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래디우스> 포스터

영화 <래디우스> 포스터ⓒ (주)케이엠에이치


교통사고를 당한 뒤 깨어난 리암(디에고 클래튼호프 분)은 충격으로 인해 과거를 기억하질 못한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신분증으로 이름을 파악하고 살던 곳으로 향하던 중에 주위의 사람, 짐승, 새가 갑작스럽게 죽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처음엔 바이러스 탓으로 여겼지만, 곧 자신을 중심으로 한 특정 범위 내에 들어온 모든 생명체가 죽는다는 걸 깨닫는다.

두려움에 떨며 창고에 숨어 있던 리암에게 제인(샬롯 설리번 분)이 찾아온다. 제인은 자신이 리암과 같은 차를 타고 있었고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인은 리암의 근처에 와도 죽질 않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제인이 옆에 있으면 원인 모를 죽음의 현상이 멈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함께 나선다.

좋은 아이디어가 가진 힘, 놀라운 반전까지

<래디우스>는 캐나다에서 제작한 저예산 장르 영화다. 극의 대부분을 배우 2명이 이끌어 간다. SF(공상과학) 설정의 영화이지만, 변변한 특수효과는 볼 수 없다. 분명 규모만 본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발하는 빛은 엄청나다.
 
 영화 <래디우스> 스틸 컷

영화 <래디우스> 스틸 컷ⓒ (주)케이엠에이치


만약 당신을 중심으로 한 특정 반경 내에 들어온 생명체가 모두 죽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영화 <래디우스>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마치 드라마 <환상특급>이나 <제3의 눈>에서 봄직한 아이디어다.

도입부는 강렬하다. 리암 옆을 지나가던 차량의 운전자는 갑자기 쓰러지고 하늘에선 새가 떨어진다. 리암이 식당에 들르는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다. 평화롭던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은 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죽음의 풍경은 스티븐 킹의 <미래의 묵시록>, 또는 M. 나이트 샤말란의 <해프닝>이 주었던 충격에 버금간다.

SF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 <래디우스>는 계속 의문을 쌓아가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엔 '왜 사람들은 죽었나?', '왜 리암만 살았나?'로 궁금증을 갖게 한다. 제인이 나타난 다음부턴 '왜 제인은 죽지 않나?', '왜 제인이 있으면 영향이 나타나지 않나?'로 재미를 더한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진실의 퍼즐은 조금씩 맞춰진다. 그 끝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영리함이 가득한 서사, 비밀을 안 밝힌 이유
 
 영화 <래디우스> 스틸 컷

영화 <래디우스> 스틸 컷ⓒ (주)케이엠에이치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제목의 의미는 변화한다. '래디우스(radius)'는 '(특정 지점을 중심으로 한) 반경'을 뜻한다. 이것은 영화 속의 설정을 의미한다. 또한, '래디우스'는 '책임'의 반경도 된다. 리암 곁에서 벌어진 원인 모를 죽음은 누구의 잘못인가? 리암은 살인자인가, 아니면 희생자인가? 흥미로운 질문이다.

리암과 제인의 기억이 돌아온 후엔 '래디우스'는 '과거', 즉 지난 시간에 저지른 잘못의 반경으로 바뀐다. '인간은 과거의 잘못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영화는 묻는다. <래디우스>는 인연, 업보, 윤회 같은 동양적인 사상을 가져와 미스터리 스릴러 형태에 녹인 이야기인 셈이다.

<래디우스>는 리암과 제인에게 벌어진 초자연적인 현상의 원인을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특정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선택과 그런 결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에 오롯이 집중한다. 조지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좀비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고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좋은 아이디어는 넘친다. 하지만 그것을 단편이 아닌, 장편의 서사로 흥미진진하게 엮어낸 사례는 흔치 않다. <래디우스>는 <메멘토>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와 마찬가지로 독창성이 돋보인다. 영리함으로 가득한 서사, 깜짝 놀랄 만한 반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질문도 갖추었다. <래디우스>는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서사로 발전한 모범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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