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의 포스터.

영화 <극한직업>의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지금까지 이런 흥행은 없었다. 이것은 완성도 때문인가, 대진 운 때문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다. 완성도는 물론 대진운도 좋았다. 물론 흥행 요인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영화 <극한직업>이 6일 '천만'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흥행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5일 설날 당일에만 113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고, 6일 오후 12시 25분까지 61만을 더하며 누적 관객 수 천만 명(10,003,087명)을 돌파했다.
 
이날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극한직업>은 한국 영화로는 <명량> <신과 함께-죄와 벌> <국제시장> 등과 함께 역대 18번째 천만 영화이자, <아바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등 천만 클럽에 가입한 5편의 외화를 포함하면 역대 23번째로 천만 영화 대열에 합류했다"며 "코미디 영화로는 2013년 <7번방의 선물>(1,280만)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고 밝혔다.
 
<극한직업>의 흥행과 천만 돌파는 이미 설 연휴 전 예견돼 왔다. 이미 지난달 26일(995,133명) 27일(1.032.769), 역대 1월 최다 일일 관객 수 신기록을 세우며 천만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이후 개봉 8일째인 지난달 30일 400만을, 10일째인 지난 1일 500만을 돌파했다. 지난달 23일 개봉일 36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한 이후 보름 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배급사는 이 같은 <극한직업>의 흥행 속도가 "역대 23편의 천만 영화 중 세 번째 빠른 속도"라며 "<극한직업>보다 빠르게 천만 관객 고지를 달성한 영화는 <명량>(12일), <신과 함께-인과 연>(14일) 단 두 편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속도라면 <극한직업>은 오늘(6일) 역대 박스오피스 20위인 <겨울왕국>(1,029만), 21위인 <인터스텔라>(1,030만)의 흥행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극한직업>의 흥행 요인을 꼽아봤다. 맞다. 지금까지 이런 흥행은 없었다.
 
독보적인 순수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저 스스로도 웃고 싶었어요. 거의 모든 장면 웃음이라는 포인트를 삽입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고, 웃음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4일 MBC <뉴스데스크>가 전한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연출 변이다. 이러한 웃음의 연쇄가 <극한직업>의 핵심 포인트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이다. 오로지 웃기기 위해 작정한 '순수' 코미디 영화가 큰 이견 없이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간 코미디 장르의 흥행은 어느 정도 상한선이 뚜렷했다. 800만 대에 머무른 <과속 스캔들>이나 <수상한 그녀>이 대표적이다.
 
그에 반해 <극한직업>은 시종일관 웃음이 목표다. '낮에는 치킨장사, 밤에는 잠복근무'란 확실한 '태그 라인' 조차도 웃음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유행어 조짐마저 보이는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란 대사 하나하나부터, 이무배와 테드 창이란 악역마저도 코미디의 한 축으로 활용한다.
 
설정부터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활용, 심지어 액션마저도 웃음으로 귀결된다. 신파나 감동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듯, 웃음으로 내달린다. 한마디로, 군더더기가 없다. <극한직업>의 류승룡을 '천만 배우'로 각인시킨 영화이자 앞서 배급사가 언급한 <7번방의 선물>의 경우, 코미디와 신파, 법정 드라마를 버무린 작품이었다.
 
1990년대를 강타한 <투캅스>(의 주연 박중훈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려 보라)도 코미디였고, 2000년대 초반 이후 '조폭 코미디'가 고유한 장르로 자리 잡았을 만큼, 코미디는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장르였다.
 
세대가 바뀌고 관객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도리어 이 코미디 영화는 더 넓은 대중의 입맛을 맞추기 더 까다로운 장르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극한직업>의 '천만 돌파'는 신파나 감동 코드, 판타지 장르와의 접합, 과한 액션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억지 없이도 온전히 코미디 영화의 재미로서 관객을 만족시켰다는데 그 의의를 더한다.
 
명절엔 코미디, 그 외에도...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추석엔 사극', '명절엔 코미디'란 흥행 공식에 비춰 봐도, <극한직업>의 '천만 돌파'는 값진 구석이 있다. 먼저 역대 추석 연휴 박스오피스 상위는 <관상> <밀정> <광해> <사도> <남한산성> <타짜> 등 사극과 시대극이 점령했고, 그 뒤를 이은 것이 <가문의 영광> 시리즈였다.
 
이에 비해 지난 10년간 설 연휴 흥행은 <7번방의 선물>을 필두로 <조선명탐정> 시리즈와 <댄싱 퀸> <수상한 그녀> <검사외전> <공조> 등 코미디와 코미디를 접합한 한국영화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같은 계보 속에서 <극한직업>의 '천만 돌파'는 코미디 장르로서 군계일학으로 꼽을 만하다.
 
대진운 또한 좋았다. 지난달 9일 개봉한 <말모이>는 300만 돌파 목전에서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며 <극한직업>의 초반 흥행에 어부지리를 선사했다. 경쟁작 <뺑반> 역시 동반 흥행을 예상했던 기대와 달리 <극한직업>의 기세에 압도당한 형국이다. 그에 앞서 연말연시 극장가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됐던 한국영화 삼파전(<마약왕> <스윙 키즈> < PMC :더벙커>)이 어이없는 참패를 기록하면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 기대를 모으는 상승효과도 주효했다.
 
"지난해 말 <완벽한 타인>이 529만 명을 동원한 데 이어 지난달 개봉한 <내안의 그놈>이 190만 관객을 넘어서는 등 코미디 영화들의 흥행 성공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반면 지난해 제작비 1백억이 넘는 대작들은 줄줄이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2~3년 사이 정치·역사적 이슈를 다룬 무겁고 어두운 영화가 많아지면서 관객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4일 MBC <뉴스데스크>가 전한 리포트도 유효하다. 국정 농단 사태와 정권 교체 이후 이른바 사회파 영화들에 대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분석은 지난 한 해 실제 박스오피스 결과로 나타났다. 2017년 연말 개봉한 <1987> 이후 사회적, 역사적 담론을 주요 동력으로 삼은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공작>이 유일하다.
 
추석에 개봉한 사극 대작 <안시성>의 경우 '1위 쏠림 효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긴 경우고, <국가부도의 날>은 370만 관객을 동원하며 나름 선전했다. 그 외에 2018년 박스오피스 1, 5위를 차지한 <신과 함께> 1, 2부는 2018년 한 해의 경향을 선도했다.
 
이 외에 <완벽한 타인> <독전> <암수살인> <그것만이 내 세상> <마녀> <너의 결혼식> 등 한국 영화 흥행작의 면면은 사회파 영화와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극한직업>은 이렇게 단기적인 대진 운은 물론 장기적인 흐름에서도 좋은 흐름을 탔다고 볼 수 있다. 데뷔작 <힘내세요, 병헌씨> 이후 <스물> <바람, 바람, 바람>까지 연출작은 물론 데뷔 이전 글을 썼던 <과속 스캔들> <써니> 등에서도 코미디란 한 우물을 팠던 이병헌 감독의 장기가 빛을 발했다고 할까.
 
그리고 힘 뺀 류승룡의 눈빛
 
 <극한직업>의 스틸 사진

<극한직업>의 스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힘을 뺀 듯 한 배우들의 연기도 눈길을 끄는 요인이었다. 이미 이병헌 감독과 배우들은 여러 인터뷰에서 '팀웍'을 강조한 바 있다.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 배우까지, 누구하나를 부각시키기보다 마약반 형사들의 조화를 강조한 <극한직업>의 전략 역시 시끌벅적한 영화의 분위기나 소재와 잘 맞아떨어졌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이자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하늬를 비롯해 누구 하나 빠지는 연기가 없다. 그 중 개인적으로 눈길이 더 가는 연기는 바로 힘을 쫙 뺀 류승룡의 눈빛이었다.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면서 점점 고립되었다. 보호받는 삶을 살았지만 갑갑했다. 창살 없는 감옥을 뚫고 나왔을 때 어마어마한 감동을 맛보았다. 조그마한 불편함을 빼고는 얻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계속 보호받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오는 자유와 비교할 순 없다. 앞으로도 쭉 이런 길을 선택할 것이다.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을 담아내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 불편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공개한 인터뷰에서 류승룡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14년 <명량> 이후 <손님> <도리화가> <염력> <7년의 밤>까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는 가운데 찾아 온 슬럼프에 대해 털어놓은 것이다. '천만 배우'란 수식과 함께 찾아 온 유명세와 그에 따른 오해, 그리고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류승룡의 노력은 연기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류승룡이 연기한 고반장 역할이야말로 치킨 장사에 나선 마약반 형사들이란 <극한직업>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마약반 형사=소시민=치킨 가게 사장'이란 설정을 통해 관객들의 웃음과 공감을 유발하는 주인공 아니겠는가.
 
힘을 쫙 빼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류승룡의 연기가 그러한 그간의 경험과 심경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유와 인간미를 잃지 않는 '소시민' 고반장 역으로 녹아들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역대 박스오피스 몇 위에 등극하느냐만 남겨둔 <극한직업>은 이렇게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인기와 함께 '천만 배우' 류승룡의 재도약이자 '류승룡 시즌2'를 알리는 작품으로 기록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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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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