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의 고춧가루는 선두 경쟁을 하는 팀에게도 차별 없이(?) 뿌려졌다.

권순찬 감독이 이끄는 KB손해보험 스타즈는 1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22, 23-25, 25-22, 25-20)로 승리했다. KB는 5라운드 6경기를 5승1패로 마감하며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이는 상위권 팀들에게 매운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12승18패).

KB손해보험은 외국인 선수 펠리페 안톤 반데로(등록명 펠리페)가 41%의 공격점유율을 책임지며 24득점을 기록했고 교체 투입된 김정호도 65%의 성공률로 13득점을 올리며 승리에 기여했다. KB손해보험의 선전은 선두 경쟁을 벌이는 상위권 팀들의 순위경쟁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며 남자부 후반기를 더욱 흥미롭게 하고 있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이 뒤늦게 상승세를 탈수록 배구팬들의 아쉬움도 그만큼 더 커지고 있다.

프로 출범 후 봄 배구 단 3회에 그친 남자부의 대표적인 약체
 
 지난 시즌 한국전력에서 활약했던 펠리페는 KB손해보험에서도 변함 없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시즌 한국전력에서 활약했던 펠리페는 KB손해보험에서도 변함 없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05년 프로배구가 출범할 당시 남자부는 삼성화재 블루팡스와 현대캐피탈이 확고부동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더 정확히 말하면 삼성화재의 독주 속에 현대캐피탈이 추격을 하는 구도). 실제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V리그 출범 후 무려 6시즌 연속으로 챔프전에서 격돌했다. 당시 V리그 남자부는 '6~7개 팀이 5개월 넘게 투닥 거리다가 삼성과 현대가 결승에서 맞붙는 리그'라고 정의해도 큰 과장이 아니었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양강구도 속에서 KB손해보험(구 LIG손해보험)과 대한항공 점보스는 3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프로 초기에는 이경수라는 국내 최고의 거포를 보유하고 있던 KB손해보험이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신영수, 김학민, 한선수 등 우수한 신인들을 꾸준히 지명한 반면 KB손해보험은 한국전력 빅스톰의 드래프트 참가와 우리캐피탈 드림식스(현 우리카드 위비)의 창단 바람 속에 만족할 만한 전력보강을 하지 못했다.

KB손해보험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요한(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이라는 대학배구 최고의 거포를 지명하면서 이경수와 김요한, 외국인 선수로 이어지는 강력한 삼각편대를 구축했다. 하지만 김요한이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때부터 기존의 주포였던 이경수가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결국 KB손해보험이 자랑하는 삼각편대가 모두 최상의 컨디션으로 위력을 발휘했던 시즌은 거의 없었다.

고질적인 세터 문제도 KB손해보험의 큰 고민거리였다. 최태웅(현대캐피탈 감독)과 유광우(우리카드)를 거느린 삼성화재와 권영민(한국전력 코치)이 활약한 현대캐피탈, 그리고 한선수가 자리 잡은 대한항공에 비해 LIG손해보험은 팀을 이끄는 확실한 주전세터가 없었다. 2008년에는 선수 3명을 내주면서 루키 황동일 세터(삼성화재)를 영입했지만 황동일의 성장 속도는 구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KB손해보험은 프로 출범 후 두 시즌, 그리고 2010-2011 시즌에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매 시즌 봄 배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기예르모 팔라스카와 밀란 페피치, 오레올 까메호, 토마스 패트릭 에드가 등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은 좋았지만 KB손해보험은 2010-2011 시즌 이후 무려 7시즌 동안 봄 배구에 나서지 못했다. 이는 창단 후 한 번도 봄 배구에 나서지 못했던 우리카드를 제외하면 V리그 역대 최장기간 기록이다.

봄 배구 멀어진 후 5라운드 5승1패 상승세, 고춧가루 부대에 만족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KB손해보험은 드디어 황택의라는 확실한 주전세터를 얻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KB손해보험은 드디어 황택의라는 확실한 주전세터를 얻었다. ⓒ 한국배구연맹

 
KB손해보험은 지난 시즌에도 3위 대한항공에게 승점 7점 뒤진 4위에 머무르며 봄 배구 나들이에 실패했다. 하지만 19승17패로 7시즌 만에 5할 승률을 넘기면서 도약의 가능성을 확인한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포르투갈 출신 외국인 선수 알렉산드리 페레이라(등록명 알렉스)가 득점 5위(832점)에 오르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불안하던 세터 자리는 190cm의 좋은 신장에 강서브를 갖춘 황택의가 자리 잡았다.

배구팬들은 황두연, 이강원(삼성화재) 등 국내 선수들의 지원만 더해진다면 LIG손해보험이 충분히 봄 배구 경쟁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4라운드까지 LIG가 따낸 승리는 고작 7승이었다. 외국인 선수 알렉스가 컵대회에서 복근부상을 당하며 조기 교체됐고 황택의 세터도 시즌 초반 발목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결장했다.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르며 개막 16연패를 당한 한국전력을 제외하면 사실상 리그 최하위나 다름 없었다.

봄 배구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에서 마음의 부담을 내려 놓은 것일까. KB손해보험은 지난 1월25일 대한항공과의 5라운드 첫 경기에서 이수황, 정동근 등 군 전역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따냈고 이어진 한국전력전에서도 3-2로 승리했다. 2일 우리카드에게 0-3으로 패하며 상승세가 꺾이는 듯 했지만 KB손해보험은 설연휴부터 OK저축은행과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을 차례로 제압하며 승점 9점을 챙기는 무서운 상승세를 탔다.

특히 11일 현대캐피탈과의 원정 경기에서 KB손해보험 선수들의 투지는 단연 돋보였다. 작년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KB손해보험으로 이적한 김정호는 교체 선수로 투입돼 13득점을 올리며 이번 시즌 개인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187cm의 단신 윙스파이커 김정호는 공수에서 팀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 황택의 세터는 안정된 토스워크와 함께 무려 6개의 서브득점을 기록하며 현대캐피탈의 리시브 라인을 크게 흔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KB손해보험의 상승세가 너무 늦게 시작됐다는 점이다. 5라운드에서 승점 13점을 챙겼음에도 KB손해보험은 여전히 7개 구단 중 6위에 머물러 있다. 봄 배구는 이미 좌절된 상황. 만약 KB손해보험의 상승세가 조금만 일찍 시작됐다면 남자부의 후반기 순위 경쟁은 훨씬 치열해졌을 것이다. KB손해보험으로서는 5라운드 상승세를 남은 6경기뿐 아니라 다음 시즌까지 연결해야만 그토록 염원하는 봄 배구 복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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