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명절에 큰 집을 방문했을 때 가톨릭 신자인 큰아버지는 <울지마 톤즈>(2010)라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남수단 공화국에서 빈민 구제 운동에 힘썼던 고 이태석 신부(1962-2010)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해인 2010년 4월 11일 < KBS 스페셜 >에서 방송한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2010년 9월 극장에서 공개된 <울지마 톤즈>는 이듬해 KBS 1TV에서 설 특선영화로 방영되기도 했다.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KBS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살았던 이태석 신부

선종 몇 달 전,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수도원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이태석 신부의 생전 모습으로 시작하는 <울지마 톤즈>는 평생을 남수단의 구호운동에 바쳤던 이태석 신부의 삶을 조명한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음악에도 남다른 조예가 깊었던 이태석 신부는 홀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한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는 한국인 사제 최초로 아프리카 선교활동에 떠난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서 선교에 집중하기보다 의료봉사, 마을 재건, 교육 활동에 힘썼다.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종교 불문하고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 모두에게 의술을 펼쳤기에 '남수단의 슈바이처'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KBS

 
이태석 신부가 자청해서 찾아간 남수단 공화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였다. 오랜 내전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황폐해진 남수단의 톤즈를 찾은 이태석 신부는 톤즈 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한 진료소(병원)를 세우고,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했다.

이태석 신부가 세운 병원과 학교는 톤즈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고, 수십 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몸과 마음 모두 지쳐있던 톤즈 주민들은 삶의 희망을 얻기 시작한다. 

그가 남수단에 병원뿐만 아니라 학교도 세웠던 이유

안타깝게도 톤즈 공동체가 자리를 잡을 무렵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태석 신부는 그들의 곁을 떠났고, 신부가 떠난 톤즈 마을은 절망과 낙담으로 가득하다. 이 대목을 강조하는 장면에서 불편한 지점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한다. 생전 이태석 신부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매사 감사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톤즈 환자와 주민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KBS

 
그러나 <울지마 톤즈>는 한센병 환자들의 잘려나간 손과 발, 한 브라스 밴드 단원의 구멍난 스타킹 등 더 이상 이태석 신부의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톤즈 주민들의 빈곤한 모습을 거듭 보여 준다. 생전 이태석 신부는 톤즈 사람들을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가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배울 점 많은 친구로 대했다. 하지만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조차 촬영 대상을 '빈곤 포르노'식으로 다루는 방향은 피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울지마 톤즈>가 제3세계의 빈곤과 재난을 다룬 다른 다큐들과 비교해 돋보이는 이유는, 남수단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에 힘쓴 이태석 신부의 업적에 있다. 성직자이자 의사였던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구호활동에만 전념하지 않았다. 이태석 신부가 세운 병원이 어느 정도 틀을 갖추게 되자, 그는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학교에 눈을 돌린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울지마 톤즈> 중에서) 

교육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준 <울지마 톤즈>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KBS

 
이태석 신부는 교육과 예술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십 년간 지속된 내전으로 많은 것이 붕괴된 남수단 톤즈에는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없었고, 내전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아이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기본적인 교육 시스템이 없어 질병, 범죄에 노출되는 가능성도 높았다. 의료봉사와 구호활동 만으로는 잦은 전쟁, 가난, 질병 등 톤즈 주민들이 겪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태석 신부는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총·칼을 쥐어주는 대신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태석 신부가 만든 학교와 브라스 밴드는 오랜 내전과 분쟁으로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던 톤즈 아이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KBS

 
지난해 12월에는 이태석 신부의 도움으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한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의사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의사가 된 아콧씨 외에도 이태석 신부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남수단의 미래를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과 음악을 통해 톤즈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이태석 신부의 꿈은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명절에 큰아버지 덕분에 보게 된 <울지마 톤즈> 덕분에 종교를 넘어 참사랑을 실천한 고 이태석 신부를 알게 되었고,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교육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시지상주의 교육의 폐해를 다룬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이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요즘,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울지마 톤즈>가 문득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남수단 톤즈에서 진정한 의술과 사랑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2010)ⓒ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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