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포스터.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포스터.ⓒ 넷플릭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작은 영화 <엑스 마키나>로 쟁쟁한 후보들을 뒤로 하고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던 바 있다. 그는 일찍이 <비치>의 원작자로, < 28일 후 > <네버 렛 미 고> <저지 드레드> 등의 각본가로 장르에 특화되고 장점을 가진 걸로 유명했다. 

또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엑스 마키나>로 연출가로서도 본격 시동을 걸며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리 놓고 보니 시각효과와 각본과 연출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장르 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이는 그가 최근에 내놓은 작품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유다. 이 작품은 북미와 중국에서만 파라마운트가 배급하고, 나머지 전 세계에는 넷플릭스가 배급하고 제작까지 맡았다. 그리하여 감독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흥행을 일체 생각하지 않는 창작의 자유 보장은 이 작품에 수없이 포진되어 있는 흥행 요소들을 작품성 요소로 유지 또는 변하게 하였다. 원작의 난해함을 그대로 또는 더욱 심오하게 발전시키는 동시에 시각효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면모를 선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곳, '쉬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곳 '쉬머'로 향하는 5명의 여성 대원.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한 장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곳 '쉬머'로 향하는 5명의 여성 대원.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어느 날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국립공원 근처 등대로 떨어진다. 이후 근방으로 파장의 결계가 쳐지고 점점 커지는 형국을 보인다. '쉬머'라 불리는 그곳에 정부는 비밀리에 3년간 정보 취합 및 조사를 위한 탐사대를 보내고 드론도 띄우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생물학자이자 세포/암 병리학과 교수 리나(나탈리 포트만 분)는 비밀작전에 투입되었다가 1년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케인(오스카 아이작 분) 때문에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인이 돌아오지만 그는 곧 알 수 없는 내출혈로 쓰러지고 함께 병원으로 가던 도중 군인들에 의해 납치된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쉬머 코앞의 진지 X 구역. 

리나는 케인이 쉬머에서 돌아온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리나는 그가 비밀작전에 자진 투입된 이유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어 리나는 자신의 7년 군인 경력과 생물/병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남편을 살리고자 쉬머로 들어갈 것을 결정한다. 

리더 심리학자, 생물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응급요원의 5명 여성으로 구성된 팀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이들은 곧 단기기억상실증을 경험하고 상상으로도 구현하기 힘든 돌연변이들을 발견한다. 도대체 이 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질문
 
 그곳엔 파격적인 복제와 변형과 자멸이 일상인 돌연변이가 있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한 장면.

그곳엔 파격적인 복제와 변형과 자멸이 일상인 돌연변이가 있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호러적인 분위기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질문을 기반으로 한 고품격 SF이다. 앞서 영화 <엑스 마키나>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앞으로도 장르 요소를 앞세워 인간을 탐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가지는 난해함은 다름 아닌 과학적 질문에서 비롯된다. 제목에서도 암시되어 있듯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소멸'인데, 그 반대편 혹은 동일한 층위를 가지는 단어 '복제', '변형', '자멸' 등이 함께 중요하게 거론된다. 

이는 리나가 세포/암 병리학과 교수라는 점과 리더 심리학자인 벤트리스가 암에 걸렸다는 점, 그리고 쉬머가 점점 확대되는 점 등에서 영화의 요소는 악성종양, 즉 '암'과 연관이 깊은 듯하다. 세포의 변형, 복제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즉 자멸, 소멸하게 만드는 게 암이라는 질병 아닌가. 

지구에 갑자기 생겨버린 쉬머의 정체를 알고 제거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건, 인간의 몸에 갑자기 생겨버린 암의 정체를 알고 제거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그 모양새를 영화로 옮겨놓은 것이리라. '나'를 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나'를 이루는 세포의 생성이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근원에 목마른 인간, 미지로 들어가다

한편, 극 중 인물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이유는 무엇일까. '공포'라는 것의 근원에 '미지'가 있다면, 인간은 가장 대면하기 싫은 공포라는 것의 '근원'을 알고자 미지로 들어가는 것일 테다. 인간은 근원에 목 마른 존재다. 

그곳엔 무엇, 혹은 누가 있을까. 무엇을 이루는 무엇이 있을 테고 누구를 이루는 누군가가 있을 테다. '내'가 그곳에 이르면 다름 아닌 '내'가 있지 않을까. 변형과 복제와 소멸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나' 역시 변형과 복제와 소멸 또는 변형이나 복제나 소멸을 이룩할 것이다. 

이쯤 되면, 과학이고 철학이고를 떠나서 그저 답을 얻기 힘든 질문, 되돌아올 뿐인 생각, 형용하기 힘든 설명만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누구/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사는가'

<엑스 마키나>의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시각효과와 협소하고 막힌 곳에서 이뤄지는 숨막히는 이야기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 이르러 초현실적이어서 현실적인 시각효과와 광대하고 열린 곳에서 이뤄지는 광활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두 영화는 '인간'에 대한 질문 하나를 공통점으로 둔 채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주고,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묘한 기시감을 들게 한다. 

비단 같은 감독의 작품이어서만은 아니라 두 영화가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어서, 최소 3부작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로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그때 또 우린 어떤 질문과 맞닥뜨리게 될까. 그 영화에서는 어떤 현실, 비현실, 초현실적인 시각효과를 맛보게 될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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