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는 영화 <극한직업>의 주연배우 류승룡은 슬럼프에서 벗어나 실로 오랜만에 흥행의 단맛을 느끼는 중이다. 류승룡은 지난 2015년부터 목소리 출연한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제외하더라도 <도리화가>와 <손님>,<염력>,<7년의 밤>까지 주연을 맡은 영화 4편이 연속으로 전국 관객 1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런 흥행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류승룡도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흥행배우로 군림한 적이 있다. 실제로 류승룡은 2012년부터 해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 방의 선물>, <명량>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천만영화를 배출했다. 3년 연속 1000만은 송강호나 하정우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으로 당시 영화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모르겠으면 류승룡이 출연한 영화를 고르면 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시청자, 그리고 관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배우에게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영광이다. 그리고 두 자리 수만 넘겨도 성공적이라고 할 만큼 전체적인 TV 시청률이 떨어진 현재,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시청률 20%를 넘긴 흥행작에 네 편이나 출연한 배우가 있다. 지난 1일 종영한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차민혁 교수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배우 김병철이 그 주인공이다. 

<황산벌> 이후 주춤했던 김병철, '파국 아저씨'로 화려하게 부활
 
 김병철은 <도깨비>에서 등장만으로 드라마의 장르를 바꿀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병철은 <도깨비>에서 등장만으로 드라마의 장르를 바꿀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tvN

 
중앙대 연극과를 졸업한 김병철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작품은 2003년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이었다. 김병철은 <황산벌>에서 백제군의 작전을 엿들어 신라군에게 전달하는 첩자 역할을 맡았다. 김병철은 김유신 장군(정진영 분) 앞에서 "계백이(박중훈 분)가 '긍게 이번 황산벌 전투에서는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헐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헌다'라고 했습니다"고 보고하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줬다(물론 아무도 못 알아 들었다). 

'황산벌'에서 코믹한 역할로 얼굴을 알린 김병철은 2004년 공수창 감독의 <알 포인트>에서 귀신에 빙의된 조병훈 상병 역으로 또 한 번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관객들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좋은 배우 김병철의 등장을 반겼다. 하지만 김병철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유해진과 <공공의적>의 이문식처럼 <황산벌>과 <알 포인트>를 도약의 발판으로 마련하지 못했다.

물론 김병철이 연기 활동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김병철은 <날아라 허동구>, <황진이>, <리턴>, <GP506>, <그림자 살인>, <육혈포 강도단>, <미쓰GO> 등에서 조·단역으로 꾸준히 얼굴을 비쳤지만 그나마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영화는 비중이 크지 않았던 <퀵>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병철은 연극과 단편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기회가 오길 기다렸고 2016년 드디어 배우 생활의 전환점이 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만났다.

김병철은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송중기)의 직속상관이자 우르크에 파병된 태백부대의 박병수 대대장을 연기했다. 김병철은 <태양의 후예>에서 <황산벌>에서 보여준 웃음기와 <알 포인트>에서 보인 나약함은 온데간데 없이 파병 군인의 살기가 엿보이는 특전사 중령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그리고 12년 전 <황산벌>로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했던 김병철은 <태양의 후예>로 다시 찾아온 2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태양의 후예> 이후 2016년 여름 또 하나의 히트작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 이영(박보검 분)의 스승 역을 맡았던 김병철은 그 해 겨울 드디어 '인생작'을 만났다. 김은숙 작가, 이응복 PD와 또 한 번 손을 잡은 <쓸쓸하고 찬란한 신 - 도깨비>였다. <도깨비>에서 간신 출신의 악귀를 연기한 김병철은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를 호러물로 만드는 신출귀몰한(?) 연기로 시청자들로부터 '파국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야망의 화신'으로 완벽 변신했던 김병철, 차기작에선 또 어떤 역을?
 
 차민혁교수는 '아갈대첩' 장면에서 처음으로 가짜 대학생 세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차민혁교수는 '아갈대첩' 장면에서 처음으로 가짜 대학생 세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 jtbc 화면 캡처

 
시청률 38.8%(최고 시청률 기준)의 <태양의 후예>, 23.3%의 <구르미 그린 달빛>, 20.5%의 <도깨비>에 잇따라 출연한 김병철은 이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작년에 출연했던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병철을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전당포를 운영하는 일식을 연기한 김병철과 미국공사관의 역관 임관수 역의 조우진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심지어 한 배우가 1인2역을 하는 거라 믿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조우진 역시 2015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얼굴을 알렸고 <도깨비>에서는 김 비서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도깨비>를 집필했던 김은숙 작가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어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카일 무어(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와 김희성(변요한 분)이 두 사람을 보며 형제가 아니냐고 묻는 장면을 넣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세 편 연속 출연한 김병철은 <미스터 션샤인>이 끝나고 곧바로 차기작 촬영에 들어갔다.

김병철이 2018년이 가기 전에 선택한 작품은 역대 케이블·종편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 기록(23.8%)을 갈아치운 < SKY캐슬 >이었다. 김병철은 < SKY캐슬 >에서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에 최연소 부장검사, 차장검사 기록까지 갈아 치웠던 로스쿨 교수 차민혁을 연기했다. 차민혁은 3선 국회의원을 노리던 장인 때문에 정치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자식들을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려 자신의 집안을 '한국의 케네디가'로 만들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욕망의 화신이다.

방영 초기에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식구들을 기죽게 만들었던 차민혁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왔다. 특히 '아갈대첩'으로 불리는 15회의 몸싸움 씬에서는 세리가 가짜 하버드생이라고 비웃는 캐슬 사람들에게 "우리 세리는 클럽 MD야! 기획, 마케팅, 고객유치까지 다 하는 프로페셔널!"이라고 나서며 큰 딸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마지막회에서 노승혜(윤세아 분)에게 보낸 취중 고백 문자도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영화보다는 TV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김병철은 오는 3월에 KBS에서 방영될 <닥터 프리즈너>에서 다시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공교롭게도 < SKY캐슬 >에서 황치영 교수를 연기했던 최원영과 재회한다). 물론 김병철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무조건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재 김병철의 타격감과 선구안은 그 어떤 배우보다도 뛰어나다. 이제 한동안 김병철이 나오는 드라마는 전적으로 믿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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