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봉했던 영화 <소공녀>는 'N포세대'라고 불리는 오늘날 빈곤한 청년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미소(이솜 분)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청년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방세가 5만 원이 올라버렸다. 사실 누군가에게 5만 원은 하찮은 돈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정말로 큰 돈이다. 특히 일정한 일자리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청년들에게는 더더욱.

영화 속 미소의 모습은 실제로 오늘날 보편적인 청년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삼포세대'의 뜻처럼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최근 들어선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5포세대'가 출현했다.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급기야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하다가('N포세대') '실업과 신용불량'의 이중고를 겪는다는 '실신세대'라는 용어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지난 8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에서는 이처럼 청년들의 급한 사정을 악이용해 '작업대출'을 권하는 이들을 집중 추적했다. 

실업과 신용불량 '이중고'를 겪는 청년들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제작진은 불법적인 대출의 피해자들을 찾아간다. 방송에 출연한 희진씨는 대학시절 빌렸던 돈을 졸업하고 나서도 갚느라 끼니도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때우며 지내고 있다. 당시 학비를 내기 어려웠던 희진씨는 '학기 초에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다'며 브로커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가 제안받은 게 평범한 대출이 아니라 '작업대출'이었던 것. 일단 대출 받을 사람이 학생이지만 지시에 따라 직업이 있는 상태라고 속여 서류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출 전 월급이 들어온 내역이 있어야 한다면서 희진씨의 계좌번호를 요구했고, 이후 희진씨의 계좌로 돈이 입금되었다.

신청한 지 고작 5시간 뒤에 대출이 승인돼 희진씨의 통장으로 1000만 원이 입금됐다. 이쯤 되면 완벽한 눈속임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500만 원은 브로커가 수수료로 챙겼다고 한다. 3년 동안 희진씨는 대출금 이자로 매달 23만 원을 납부해야 했으니, 그의 경제 사정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문제는 브로커가 희진씨를 취업시킨 것으로 꾸몄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수료만 챙기고 잠적한 것이다. 이렇듯 작업대출은 의뢰인이 취업을 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고, 브로커는 절반가량의 돈을 수수료로 챙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작업대출을 받는 일은 꽤 쉬워보인다. 제작진이 직접 작업대출 브로커와 연락을 했더니, 브로커는 "무직이어도 대출이 가능하며 나이가 어리고 직장에 이제 곧 들어갈 나이니까 쉽게 상환할 수 있다"면서 고액대출을 유도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생들과 취준생들을 꼬드기는 것이다.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불법대출의 종류에는 작업대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구제한다'는 의미의 '내구제 대출'이라는 이름의 대출도 최근 성행하고 있다. 의뢰인이 자신의 명의로 각종 고가의 물품을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대출자는 제품 가격의 50%가량을 대출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브로커는 그 물품을 재판매해 돈을 챙긴다. 남는 것은 의뢰인이 매달 갚아야 할 렌트비와 각종 기기값이다. 결국 이름과 달리 채무자를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구제해주는 대출이 아닌 셈이다.
 
 KBS <추적 60분> 화면 갈무리.

KBS <추적 60분> 화면 갈무리. ⓒ 김민준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정환씨 역시 이런 방식의 '내구제 대출'로 인해 피해를 봤다. 그는 안마 의자, 매트리스, 정수기 등 12대의 가전제품을 렌트했다. 그런데 브로커는 대출금을 주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청주, 부산, 대구의 모 위치에 그 제품들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작진이 찾아가본 결과 대부분의 제품들이 제자리에 없었고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성윤씨는 '휴대전화 내구제 대출'을 받았다. 역시 돈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이어 성윤씨는 휴대전화 매장 점주와 브로커 간에 모종의 공모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제작진이 직접 매장에 찾아가 점주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그저 개통만 해주는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화가 두절된 브로커에게 점주가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내구제 사장'이라고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 게 포착됐다. 

이후 제작진은 인터넷상에서 '폰테크'라는 이름으로 휴대전화 개통과 매입을 동시에 처리해준다는 매장을 발견했다. 성윤씨의 말대로 공모관계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에 제작진은 자료를 취합해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수사를 의뢰했고, 자료 검토 결과 수색영장이 발부돼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압수수색이 진행된 현장에서는 출고가 170만 원짜리 최신형 휴대폰을 단돈 70만 원에 매입한 계약서가 발견되었다.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그리고 씁쓸한 풍경이 이어졌다. '폰테크'를 한다는 매장에 제작진이 방문해 '폰테크' 방식에 관해 묻자, 휴대전화 매장 직원은 '이것(휴대전화 개통-매입을 통한 불법대출)은 전혀 불법이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청년들이 불법대출의 수렁으로 빠져드는구나 싶었다. 방송에 따르면, 현재 민생사법경찰단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불법대출의 규모를 확인 중이라고 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청년 불법대출의 늪... 대안은 있을까
 
 KBS <추적 60분> 갈무리.

KBS <추적 60분> 갈무리. ⓒ KBS

 
이와 같은 불법대출을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실제 청년들의 상황이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기준으로 청년층의 실업률은 7.9%로, 같은 시기 중장년층의 실업률의 두 배 이상이다. 경제성장률 역시 2010년 6.5%로 10년 동안의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사회 전반적으로 저성장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은 청년들을 불법 대출에 빠져들기 더 쉽게 만든다. 그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떠나서, 분명한 점은 청년들이 불법대출에 빠져들 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추적60분>에서는 2012년 설립된 사회적 기업 '더불어사는사람들'의 사례도 다뤘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30만 원의 금액부터 대출해주고, 상환이 이뤄지면 조금 더 높은 금액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빈곤 청년들을 돕는 단체다. 또한 방송에서 이들 단체는 '청년들이 실제로는 적은 돈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마저 빌리려면 불법대출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방송에 따르면, '더불어사는사람들' 측에 의해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2020건의 대출이 진행되었고 6억 8천만 원의 대출이 승인되었다고 한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경제적 빈곤함을 해결하려는 청년에게 반드시 거액의 금액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날 <추적 60분>이 밝힌 걸 보면, 해당 단체로부터 청년들이 대출해간 금액은 1인당 평균 30여만 원 수준이었다.

비교적 적은 액수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은 청년들은 '큰 도움이 되었고 이 대출 덕분에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후기를 적었다. 이런 정도라고 하니, 결국 불법대출 문제는 조금의 도움조차 받지 못해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이들을 구제하는 쪽으로 해결할 일 아닐까.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KBS <추적 60분> ‘불법 대출 청년 '실신세대'를 노린다’편 중 한 장면 ⓒ KBS

 
여전히 불법대출은 성행 중이다. 또한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문제처럼 보인다. 결국 이런 문제를 좀 더 크게 공론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한재준 인하대 교수는 사정이 어려운 청년들 대상의 대출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낮은 금리라 해도 이자를 갚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N포세대'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청년들을 도우려면, 당장 불법대출 업체를 수사하는 것 이상으로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불과 한달에 5만 원 때문에 허덕였던 <소공녀> 속 미소와 같은 사례가 현실에서 더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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