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하면 엄청난 시청률이 보장된 스타작가의 작품은 아니었다. 주연배우들도 최근 3~4년 동안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했다(심지어 이수임 역의 이태란은 2015년 <여자를 울려> 이후 3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다). 게다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곳이 주로 주인공들의 집과 직장, 학교에 집중돼 있어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화제의 드라마 < SKY캐슬 >이야기다. 

첫 방송에서 1.727%(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 SKY캐슬 >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3회 만에 시청률 5%를 돌파한 < SKY캐슬 >은 방영을 거듭할수록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지난달 26일 19회 방송에서는 무려 23.216%라는 최근 지상파에서는 나오기 힘든 시청률을 찍었다. 이는 <도깨비>와 <응답하라1988>, <품위 있는 그녀>를 모두 뛰어 넘는 역대 종편·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이었다.

< SKY캐슬 >에서는 극 중에 등장하는 주요 가족 네 가구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분)이 시청자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받았다. 주·조연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고 유현미 작가는 자칫 '그들만의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 상류층의 입시고민을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풀어냈다. 그 결과 < SKY캐슬 >은 많은 명장면들을 남긴 채 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장면1] 남편의 폭력 앞에서 처음으로 화가 폭발한 우아한 승혜씨
 
 언제나 조용하던 노승혜가 딸을 지키기 위해 절규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언제나 조용하던 노승혜가 딸을 지키기 위해 절규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 jtbc 화면 캡처

 
배우 윤세아가 연기한 노승혜는 캐슬에 살고 있는 엄마 캐릭터 4명(한서진,이수임,노승혜, 진진희) 중 가장 수동적인 캐릭터다. 육군 참모총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얌전하고 순종적인 딸로 자라다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차민혁(김병철 분)과 결혼했다. 문학 박사를 따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강압적인 남편의 기에 눌려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차민혁이 꿈꾸던 피라미드 꼭대기를 바라보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노승혜 가족에게 어느 날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하버드 대학교에 다닌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큰 딸 세리(박유나 분)가 사실은 하버드대 시험조차 보지 않은 '가짜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엄마와 쌍둥이 동생, 그리고 캐슬 사람들에게까지 하버드대 학생이라고 속인 사실을 들킨 세리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버지 차민혁에게 문자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자신의 딸이 하버드대 학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차민혁은 분노에 휩싸여 세리를 몰아 세웠고 "아빠도 피라미드 꼭대기에 못 올라갔으면서 왜 우리가 올라가야 하냐"며 일갈하는 세리의 뺨을 때린다. 이 때 쌍둥이들의 제지까지 뿌리치며 세리를 본격적으로 구타하려는 차민혁을 보며 노승혜는 포효에 가까운 외침으로 주변을 조용히 시킨다. 그리고 "내 딸 손대지 마"라는 차가운 한 마디로 차민혁을 침묵시킨 다음 세리를 데리고 집에서 나온다.

< SKY캐슬 >에서 노승혜는 언제나 순종적이고 소극적인 말투를 써 왔다. 가끔 차민혁과 신경전을 벌일 때마저도 언제나 조신한 말투를 유지했다. 하지만 세리가 손찌검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처음으로 명령조의 반말을 사용하며 시청자들에게 묘한 희열을 안겨 줬다. 그리고 노승혜는 18회에서 "연장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차민혁씨에게 끝까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을 통렬히 반성합니다"라는 '명문'을 남기고 캐슬을 떠난다.

[장면2] < SKY캐슬 >을 추리물로 만들어 버린 혜나의 충격적인 죽음
 
 혜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SKY캐슬>의 장르에는 갑자기 '추리물'이 추가됐다.

혜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의 장르에는 갑자기 '추리물'이 추가됐다. ⓒ jtbc 화면 캡처

 
< SKY캐슬 >은 선악의 구도가 분명하지 않은 드라마다. 물론 초반에는 예서(김혜윤 분)를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서진(염정아 분)과 예서의 코디 김주영이 악역,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 우주(찬희 분)를 바른 아이로 키운 이수임(이태란 분)이 선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배우들의 열연에 매료되면서 시청자들은 다양한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젊은 시청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인물이 바로 예서의 숙적 혜나(김보라 분)였다. 강준서(정준호 분)의 혼외자식으로 예서-예빈과는 이복자매이기도 한 혜나는 세상을 떠난 엄마(이연수 분)의 복수를 위해 강준서와 한서진, 그리고 예서가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만약 < SKY캐슬 >이 혜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였다면 엄마를 버린 아버지의 파멸을 위한 혜나의 막장 복수극으로도 꽤나 흥미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SKY키즈'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던 혜나는 2019년 첫 주 14회 방송분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캐슬 내 팬션에 모여 우주의 생일 파티를 하던 날, 바람을 쐐기 위해 발코니에 나왔다가 그대로 추락한 것이다. 예서가 김주영과 통화하면서 "나 진짜, 김혜나 죽여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한 다음 창 밖을 바라보는 혜나의 뒷모습이 나오다가 갑자기 음악이 꺼진다. 이후 곧바로 혜나의 추락장면이 나오고 피 묻은 혜나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혜나의 죽음이 등장하면서 '입시 심리 스릴러'이자 대한민국 입시 문제를 꼬집는 블랙 코미디였던 < SKY캐슬 >의 장르에는 '혜나를 죽인 진범은 누구인가'를 찾는 추리물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일부 시청자들은 혜나가 죽어가면서 "물.주.세.요"라고 웅얼거린 대사를 "우.주.에요"라고 말했다며 진범이 우주라는 추리를 내놓기도 했다. 비록 마지막회의 결말은 다소 허무했지만 혜나의 죽음은 < SKY캐슬 >의 후반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됐다.

[장면3] 안 그래도 강한 예서-예빈 자매가 힘을 합치면 '천하무적'이 된다
 
 예서-예빈 자매의 협공은 그렇게 독하던 윤여사조차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예서-예빈 자매의 협공은 그렇게 독하던 윤여사조차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 jtbc 화면 캡처

 
예서와 예빈은 모두 한서진이 낳은 친자매지만 두 자매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언니 예서가 전교 1등을 놓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강박관념 속에 사는 아이라면 동생 예빈은 대한민국 최상류층이라고 자부하는 캐슬 어른들의 모습이 영 못 마땅한 자발적 아웃 사이더 캐릭터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예서에 비해 예빈의 비중은 다소 작은 편이지만 성격이 상반되는 두 자매는 언제나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한다.
 
예빈은 엄마의 정체(?)가 문가 출신의 한서진이 아닌 내장, 선지, 잡뼈를 팔던 아버지를 둔, 마음에 안드는 얘길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갈머리부터 찢는다'는 곽미향이란 사실을 알고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시험을 망쳐 밥도 안먹겠다는 예서를 보며 "야, 엄마가 뻥 쳤다고 왜 시험을 망치냐"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언니를 놀린다(극 중에서 예빈은 예서에게 '언니대접'을 거의 안 해준다).

그렇게 자매라기 보다는 '앙숙'에 가까웠던 예서·예빈 자매가 종영을 한 주 앞두고 공공의 적(?) 앞에서 의기투합했다. 예서의 자퇴 소식에 분노한 윤여사(정애리 분)가 찾아와 엄마, 아빠를 몰아 붙였기 때문이다. 윤여사는 검정고시를 보고 정시로 대학에 가겠다는 예서의 진심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3대째 의사가문 포기를 선언한 한서진에게 독설을 내뱉는다. 학력고사 전국 1등을 하고도 껍데기만 남았다는 아들 강준상이 나섰지만 윤여사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이 때 힘을 합친 '예자매'가 나섰다. 먼저 예서는 "3대째 의사가문, 그거 왜 만들어야 되는데요?"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빠가 갔으니 당연히 가야 한다"는 윤여사의 말에 예서는 "할머니랑 내가 다른데 그게 왜 당연하냐"며 일축했다. 그리고 '직언 꿈나무' 예빈이 "그렇게 가고 싶은면 할머니가 가시지 그랬어요"라는 일침으로 윤여사를 침묵시킨다. 예서-예빈 자매가 한 마음이 되면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 <SKY캐슬>은 종편·케이블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

화려하진 않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 은 종편·케이블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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