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올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딱 한 가지. 아주 짤막한 다짐을 했다.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자.' 때문에 좀 더 솔직하고 담백하게 관계 맺고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처음엔 잘 해 낼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두 번 남이 원하는 답이 아닌 내가 원하는 답을 이야기한 후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들켜버린 것은 아닌지, 다른 이들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노래가 들려왔다. 로시의 '술래'(작곡 신승훈, 작사 김이나). 내게 이 노래는 마치, 진짜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 두려운 나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드러낼 때의 두려움
 
 놀이터

어린 시절 '술래잡기'를 하던 놀이터 ⓒ Pixabay

 
"시간이 모자라 숨다 들켜버린 적이 있어. 그 때 그 날의 느낌이 난 계속되는 것 같아."

로시는 이렇게 노래를 시작한다. 아리송했다. 도대체 무슨 느낌 이길래, 그냥 '그 때 그 날의 그 느낌'이라고만 표현하는 걸까. 슬프거나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기쁘거나 뭐 이런 분명한 감정이 아닌, '그 느낌'이라니 얼마나 복잡한 감정인지 무척 궁금했다.

다음 소절 로시는 이렇게 이어간다. "한 걸음씩은 느린 난 네모난 돌멩이처럼 아무리 요령을 피워 봐도 다 들키곤 했어." 이제 감이 왔다. 무언가 들킨 것 같은 그 느낌.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바로 그 기분이었다. 타인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한 후, 누구를 만나고 무언가를 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 오묘한 느낌. 타인에게 비춰지는 나의 진짜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이런 느낌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반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인간중심 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는 저서 <진정한 사람되기>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자 할 때 보편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나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과 진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모두가 두려움이 동반되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바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시작점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 노래에서 로시는 '진짜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로시가 "머리카락 보일라 누가 열을 세기 시작해"라고 노래하듯,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숨긴 채 사회의 기준에 맞는 포장된 모습으로 살라고 요구한다. 때문에 로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허둥지둥 대다가 난 다시 술래가 된다"고.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기준과 진짜 나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허둥지둥 대며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술래'가 되는 것처럼 불안하고 낙오되며, 때로는 부끄러운 느낌을 가진 채 나 자신을 맞닥뜨린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말이다.
 
 로시의 '술래'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심리적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로시의 '술래'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심리적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주) 지니뮤직

 
왜 나 진짜 자신을 만나는 게 두려울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토록 '나'를 찾고 싶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게 두려운 걸까? 로저스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먼저,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해야만 한다'라는 말들이다. 부모가, 선생님이, 사회가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보내는 이 메시지는 '~하지 않으면 부끄럽다'는 생각을 내면화 시킨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기대되는' 행동들 역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을 두렵게 한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혹시라도 기준에 위배되는 것이 아닐까 자꾸만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때문에 자신의 내면보다는 타인의 반응에 더 가치를 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픈 욕구가 늘 꿈틀거린다.

로저스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려는 사람은 바로 이 세 가지. 의무와 기대,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규정해온 이 질서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가진 성장경향성, 즉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본능은 이 두려움을 맞닥뜨리고 자신을 찾아가도록 견인한다.

그래서일까. '그 때 그 느낌'에 힘겨워하던 로시는 결국 두려움의 실체를 맞닥뜨린다. "너에게 내 맘이 보인다"로 시작되는 하이라이트 부분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동시에 나 자신을 드러내고 받아들일 용기를 냈다는 의미로 들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소절 "하나 둘 셋도 세기 전에 한 걸음도 못 떼고 멍하니 널 보며 서 있다"에서 드러나듯 나의 진짜 내면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혼란스런 감정은 여전하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기'로 다짐한 후 느꼈던 혼란스러움의 실체도 바로 이것이었다.

억눌러왔던 자신의 진짜 자기를 맞닥뜨린 후 이를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란스럽지만,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지금껏 알고 있던 나의 모습과 통합시켜 가는 것이 성장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마침내 로시는 그 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이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오묘한 감정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다짐한다.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심장을 손에 쥔 것처럼 바보 같겠지만은 이게 내 마음인거야"라면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의 변화
 
 뛰어 노는 어린아이

넓은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건 술래만의 특권이다. ⓒ Pixabay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자 드디어 변화는 시작된다. 먼저 자신의 목표와 꿈,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된다. "하루쯤은 누구보다 더 멀리 달려가고 싶어.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태양을 보면서"는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는 환희를 담은 소절이다. 이전까지 타인의 요구대로 맞추며 드러내지 못했던 나의 꿈을 이젠 드러내고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는 포부다.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보다 잘 전달하며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너에게 내 맘이 닿는다. 하나 둘 모아둔 말들이"는 자신의 마음을 보다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두려움에서 한 발 나가 이런 변화를 실천하다 보면 어느 새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로시가 "허둥대지 않고 난 너를 바라보며 서 있다"라고 노래하듯이 말이다. 이 소절서 '너'는 타인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 혹은 변해가는 다양한 상황들까지 포함하는 표현이다. 즉,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과 상황들을 이젠 허둥대지 않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삶의 방향성과, 경험에 대해 개방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 보다 잘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나에게 네 맘이 들린다"라는 소절은 나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이 타인에 대한 수용으로 이어짐을 표현한 부분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를 개방적으로 대할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는 것은 완성되는 목표라기보다는 살아있는 내내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손에 쥐어지는 실체이기 보다는 점점 가까워지지만 완벽하게 도달하기는 힘든 꿈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로시는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나 선명해서 꿈인 줄도 모르고"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꿈은 자면서 꾸는 꿈인 동시에 우리가 마음에 지닌 근원적인 꿈,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표현한 말일 것이다. 아마도 로시는 이런 간절한 마음을 자는 동안 꿈속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숨바꼭질 놀이를 참 좋아했다. 숨어 있는 동안엔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들킬까봐 두려워했다. 하지만 일단 들킨 후 '술래'가 되고나면 오히려 후련해지고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고 숨죽인 채 있어야 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술래만의 특권을 누렸다. 올 해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자'라는 목표를 세운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들키는 위험을 감수하는 '술래'가 되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2019년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함, 물러서고 싶은 마음을 이젠 피하지 않으려 한다. 로시가 용기를 내서 '술래'가 됨을 받아들였듯, 나도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봐야겠다. 이제 막 설이 지났으니 음력으로는 다시 새 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늦지 않았다. 비록 끝나지 않는 과정이긴 하겠지만, "그날을 기다려 난".

"시간이 모자라 숨다 들켜 버린 적이 있어
그때 그날의 느낌이 난 계속되는 것 같아

한 걸음씩은 느린 난 네모난 돌멩이처럼
아무리 요령을 피워봐도 다 들키곤 했어

머리카락 보일라
누가 열을 세기 시작해
허둥지둥 대다가 난 다시 술래가 된다

너에게 내 맘이 보인다
하나 둘, 셋도 세기 전에
한 걸음도 못 떼고 멍하니 널 보며 서 있다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심장을 손에 쥔 것처럼
바보 같겠지 만은 이게 내 마음인 거야

해 질 녘 운동장에 혼자 남은 적이 있어
그때 그날의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 없어

길을 잃은 것 같은
수수께끼 같은 그 기분
익숙한 곳에서도 난 가끔 혼자가 된다

너에게 내 맘이 보인다
하나 둘, 셋도 세기 전에
한 걸음도 못 떼고 멍하니 널 보며 서 있다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심장을 손에 쥔 것처럼
바보 같겠지 만은 이게 내 마음인 거야

하루쯤은 누구보다 더
멀리 달려가고 싶어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태양을 보면서

너에게 내 맘이 닿는다
하나 둘 모아둔 말들이
허둥대지 않고 난 너를 바라보며 서 있다 (너를 바라본다)

나에게 네 맘이 들린다 (네가 웃어준다)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너무나 선명해서 꿈인 줄도 모르고 (너를 불러본다)

그날을 기다려 난."
- 로시 '술래' 가사 전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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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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