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남자 <왕이 된 남자> 스틸컷

▲ 왕이 된 남자 <왕이 된 남자> 스틸컷 ⓒ tvN

  
여행 중에 현지 음식을 먹다 보면, 그곳 음식문화뿐 아니라 농업생산에 관한 느낌도 얻을 수 있다. 외국 농산물이나 다른 지방 농산물을 손님 식탁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현지에서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농산물로 밥상을 꾸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찰 음식에는 산나물이 많다. 스님들이 육식을 멀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찰 주변에서 가장 쉽게 채취할 수 있는 게 산나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북부에서 남부로 여행하면서 국수 식당들을 둘러보면, 남쪽으로 갈수록 쌀국수 식당이 많아진다. 세계적인 쌀 생산지인 동남아와 인접해지고 있다는 증표다.
 
여행은 인간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놓는 데 비해, 사극은 인간을 한 시간대에서 다른 시간대로 옮겨놓는다. 여행을 통해 음식문화의 지역별 차이를 알 수 있다면, 사극을 통해서는 그것의 시대별 차이를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시대 상황이나 기후환경 변화 따라 각기 상이한 음식문화를 형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방영되는 사극들은 그런 차이점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사극을 통해 옛날 음식문화를 접촉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tvN 월화 드라마 <왕이 된 남자>도 그런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이 드라마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왕이 된 남자>에는 광해군으로 불리는 군주가 등장하지 않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개작한 점이나 광해군 시대 경제개혁인 대동법이 거론되는 점 등을 보면, 이 드라마가 다루는 시대가 광해군이 등극한 1608년 이후임을 알 수 있다.
 
 
 장터에서 데이트하는 진짜 왕비와 가짜 왕.

장터에서 데이트하는 진짜 왕비와 가짜 왕. ⓒ tvN

 
 
그런데 <왕이 된 남자>에서 보여주는 음식문화는 광해군 시대라기보다는 차라리 20세기 이후에 훨씬 가깝다. 일례로 지난달 28일 방영된 7회에 나온 장면을 들 수 있다. 가짜 왕과 진짜 왕비의 장터 데이트에서 묘사된 장면이다.
 
진짜 왕을 대신해 임금 대역을 하는 가짜 왕 하선(여진구 분)이 잠행을 나갔다가, 친정에서 돌아오던 왕비 유소운(이세영 분)을 장터에서 우연히 만나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국밥에 고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저렇게 많이 줘도 이문이 남을까 싶을 정도였다. 주막집 주인이 국밥 두 그릇을 내려놓으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고 돌아간 직후였다.
 
중전: (건더기 얹은 숟가락을 턱 높이까지 쳐들며 궁금한 표정으로)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선: (긴장된 표정으로) 돼지 염통이오.
중전: (또 다른 건더기를 들어 보이며) 그럼 이것은요?
하선: 그건 창자.
······
하선: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미안하오. 중전은 이런 것을 드시지 못할 텐데. (자기 혼자 일어서며) 갑시다!
중전: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건더기를 씹어 삼킨 뒤) 너무 쫄깃합니다!
하선: 네?
중전: (계속 숟가락질하다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신첩 평생에 처음입니다!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이 돼지고기 국밥을 많이 먹었을 거라는 점이다. 광대 출신인 하선은 돼지의 염통과 창자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왕비를 국밥 집에 잘못 데리고 왔다고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하선 같은 서민들이 그런 음식을 많이 먹었을 거라는 인상을 전달하는 장면이다.
 
우리 민족은 고대에는 기마민족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목민족이었다. 고조선과 고구려가 활동한 만주는 물론이고 한반도 일부 지역에서도 오랫동안 유목문화가 존재했다. 고려 말까지만 해도 함경도는 주로 여진족이 거주하는 땅이었다. 여진족은 농경도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유목민이었다.
 
이렇게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민족은 본래 고기를 잘 먹었다. 그런데, 신라 법흥왕의 불교 수용을 계기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교 문화가 확산되면서 육식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북송) 사신단 실무자인 서긍은 <고려도경>이란 방문 보고서에서 "(고려인들은)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금지하기 때문에, 임금이나 재상이 아니면 양이나 돼지를 먹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김홍도의 <주막>.

김홍도의 <주막>. ⓒ 김홍도

 
 
채식 위주의 음식문화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이 시대에도 서민층은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또는 먹을 기회가 없었다. <왕이 된 남자> 속의 하선은 자기 시대 서민들이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임진왜란 종전으로부터 약 10년 뒤를 다루고 있다. 전란으로 인해 서민 경제가 매우 궁핍할 때였으며, 먹을 게 부족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육식도 더욱 더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산업구조를 보더라도 육식 문화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를 농경에 이용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은 감히 소를 건드리지 못했다. 가난한 농민이 소를 잡아 먹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트랙터나 경운기를 그냥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돼지의 경우에는, 사육하기 힘든 데다가 농사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농민들은 지금 농민들보다 훨씬 팍팍하게 살았기 때문에, 본업과 별도로 돼지 사육을 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돼지고기가 별로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유층이 아닌 한 돼지고기를 맛 보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한민족이 육식을 다시 선호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였다. 이때 시행된 돼지 품종개량으로 몸집이 큰 돼지가 많아졌다. 돼지고기의 양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가 돼지고기가 체내 먼지를 없애주는 등의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인의 식성이 옛날 유목민족 시대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약 1400년 만에 다시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왕이 된 남자>는 한국인들이 아직은 불교식 식습관을 갖고 있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는 일반 서민들이 장터에서 돼지국밥을 자주 먹던 시대가 아니었다. 하선의 식습관은 광해군 시대가 아니라 20세기 이후를 반영할 뿐이다.
왕이 된 남자 육식 한국인 식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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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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