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시> 영화 포스터

▲ <괴시>영화 포스터ⓒ 한림영화(주)


1970~1980년대에 한국에서 제작한 공포 영화의 주요 소재는 '귀신'이었다. 바다 건너에서 조지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시체들의 날>(1985)로 '좀비' 열풍을 일으켰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와 거리가 먼 일이었다. 좀비는 외국 영화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지금은 달라졌다. 2000년대 초반, 비디오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와 영화 <레지던트 이블>(2002)과 < 28일 후 >(2003)가 제2의 좀비 전성시대를 열자 충무로도 좀비를 소재로 삼은 영화 <어느 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죽음의 숲>(2006)을 내놓았다.

이후 독립 영화 <이웃집 좀비>(2009)와 <미스터 좀비>(2010), 옴니버스 영화 <무서운 이야기>(2012) 중 '앰뷸런스',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멋진 신세계', <신촌좀비만화>(2014) 중 '너를 봤어', 학원 공포 영화 <좀비 스쿨>(2014), 한국형 블록버스터 <부산행>(2016)과 <창궐>(2018)까지 한국 좀비 영화의 계보는 이어졌다. 최근엔 넷플릭스를 통해 <킹덤>이 공개되었고 코미디 좀비 영화 <기묘한 가족>(2019)도 개봉할 채비를 마쳤다. 이제 한국에서도 '좀비'는 하나의 장르를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건 한국 좀비물의 역사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좀비 영화는 강범구 감독의 <괴시>(1980)다. 1981년 4월 9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괴시>는 2주 동안 관객 1만 2천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참패했다. 이후 일부 영화팬 사이에서 회자하던 <괴시>는 2011년 6월 TV 프로그램 <스펀지 제로>에 소개되면서 다시 유명세를 얻었다. 30여 년 전, 한국에서 만든 최초의 좀비 영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육 대신 피를 빨아먹던 1980년대 한국의 좀비
 
<괴시> 영화의 한 장면

▲ <괴시>영화의 한 장면ⓒ 한림영화(주)


대만인 강명은 강원도 백담사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가 언니 현지와 형부 영태가 사는 집으로 향하던 수지와 우연히 마주친다. 길을 알려주는 대가로 수지의 차를 얻어 타게 된 강명은 오랜만에 온 탓에 그만 길을 잃는다. 강명은 현지의 집을 찾던 중에 산속 깊은 곳에서 대학 동기 준수가 참여한 연구팀을 만난다. 이들은 초음파 송신기를 이용하여 해충을 박멸하는 연구를 하는 중이었다.

이후 3일 전에 물에 빠져 죽은 술주정뱅이 용돌이 나타나고 사진 작업을 하던 영태가 살해당하는 기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다. 진상을 조사하던 강명과 수지는 용돌의 시신을 확인하러 공동묘지 안치실에 갔다가 시체들이 살아난 광경을 본다. 강명은 시체가 살아난 원인이 초음파 송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 <괴시>는 기이할 '괴(怪)', 주검 '시(屍)'란 제목처럼 괴이한 송장을 소재로 삼았다. <괴시>의 되살아난 시체는 조지 로메로 영화가 보여준 좀비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좀비처럼 인간을 공격한다.

그러나 인육 대신에 피를 빨아 먹어 흡혈귀 느낌이 난다. 이것은 1980년대의 검열을 의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인육을 먹는 설정을 사용했다면 아마도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을 것이다.

좀비에 태권도로 맞서는 황당한 장면도...

<전설의 고향>의 귀신처럼 푸른빛 조명을 받은 채로 양손을 앞으로 뻗어 다가오는 <괴시>의 좀비에게선 강시의 영향도 감지된다. 당시엔 강시가 등장한 홍콩 영화 <귀타귀>(1980)가 히트를 한 시기다.

연출을 맡은 강범구 감독은 대만과 홍콩을 오가며 한국 영화의 수출과 합작, 중국어권 영화 수입 업무에 참여한 경력을 지녔다. 유행을 몰랐을리 없다. 주인공을 대만인으로 설정하고 중국 배우를 일부 캐스팅한 사실, 오프닝 크레딧에서 배우와 스태프 이름을 모두 한자로 쓴 점, 강시를 참고한 설정 등을 종합하면 <괴시>가 중국어권 수출까지 염두에 두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괴시> 영화의 한 장면

▲ <괴시>영화의 한 장면ⓒ 한림영화(주)


<괴시>는 당시로선 드문 소재를 다루었지만, 아쉽게도 호르헤 그라우 감독의 1974년 영화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에서 기본 설정과 상황을 베낀 작품이다. 강범구 감독은 2016년 블로그 '아토믹 레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를 보고 나름대로 한국 상황을 반영하여 만들었다"고 말하며 국제 저작권 협약을 맺지 않아 남의 창작물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던 당시의 관행에 따랐음을 인정했다.

<괴시>에서 강범구 감독이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와 다르게 만든 부분은 한국적인 색채로 남았다.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초음파 송신기를 그대로 가져오되 여기에 '농촌'을 위한 실험이란 설정을 덧붙여 토속적인 정취를 부각시킨다. 또한, 공동묘지 안치실에서 좀비 무리와 마주한 강명이 태권도로 맞서는 황당한 장면도 나온다. 정말 한국적인 상상력이지 않는가!

<괴시>는 조악한 분장과 특수 효과, 표절로 얼룩진 내용, 배우들의 떨어지는 연기력 등 모든 면에서 장점을 찾기 힘들다.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의 배드 엔딩을 바꾼 해피 엔딩도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시>는 '좀비'가 등장하는 첫 번째 한국 영화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괴시>는 <깊은 밤 갑자기>(1981), <망령의 웨딩드레스>(1981), <여곡성>(1986)과 함께 1980년대 한국 공포 영화의 대표작이다. 어두웠던 시간도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동안 <괴시>는 볼 방법이 요원했다. 감상할 수 있는 수단인 비디오테이프도 희귀하여 고가에 거래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 사업 덕분에 <괴시>는 잊힌 신세를 벗어났다. 현재 <괴시>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https://www.kmdb.or.kr/vod/main?menuIndex=)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좀비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한 번쯤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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