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인 설이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20년 넘게 먼 거리를 달려 친척들을 보러 가곤 했다. 물론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절 때 자주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 역시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절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딜 가야 한다거나 하는 강박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전통적인 명절 문화가 이제는 사그라드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세배를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에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전통적인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대립한다.

<그때 그 시절 패밀리>(이하 <그때 그 시절>, F is for familiy, 2017)은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일상적인 가족 문화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넷플릭스의 소개를 따르자면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맥주를 자유롭게 마시며, 남자들이 아무 방해 없이 TV 시청을 즐기던" 시대의 이야기다.

1970년대 미국의 집안 풍경을 그려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그때 그 시절 패밀리> 포스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그때 그 시절 패밀리> 포스터.ⓒ Netflix

 
<그때 그 시절>은 머피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개인적, 사회적 사건들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작화도 그렇고 이야기의 구조도 아직까지 방송 중인 '심슨 가족 (The Simpsons)'을 떠올리게 한다. <심슨 가족>은 1989년 처음 방송되었는데, 당시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이제 서서히 그 힘을 잃고 몰락해 가는 미국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1980년대는 이혼이 급증하고 비혼 여성의 비율 역시 증가했으며 초혼 연령은 계속 늦춰지던 시절로 요약된다. <심슨 가족>은 1989년 첫 방송이었는데, <그때 그 시절>이 그리고 있는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보다 10여 년 이후에 나온 것이다. 즉, <심슨 가족>이 미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 모델을 꼬집고 풍자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그때 그 시절>은 '그때'까지 남아있던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와 차별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인 프랭크 머피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아내 수 머피나 세 명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비백인과 빈곤층,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을 곧잘 한다. "저 밑에 사는 더러운 애들이랑은 놀지 마라"거나 "쟤는 걸레가 낳은 자식이야" 등등.

권위적인 가부장들이 그러하듯이, 프랭크는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보호받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가족과의 저녁 식사 시간에 자꾸 전화가 오자 "나에게 중요한 건 잠시동안 내 가족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기는 것"이라고 가정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이지만, 아내에게 가사노동을 모두 전담하고서는 집에서 동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겠다고 '고지'를 하는 모습은 씁쓸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그때 그 시절 패밀리> 중 일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그때 그 시절 패밀리> 중 일부.ⓒ Netflix


그에겐 가족 그 자체보다는 가족이 자신에게 주는 물질적, 정신적 편안함이 중요해 보인다. 당장 우리 주변에도 '가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가장 노릇을 하는데 에만 관심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정 내의 컬라 텔레비전 도입이 그들에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오는 장면도 흥미롭다. 1954년 당시 NBC와 CBS에서 컬라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도 그랬듯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부유층들이나 가질 수 있었다. 1960년이 되어서야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머피 가족은 비교적 늦게 컬러 TV를 마련한 것. 

그러나 이 역시 프랭크의 가부장적인 아집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격투기 시합을 동료들과 함께 집에 모여서 보기 위해 집에 컬러 텔레비전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내에게 당장 텔레비전이 필요하다고 사러 가자고 조른다. 결국 아들인 케빈의 대학자금을 깨서 컬러 텔레비전을 장만한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자존심은 쓸데없이 센 프랭크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번 명절에 친척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젠더 이슈가 주제로 올랐는데 차별과 편견에 기반한 발언들을 많이 들었다는 주변 지인들도 있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폭력적인 발언들도 가족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을 테니 얼마나 피곤했을지 짐작이 간다. 

1970년의 미국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과 조롱을 앞서 겪었다. 남성을 혐오한다느니, 모여서 잡담이나 한다느니 하는 부당한 말들. <그때 그 시절>에도 잘 드러나 있다. 토크쇼에 페미니스트들을 초청해두고 '다들 참 섹시하다'고 외모 평가를 하는가 하면, '단정하게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여러분 의견에 집중할 것 같다'고 말하는 등 페미니즘을 주장하고 다니는 것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가족의 변화가 불가피한 시대, 가족과 사회를 이야기하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그때 그 시절 패밀리> 중 일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그때 그 시절 패밀리> 중 일부.ⓒ Netflix


분명한 것은 미국도 한국도 가족과 사회의 형태는 지속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도 이제 합계출산율이 2018년 기준으로 0.97명인 데다가 비혼을 선언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를 따질 새도 없이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고, 이제 우리 역시 그 변화에 맞춰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당장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또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면,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해주자. 

앞서 말했던 <심슨 가족>이 '정상 가족'이라는 환상을 비틀고 꼬집는 데에 집중했다면, <그때 그 시절>은 그 환상이 아직까지 남아있던 시절을 그려내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정상 가족, 완벽한 가족에 집착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그것을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음을 두 작품이 보여준다. 한국은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해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가족 문제는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문화 콘텐츠가 한국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는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이 중요하게 인식된다. 당장에 명절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지점 아닌가. 이제는 <그때 그 시절>이 이야기하는, 그리고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전통적 가족 모델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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