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굳피플

 
제2의 전성기. 참 쉽게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김선아의 2018년을 표현하는데 이만큼 적확한 말이 또 있을까?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13년 만에 SBS <키스 먼저 할까요>로 다시 한번 연기대상 트로피를 안아 들었고, 최근 종영한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선 깊은 어두움과 상처를 가진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할을 맡아 묵직한 울림을 줬다. 

23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선아에게, 연기대상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김선아는 "(대상 수상자로)이름 불렸을 때 실감이 잘 안 났다"면서 "'삼순이' 이후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구나 싶기도 하고, 얼떨떨했다"며 밝게 웃었다. "너무 힘들고 답답해 촬영 중간중간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던 작품"으로 대상까지 받게 되니, 그 기쁨과 보람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3년 만의 대상 수상 기쁨도 잠시. 김선아는 촬영 막바지에 접어든 <붉은 달 푸른 해>의 차우경이 되어 내면의 깊은 상처와 어두움을 표현해야 했다. 

13년 만의 연기 대상, 그리고 <붉은 달 푸른 해>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굳피플

 
김선아가 연기한 아동 상담사 차우경은 녹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와 의문의 살인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끔찍한 비밀을 알게 되는 인물. 김선아는 이런 차우경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 선생님을 역대급으로 괴롭히며 연기했다"고 고백했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읽을 때와 연기할 때 차이가 엄청 큰 작품이었어요. 읽을 땐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너무 쉽고 빠르게 읽혔거든요. 보통 시나리오나 대본 읽는 속도의 두 배 정도 빠르게 읽혔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하려고 하면 물음표가 수없이 생겨서 표현하기 어려웠어요. 얘는 왜 이러는 걸까, 이 반응의 의미는 뭘까... 많은 고민이 필요했죠."  

극 안에서 차우경이 접하는 사건들은 모두 아동학대와 관련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아동 학대의 가해자들. 범인인 '붉은 울음'을 추적하는 극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번쯤 '범인 그냥 잡지 말지', '범인 잡히지 말아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수사극 형식을 띤 스릴러물 <붉은 달 푸른 해>이 여타 유사 장르물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이다. 대부분의 수사물이 시청자와 주인공이 함께 범인을 추리하다, 마침내 범인이 드러났을 때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강지헌(이이경 분)과 우경의 편집된 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붉은 울음이 죽인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동정 가는 사람이 있었냐. 솔직히 난 붉은 울음이 잡히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게 이 드라마의 생각할 거리인 것 같아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지만 살인은 안 되고, 잡아야 하는데 잡히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들... 잘 짜인 사건들 속에서 저도 시청자분들과 함께 고민했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연기하는 건) 정말 너무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개장수, 너무 싫어 눈도 못 마주쳤다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굳피플

 
김선아는 개장수(백현진 분)가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너무 싫고 무서워서 연기할 때 눈도 못 마주칠 정도였다. 연기를 그렇게 꼴 보기 싫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혀를 내둘렀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만큼 김선아는 작품의 설정에 깊게 빠져들어 있었다. 

덕분에 김선아의 눈물샘도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차우경은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침착하고 차분한 감정으로 사건을 대하는 게 더 어울리는 캐릭터다. 종종 '여기선 더 화내야 하는 거 아닌가?', '더 감정을 쏟아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감독은 최대한 침착한 감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눈물샘은 마음대로 콘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NG도 여러 번 났다. 

"작가님이 써주신 내용도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도 어딘가에 드라마 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눈물이 너무 많이 나더라고요. 마음도 너무 안 좋고, 괴로웠죠. 모두가 한 번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작가님이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너무 잘 풀어 써주신 것 같아요." 
 
팬심으로 택한 <붉은 달 푸른 해>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굳피플

 
쉽지 않은 장르와 메시지였지만, 김선아는 '팬심'으로 단박에 <붉은 달 푸른 해> 출연 결정을 내렸다. 도현정 작가의 전작인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방송 당시, 몇 번이나 온주완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추리를 이야기할 정도로 <마을>의 열혈 팬이었기 때문이다. 도현정 작가의 필력과 작품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기대감에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고. 

"<케세라세라>도 너무 좋아했지만, <마을> <붉은 달 푸른 해>까지, 도 작가님 글은 날로 좋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시청자로서 작가님의 작품을 보다가 이번에 처음 출연하게 된 거잖아요. 느낀 건, 도 작가님 대본은 모두를 공부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배우가 긴장을 놓지 못하도록, 배우로서 쉴 새 없이 공부하도록 만드는 대본이더라고요.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대단해서 연기하다보면 진이 빠질 정도였어요. 

시즌2도, 저희끼리 한 이야기지만, 도 작가님이 쓰셔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을 것 같은 거예요. 이번에 아동학대에 대해 다뤘다면, 가정 폭력, 성범죄... 앞으로도 써주셔야할 게 너무 많죠. 붉은 울음이 처단해야 할 악들도 너무 많고요. 드라마 한 편으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이렇게 뚜렷한 문제의식을 이야기로 잘 풀어내시는 작가님이 계속 써주시면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컸던 삼순이의 존재감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굳피플

 
2005년 방송된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선아에게 첫 연기대상 트로피를 안겨줬고, '삼순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남겨줬다. 하지만 삼순이의 존재감은 너무 컸다.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했고, <시티홀> <여인의 향기>처럼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도 있었지만, 뭘 해도 '김삼순'의 그림자를 벗어날 순 없었다. 꽤 오랜 기간의 침체기 끝에 <품위있는 그녀> <키스 먼저 할까요?> <붉은 달 푸른 해>까지 3연타 홈런을 쳤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13년 만에 연기대상에, 가장 '핫한' 스타들이 탄다는 '베스트 커플상'까지 탔다.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지만, 김선아는 "새롭거나 다를 건 없다"고 했다. 대중이 '침체기'라 부르던 시기에도 자신은 꾸준히 작품을 해왔고, 연기 수업도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엄청난 인기를 끈 <김삼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김선아에게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품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조금 나태해졌던 순간이 있기도 했어요. 지쳐있었고, 연기가 재미없었죠. 아무 생각 없이 연기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찰나였어요. 그때를 제외하곤 늘 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연기하고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운때'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제가 수학을 잘 못 해서 그런지 숫자에 예민하지 않아요.(웃음) 작품 끝나고 드는 성취감에 시청률이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요. 이번 <붉은 달 푸른 해>도 시청률이 크게 잘 나온 작품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만족도는 굉장히 높거든요. 주위에서 작품 잘 봤다, 너무 좋다는 연락을 굉장히 많이 받았고요. 좋은 작품에 캐스팅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두 번의 대상... "나태해지지 않겠다"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 상담사 차우경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굳피플

   
13년 전 <내 이름은 김삼순>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현빈 역시 최근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해 현빈이 한 인터뷰에서 함께 연상연하 커플로 연기하고 싶은 여배우로 김선아를 꼽았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정말? 나도나도!" 하며 밝게 웃었다. 

"현빈씨는 느낌이 참 좋은 사람이에요. 눈빛도, 목소리도 너무 좋잖아요. 그러고 보면 삼순이 할 때 현빈씨가 20대였고 제가 30대였는데, 우리 둘 다 앞자리가 바뀌었네요. 와. 대박이다. 하하하.

('다음 작품은 말랑말랑한 걸 하고 싶다'는 김선아에게 현빈 이야기를 꺼내니) <삼순이2>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삼순이-삼식이가 너무 강해서,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이 잠시 삼순이-삼식이를 잊어주시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근데 요즘 친구들은 삼순이 잘 모르죠? 길 다니면 어머니들은 '삼순이'라고 하시고, 어린 친구들은 '복자 언니'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두 번의 대상. 다시 찾아온 전성기. 김선아는 "상 받은 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상 때문에 달라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상 받았다고 나태해질 순 없는 거 아니겠느냐"면서.   

"게을러지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늘 제게 맞는 역할만 오진 않잖아요. 연기 수업 열심히 받고, 꾸준히 활동하다 보면, 이번처럼 좋은 작품이 연이어 찾아오는 순간이 또 찾아올 거라 생각해요. 제게 어울리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 잘 해낼 수 있도록 열심히 살다 보면 상도 언젠가 또 주어지겠죠. 상은 언제나 좋은 거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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