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나는 1970년생 개띠다. 그래서인지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중 1971년생 덕선(이혜리 분)이 주인공이었던 <응답하라 1988>이 가장 재미있었다. 볼 때마다 하도 웃고 울어서 진이 빠지긴 했어도, 보고 나면 왠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응답하라 1988>은 2016년 설날을 앞두고 종영했다. 드라마를 보고 헤어 나오지 못해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의 둑을 무너뜨린 사람은 덕선이 아버지 성동일이었다.
 
성동일의 극 중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한일은행 만년대리. 직장에서는 근면성실. 얇은 월급봉투 탓에 집에서는 아내 잔소리에 시달리는 고달픈 가장이다. 돈 없어 힘들고 서럽지만, 가족을 위해 묵묵히 애쓰는 든든한 버팀목. 성격이 급하고 무뚝뚝해도, 세 남매를 살뜰히 챙기는 정 많고 자상한 아빠다.
 
우리 아빠는 경찰 공무원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계급으로 퇴임하셨으니 만년대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빠의 직장 생활도 근면성실. 박봉이어도 퇴근할 때면 주전부리를 종종 사갖고 오셨고, 아주 가끔 술을 마신 날에는 기분이 좋아져서 집에 와서도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빠도 무뚝뚝했지만, 둘째가라면 서러울 딸 바보였으며, 엄마한테 잡혀 사는 애처가였다.

어느 날 날아든 돌멩이 하나에 위기 맞은 우리 집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그러나 어느 가정이든 완벽하진 않다. 우리 집도 어느 날 날아든 돌멩이 하나로 위기를 맞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오빠는 6학년쯤이었다. 어느 날 하굣길에 돌멩이 하나가 내 눈 쪽으로 날아들었다. 동네 남학생들이 저희들끼리 장난하다가 던진 돌에 내가 재수 없게 맞은 거였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눈 부위가 부어오르며 욱신거리자, 놀란 나는 엉엉 울면서 집에 갔다.

마침 엄마는 외출 중이었고 아빠가 집에 계셨다. 아빠를 보자마자 서러워진 나는 더 목청껏 울면서, 아빠가 달래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후에 일어난 일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아빠는 갑자기 베란다에서 우산을 가져오더니 내 옆에 있던 아무 잘못 없는 오빠를 때리기 시작했다.

"동생이 맞고 다니는데 너는 뭐했어?"

맞는 오빠도, 그 장면을 본 나도 충격을 받았다. 내 어린 머리로는 그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돌 맞은 아픔과 당황스러움은 오빠를 맞게 했다는 죄책감과 공포로 변주되었다.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는 오빠를 보며, 나는 결사적으로 아빠의 팔을 붙잡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난 그저 위로와 돌봄이 필요했을 뿐인데, 내 상처와 감정은 아빠의 분노에 묻혀버렸다.

오빠와 내 마음, 아빠와의 관계를 조각낸 돌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그날 내 눈에 날아온 돌은 오빠와 나의 마음은 물론, 아빠와의 관계도 산산조각내버렸다. 나는 예전처럼 아빠를 대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무서웠고, 아빠에게 맞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은 오빠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오빠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아빠를 멀리했다. 아빠를 멀리하는 게 오빠에 대한 내 부채의식을 갚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다정했지만 나는 복수하듯 냉랭했다.
 
꼬여버린 마음을 풀지 못한 채로 더 꼬이는 일이 일어났다. 대학교 3학년 때, 수업이 일찍 끝나서 귀가하는 길이었다.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어쩐지 이상해서 몸을 틀려는 순간, 한 남자가 나를 확 껴안으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확 뿌리치면서 괴성 같은 비명을 질렀다. 내 고함소리에 놀란 그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쳤고, 나도 집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헉헉 거리며 집에 들어서니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하필 그날도 아빠가 집에 계셨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더니 그 사람을 잡겠다며 빛의 속도로 나가시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말릴 틈도 없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빠의 성격을 아는 엄마도 혹시나 폭행 사고가 날까봐 아빠를 말리러 쫓아나가고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예상 밖을 벗어난 전개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순간, 느껴진 기시감. 어릴 적 돌을 맞았던 날이 생각났다. 아빠의 마음과 별개로 나는 또 괜한 말을 했다는 자책과 후회를 했다. 한편으론 내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아빠의 폭력적인(?) 방법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다시는 아빠한테 이야기하나 봐라."

아빠와 내 사이에 두 번째로 돌이 날아든 날이었다.
 
아빠는 몹시 서툴렀다. 아빠의 그런 서투름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도 서툴다. 그래서 첫째 딸 보라(류혜영)에게 타박당하기 일쑤다. 또 본의 아니게 차별대우를 하기도 한다. 첫째와 막내 사이에서 늘 뒤로 밀린 둘째 덕선이가 생일 파티마저 언니 생일에 얹혀서 하게 되자 속상함에 폭발해 버렸을 때, 성동일은 덕선이에게 사과한다.

"잘 몰라서 그래.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데. 그러니까 우리 딸이 좀 봐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딸을 달래려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하는 성동일을 보는 순간, 아빠와 내 사이에 돌이 날아들었던 그 날들이 생각났다. '나는 왜 덕선이처럼 아빠한테 내 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화라도 내볼걸.' 만약 그랬다면, 아빠도 성동일처럼 '미안해. 우리 딸이 좀 봐줘'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나도 당연히 봐드리지 않았을까. 아빠도 잘 몰랐던 것뿐이라는 걸, 어른도 서툴러서 실수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이치를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아빠를 좀 덜 외롭게 했을 텐데.
 
18년 전, 그러니까 내가 31살 때 아빠는 돌아가셨다. 아빠와의 거리는 좁히지 못한 채로, 한창 일에 정신 팔린 때였다. 어느 날, 집에 갔더니 아빠가 암 진단을 받았단다.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나서 슬프지도 않았고, 치료를 받으면 나을 줄 알았다. 참으로 무심하기 짝이 없는 낙관이었다. 예상과 달리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이렇게 아빠와 헤어지게 될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작동을 시작한 시한폭탄이 주어진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빠와의 추억이 없었다. 아빠의 몸이 쓰러지기 직전에야 나는 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제부도로 여행을 갔고, 아빠가 누워계실 때에야 비로소 아빠의 손을 잡았다. 돌멩이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뒤늦은 화해였다.
 
진단을 받고 6개월 만에 아빠는 세상을 떠나버렸다.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빠와 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후유증은 꽤 오래 갔다. 슬픔이 체기처럼 가슴에 걸려 도무지 내려가질 않아서 한동안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아빠'라는 단어만 나와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나와 버렸던 탓이다. 그나마 괜찮아진 건 아빠가 떠나고 10년쯤 지나서였고, 이후로도 감정적으로 무너질까봐 아빠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나를 무장해제 시킨 것이 <응답하라 1988>의 성동일이었다.
 
제 실속 못 차리지만 따뜻하고, 돈은 못 벌어도 부끄럽지 않은 성실한 소시민에다가, 가끔 치는 허풍 같은 큰소리도 밉지 않으면서, 혼자 있을 땐 어쩐지 쓸쓸해 보이던 성동일의 모습은 아빠와 참 닮았다. 하지만 더 닮은 건 서투름이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첫째는 어떻게 키워야 하고 막둥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다"는 성동일의 고백은 자식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모르고,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아빠를 비로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아빠의 서투름이 이해된 2016년의 설날은 유난히 슬펐다. 2019년 설날을 앞둔 요즘, TV에선 다시 <응답하라 1988> 재방송이 방영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매년 이맘때 재방송을 했고, 나는 그때마다 봤다. 이제 슬픔이 소화된 것일까. 다행히 그때보다는 편안하게 아빠를 그리워한다.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에서, 세월이 지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어른 덕선이 말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젊고 태산 같았던 부모님."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65세의 아빠. 아빠가 젊고 태산 같았던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극중에서 성동일이 포장마차에 앉아 자신의 고단함을 소주 한 잔으로 달래며 비틀거리는 삶을 "괜찮다. 다 괜찮다"하며 다시 바로 세우던 장면이 생각난다.

아빠의 팔짱을 끼고 포장마차에 가서 같이 소주를 마시고 싶다. 자신의 서투름에 가끔은 속상해서 비틀거렸을 아빠를 꼭 안아드리고 싶다. 우리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노래 솜씨가 좋았던 아빠의 애창곡 <꽃 중의 꽃>을 오래오래 가만히 듣고 있고 싶다.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