.
 
이석철은 12세에 죽고 이석린은 8세에 죽었다. 이석견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이석견은 자식들도 낳았다. 하지만 오래 살지는 못했다. 21세에 생을 마감했다.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봉림대군)은 조카 이석견을 후대했다. 아버지 인조와 달리 소현세자 혈육을 동정하고 보호했다. 왕이 된 뒤 효종은 이석견의 왕족 지위를 회복시키고 경안군으로 책봉했다.
 
숙종시대에 또 다시 시련을 겪은 소현세자 혈통

<수난이대>는 박만도 가문의 상황을 '2대의 비극'으로 묘사했다. 그에 비해 소현세자 혈통의 비극은 2대로 끝나지 않았다. 드라마 <해치>가 다루는 숙종시대에 이 혈통은 또다시 시련을 겪었다. 이석견의 장남인 임창군을 왕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흉서가 나돌면서 임창군이 역모죄에 연루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임창군과 동생 임성군이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소현세자의 아들 세대인 이석철·이석린·이석견처럼 손자 세대인 임창군·임성군도 똑같이 제주도로 가게 된 것이다. 수난이대가 수난삼대로 이어진 셈이다. 이 귀양살이는 5년간 이어졌다.
 
그 뒤 임창군은 명예를 회복했다. 숙종의 관심 속에 네 번이나 사신 자격으로 청나라를 방문했다. 임창군 아들인 밀풍군 이탄도 그랬다. <해치>에 등장하는 밀풍군도 두 차례나 사신이 돼 청나라에 갔다 왔다.
 
하지만 밀풍군은 끝이 안 좋았다. 숙종의 아들이자 다음다음 왕인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 연루돼 역모 혐의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 '수난사대'로 연결된 것이다. 어쩌면 밀풍군도 '세상을 잘못 만나서 내 신세도 참 똥이다 똥' 하고 중얼거렸을지 모른다. 

숙종의 왕자들 무시하는, 거만한 밀풍군?
 
 <해치> 메인 페이지.

<해치> 메인 페이지.ⓒ SBS

   
<해치>에서는 밀풍군이 숙종의 총애를 받는 장면이 묘사된다. 숙종은 자기 아들들보다 밀풍군을 더 총애한다. 이런 속에서 밀풍군이 미래의 왕으로 주목받는다. 정치권도 힘을 실어준다. 세자가 있는데도 밀풍군이 더 주목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 도취된 나머지, 밀풍군은 세자와 연잉군 이금(정일우 분, 훗날의 영조)을 비롯한 숙종의 왕자들을 무시하고 거만하게 군다. 세를 과시하고자 거창한 사냥대회도 개최한다. 또 이금과 다모인 여지(고아라 분)는 밀풍군의 살생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나온다.
 
밀풍군이 숙종의 총애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효종의 후손들은 소현세자 혈통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그쪽으로 갔어야 할 왕권을 자신들이 받았기 때문이다. 숙종도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숙종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비슷한 동정론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밀풍군이 거만하게 세도를 부릴 정도는 아니었다.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밀풍군이 그런 위세를 부렸을 가능성은 낮다. 동정론을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증조부가 인조의 미움을 샀고 조부 이석견이 유배 생활을 했고 아버지 임창군이 역모에 연루된 적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었다.
 
거기다가 드라마 내용과 달리 숙종의 장남인 경종의 지위가 매우 탄탄했다. 왕위계승 경쟁에서 밀풍군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경종은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장희빈의 아들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했지만, 숙종의 장남으로서 원자(예비 후계자)에 이어 세자 지위에 올랐다는 강력한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정치권 다수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주도권을 쥐고 있던 보수파가 그를 후원했다. 그래서 지위가 든든했다.
 
그 점은 장희빈의 연적인 인현왕후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현왕후는 어머니인 장희빈은 미워하면서도 아들인 경종만큼은 무척 좋아했다. 경종의 인간성과 붙임성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전기라고도 하고 소설이라고도 하는 작자 미상의 <인현왕후전>에 소개된 에피소드에서도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인현왕후가 경종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이 책에 소개된 인현왕후의 죽기 전 마지막 생일 잔치에서 나타난다.
 
중전 자리에 복귀한 뒤인 인현왕후는 다른 선물은 다 받으면서도 장희빈의 옷 선물만큼은 받지 않았다. 중병에 걸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연적에 대한 앙금을 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자인 경종이 그 옷을 들고 가서 바치자 "(인현왕후는) 세자의 간절한 효성과 얼굴을 보아" 부득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인현왕후전>은 말한다. 밀풍군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경종의 입지가 이처럼 튼튼했던 것이다.
 
소현세자에서 밀풍군에 이르는 4대의 수난은 박만도·박진수의 수난이대와 성격은 다르지만 이 역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밀풍군은 연민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왕실과 조정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거만하게 위세를 부릴 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밀풍군에 대한 <해치>의 묘사는 상당히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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