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설 연휴가 되면, 대목을 노리는 대형 배급사들이 영화 홍보에 열을 올린다. 지상파 채널에서는 더 좋은 특선 영화를 방영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과거에 비해 매체와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불과 얼마 전 극장에서 상영된 작품이 연휴 특선으로 방송되거나 하는 식이다.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플랫폼들도 늘어나, 상영이 끝나자마자 집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세계적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또한 다양한 콘텐츠 확보와 적극적인 투자로 그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다음 작품들은 넷플릭스에서 직접 투자하고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이다. 일부 작품의 경우에는 국내 소규모 극장에서도 일정 기간 상영했지만 그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은 물론, 많은 관객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유명 감독들의 신작을 이제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서 편하게 만나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보수적인 영화 산업 관계자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에 대해 다소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관객들의 선택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좋은 작품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 좋은 게 아닐까?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작품들과 함께 즐거운 설 연휴를 맞이하길 바란다.

01.
<로마>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얄리차 아파리시오, 마리나 데 타비라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영화 <로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A는 알아도 B는 모른다는 그 흔한 수식어가 영화 <로마>의 감독에게도 통용되는 것 같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숨막히는 경험을 선사한 작품 <그래비티>는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잊지 못할 작품이었을 테니까.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12분가량의 트래킹 숏(Tracking Shot)을 롱테이크 신으로 완성하며 진가를 보여준 바 있다. 이 작품 <로마>를 통해서는 감독 본인이 어린 시절 살았던 멕시코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1970년대 초 멕시코의 풍경과 분위기를 담아냈다.

멕시코시티 내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족의 젊은 가정부인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을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임과 더불어 가장 혼란스러웠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자신의 세상을 놓지 않고 온몸으로 그 시기를 견뎌냈던 여성들에 대한 찬사와도 같다. 자전적이라는 단어도 이렇게 그려낼 수 있다면,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의 삶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의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02.
<거꾸로 가는 남자>

감독: 엘레오노르 푸리아
출연: 뱅상 엘바즈, 마리소피 페르단, 피에르 베네지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의 한 장면.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특정 상황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 비해 말로 표현하는 일은 훨씬 쉬울 때가 많다. 특히, 어떤 노력으로도 상대의 입장이나 특정 상황을 경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여성을 꽃이나 사냥감 정도로만 생각하며 평생을 남성우월주의자로 살아온 주인공 다미앵의 이야기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여성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깨어나 정반대의 상황, 자신이 사냥감으로 여겨지며 벌어지는 일들을 체험한다. 이전의 세상에서 자신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 작가에 맞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다미앵의 모습이 주된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코미디의 형식을 빌리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 자체의 심각성을 톤다운 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단순히 현실의 상황을 뒤집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연출이 노련하다. 특히 세대를 거듭해오며 상식처럼 둔갑한 무의식적인 성차별적 요소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날카롭다. 코미디 장르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프랑스 영화 특유의 웃음 코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한층 더 깊이 빠질 수 있을 작품이다.

03.
<카우보이의 노래>

감독: 코엔 형제
출연: 리암 니슨, 제임스 프랭코, 팀 블레이크 넬슨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의 한 장면.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지난 9월 폐막한 7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차지한 코엔 형제의 신작 <카우보이의 노래>는 10월에 있었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화제의 작품 중 하나였다. 상업적인 요소와 예술적 요소가 적절히 가미되어 완성도가 높은 웨스턴 무비로 이미 입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식으로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는 독특한 형식도 많은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양시키는 요소 중 하나였다.

흥 넘치는 최고의 총잡이 버스터 스크럭스의 이야기(The Ballad of Buster Scruggs)를 시작으로 포트 모건행 마차 안에서 만난 다섯 남녀의 수다(The Mortal Remain)에 이르는 여섯 편의 단편은 러닝 타임 내내 완벽한 연출 속에서 각자의 매력을, 또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완벽히 충족시킨다. 옴니버스 영화의 약점으로 여겨지는, 자칫 각각의 작품이 긴밀히 연결되지 못하고 그 연결 고리가 취약해질 수 있는 부분을 완벽히 제어해내는 모습이다.

코엔 형제가 연출하는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은유와 상징은 이번 작품에서도 적극 활용되며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이번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옮겨 담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04.
<버드 박스>

감독: 수사네 비르
출연: 산드라 블록, 트레반테 로즈, 존 말코비치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지구를 점령하려는 외계인들이 인간의 원초적 감각 가운데 하나인 시각을 유린해 스스로 자살을 감행하도록 만든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 <버드 박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플랫폼에 공개됨과 동시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주인공인 말로리는 살아남기 위해 눈을 가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고, 이는 살아 남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몇 번의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군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종국에는 자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 지금도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것과 반대로 – 인간의 무력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점의 철학적 사유들을 제시한다. 특히 마지막에 조우하게 되는 공동체가 보여주는 인류애, 자연과의 공존 혹은 보호와 같은 부분들은 물질이 우선이 되어버린 현재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나 <눈 먼 자들의 도시>(2008)와 같은 작품에서 이 작품과 유사한, 인류의 감각이 차단된 이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에 세 작품을 비교하며 시청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05.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감독: 노아 바움백
출연: 애덤 샌들러, 벤 스틸러, 더스틴 호프먼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의 한 장면. ⓒ 넷플릭스


2018년을 기점으로 칸 영화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논외로 하고 있지만, 2017년 경쟁 부문에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함께 이 작품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The Meyerowitz Stories (New and Selected)>가 함께 올랐다. 봉준호 감독이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기에, 또 그의 신작이 국내 상영관에서 정식으로 개봉이 되는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컸다. 그래서 <옥자>가 많이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노아 바움백 감독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등의 작품으로도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 전에는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 생활>, <판타스틱 Mr. 폭스> 등의 작품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그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기도 했었다.

그의 전작인 <오징어와 고래> <위 아 영>을 보면 알겠지만, 노아 바움백 감독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잔잔히 녹여내는데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조각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아버지 해롤드와 그의 자녀들 사이의 갈등과 아픔에 대해 그려나가는 이번 작품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역시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자식의 성장 과정에 제대로 함께할 수 없었던 부모의 심리와 자식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노아 바움백 감독에 따르면, 사실 이 작품은 넷플릭스와의 협업과는 무관하게 슈퍼 16mm로 촬영된 것으로 극장에서 상영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다만, 배급 과정에서 넷플릭스가 배급권을 갖게 되었다고. 그의 생각으로는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이 여전히 소중한 경험이기에 다른 많은 감독들의 생각처럼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앞으로 그의 작품들이 어떤 방식을 통해 공개될지를 지켜보는 일도 또 다른 흥밋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06.
<루스에게 생긴 일>

감독: 메이컨 블레어
출연: 멜러니 린스키, 일라이저 우드, 데이비드 야우
 
 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의 한 장면.

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영화 <라라랜드>로 유명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가 국내에서도 예상치 못한 흥행을 하면서 선댄스 영화제도 함께 언급되던 시기가 있었다. <위플래쉬> 역시 2014년도에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작품을 다시 매만져서 장편극으로 연출한 것이었다.

1970년대 중반 영화배우 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설립한 선댄스 영화제는 재능있는 감독 및 시나리오, 작품을 선정 및 발굴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여기에서 선정된 작품은 미국 내에서도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 <루스에게 생긴 일>은 2017년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은 맥주 한 병에 가볍게 읽을만한 소설책 한 권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집에 갑자기 든 도둑과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경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범인을 추격하고자 하는 루스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도둑에 의해 사라진 노트북과 은식기를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의 전개 방식이 신선한데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코믹한 요소들이 인상적이다. 다만, 주인공이 마주하는 상황적 스트레스들을 시청자들 역시 오롯이 받아내야 하기에 다소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잔인하게 느껴질 법한 장면들 또한 몇 차례 등장한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영화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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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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