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스포츠 팬들에게 즐길 거리가 넘치는 한 해였다. 연초에는 3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한 '세계인의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었고 6월에는 '최강' 독일을 집으로 돌려 보냈던 러시아 월드컵이 있었다. 여름에도 한일전 승리로 축구 금메달을 목에 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여름을 더욱 뜨겁게 했다. 물론 해마다 열리는 각종 구기종목과 격투기, 골프, e스포츠 등도 쉴새 없이 스포츠 팬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각종 이벤트로 정신이 없었던 2018년에 비하면 2019년은 상대적으로 대형 이벤트가 많지 않다. 59년 만의 우승을 노렸던 축구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카타르에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다른 종목들도 굵직한 국제대회보다는 내년에 열리는 2020 도쿄 올림픽 예선전이 주로 열릴 예정이다. 11월에 열리는 야구의 '제2회 프리미어12' 역시 대형 야구 이벤트라기 보다는 부활한 올림픽 야구 종목 예선의 성격이 더 짙다.

이렇듯 큰 국제 대회가 많이 열리지 않는 올해, 8월 말에 개막하는 농구월드컵과 함께 가장 큰 국제대회로 꼽히는 대회는 오는 6월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제8회 FIFA 여자 월드컵'이다. 2015년 캐나다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은 역대 최고 성적인 16강을 넘어 내심 8강 진출을 노리고 있다. 윤덕여호의 8강 꿈이 마냥 불가능한 목표가 아닌 이유는 한국 여자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지메시' 지소연(첼시 FC 위민)이 있기 때문이다.
 
지소연 중거리 슛 2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팔렘방 겔로라 스리위자야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지소연이 중거리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지소연 중거리 슛지난 2018년 8월 2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팔렘방 겔로라 스리위자야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지소연이 중거리 슛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을 세계 3위로 이끌며 MVP, 득점왕 2위에 오른 '천재 선수'

일본이나 북한이 꾸준히 여자축구에 관심을 가지며 발전시켰던 것과 달리 한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여자축구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조악하게 팀을 꾸려 처음으로 참가한 국제대회였던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만나 1-13으로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 여자축구는 성적보다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한국에 유례없는 축구붐이 일어났고 이는 여자축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월드컵을 보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는 선수들이 늘어났고 이는 2010년 FIFA U-20 여자월드컵 4강이라는 커다란 성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한국대표팀을 이끌며 실버볼(MVP 투표 2위)과 실버슈(득점 2위)를 휩쓴 선수가 바로 지소연이었다.
 
인터뷰하는 지소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1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인터뷰하는 지소연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지난 2018년 8월 1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지소연은 여자축구부가 따로 없었던 이문초등학교 시절 남자축구부에서 유일한 여자 선수로 활약하며 일찌감치 남다른 재능을 인정 받았다. 오주중학교와 위례정보산업고를 거쳐 한양여대에 진학한 지소연은 2010년 U-20 여자 월드컵을 통해 세계 여자 축구계를 놀라게 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조별리그 스위스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지소연은 16강까지 4경기에서 6골을 터트리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다. 지소연은 연령별 대회를 모두 합쳐 남녀 최초로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한국이 1-5로 패한 독일과의 4강전에서도 지소연은 수비수 3명을 제치고 골을 터트리며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만 20세밖에 되지 않은 특급 유망주의 행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축구계의 관심거리였다.

지소연은 U-20 여자 월드컵이 끝난 후 미국 진출을 희망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미국 여자프로축구는 재정 문제로 두 팀이나 해체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결국 지소연은 원하던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방향을 틀어 아이낙 고베에 입단했다. 지소연은 일본리그에서도 3년 동안 21골을 터트리며 소속팀 아이낙 고베를 3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메시'가 활약하기에 아시아 무대는 너무 좁았다.

잉글랜드 최고의 선수,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 돌풍' 주도할까

일본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한 지소연은 2014년 1월 잉글랜드의 명문팀 첼시가 운영하는 여자 축구 구단 첼시 FC 위민(당시 구단명은 첼시 레이디스)으로 이적했다. 지소연은 이적 첫 시즌부터 19경기에서 9골을 몰아치며 하위권을 전전하던 첼시를 리그 준우승팀으로 끌어 올렸다. 잉글랜드 여자축구 베스트11과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선정될 정도로 지소연은 잉글랜드에서 놀라을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수비 피해 드리블하는 지소연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북한 김은향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수비 피해 드리블하는 지소연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지소연이 지난 2013년 7월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북한 김은향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유성호

 
지소연은 2015년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와 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협회(PFA)에서 선정한 올해의 여자선수상, 런던 최고의 여자선수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2015년 8월 영국 FA컵 결승전에서는 결승골을 터트리며 잉글랜드 진출 후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소연은 2017-2018 시즌에도 첼시 입단 후 100경기 출전과 함께 PFA 선정 올해의 여자 선수상 2위에 오르며 잉글랜드 무대 최고의 여자 축구선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내에서도 지소연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지난 2006년 만 15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지소연은 남녀 통틀어 최연소 A매치 골 기록도 가지고 있다. 지소연이 A매치 110경기에서 넣은 49골은 역대 여자축구 최고 기록이자 남녀를 합쳐도 '차붐' 차범근(130경기 56골)과 '황새' 황선홍(103경기 50골)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만 27세의 나이에 이미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도 가입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만 3개를 따낸 한국은 첫 출전한 22년 만에 출전한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하며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소연은 코스타리카전 페널티킥 골을 제외하면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따라서 4년 전보다 더욱 많은 경험이 쌓인 이번 대회에서는 캐나다 월드컵의 아쉬움을 풀겠다는 각오가 매우 강하다.
 
김일성경기장서 몸 푸는 이민아, 지소연 2018 AFC 여자축구아시안컵대회 예선에 참가한 여자축구대표팀 이민아와 지소연이 4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 김일성경기장서 몸 푸는 이민아, 지소연2018 AFC 여자축구아시안컵대회 예선에 참가한 여자축구대표팀 이민아와 지소연이 지난 2017년 4월 4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개최국 프랑스, 노르웨이, 나이지리아와 A조에 편성됐다. 결코 쉽지 않은 조편성이지만 한국 역시 지소연을 비롯해 전가을(화천KSPO), 조소현(웨스트햄), 이민아(아이낙 고베), 여민지(수원도시공사) 등 소위 2010년대 '황금세대'가 총출동할 예정이다. 축구팬들은 한국 여자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지소연이 있을 때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큰 사고를 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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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김연경 시대 이끌어갈 '핑크 폭격기'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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