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그롤(왼쪽에서 세번째)은 너바나와 푸 파이터스의 멤버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데이브 그롤(왼쪽에서 세번째)은 너바나와 푸 파이터스의 멤버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소니뮤직코리아

  
군 생활을 하던 시절, 까까머리 청년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음악이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CD플레이어로 아이유의 노래나 록을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았다. 좋은 음악을 듣고 있으면, 부대 생활의 답답함도 잊을 수 있었다. 동기들끼리 시디를 빌려 듣는 경우도 잦았다. '낙타'라고 불리던 빈지노의 앨범이 가장 인기를 모았다.

동기가 선임에게 물려받았다는 그래미 어워드 앨범 역시 소수의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매년 그래미 어워드를 앞두고 발표되는 앨범인데, 케이티 페리, 레이디 가가 등 그래미 어워즈에 입후보한 뮤지션들의 대표곡들이 모여 있었다. 쟁쟁한 스타들의 노래 중, 내 귀를 가장 사로잡은 곡은 록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Walk'였다.

군인 아저씨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푸 파이터스는 너바나(Nirvana)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결성한 밴드다. 꾸준히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로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뽑은 최고의 밴드 중 한 팀이기도 하다. 늘 커트 코베인의 뒤에서 묵묵히 드럼을 쳤던 데이브 그롤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작곡가이며 록 보컬인지를 증명했다. 사실 'Walk'는 입대 전에도 좋아하던 곡이었다. 희망적인 가사, 그리고 밝은 기타 멜로디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는 동안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에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푸 파이터스(Foo Fighters)가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에게 휴가는 곧 '음악'이었다. 휴가는 곧 시디를 사고, 공연을 가기 위해 나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푸 파이터스 같은 거물 밴드가 한국에 온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휴가 날짜를 정했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티켓이 공짜로 주어지면 얼마나 좋겠냐만, 십수만 원의 티켓 가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물론 양질의 공연이 주는 감동을 돈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달 임금이 15만 원이었던 군인에게 15만 원짜리 티켓은 부담이 컸다(이후 한 달 동안 PX 이용을 하지 못했다).

"15만 원이라고? 너 돈이 남아도냐."

내가 한 밴드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나간다고 하자, 한 동기는 이렇게 오지랖을 부렸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을 하루짜리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회비용을 고려한다고 해도, 어느 쪽이 더 옳은 결정인지는 너무나 확실했다.

휴가 날짜에 대한 결심을 굳힌 어느 날,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데이브 그롤이 스웨덴 공연 중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응급 처치를 받고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후의 투어는 중단되었다. 다리 골절을 당한 친구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통증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괴로웠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월드 투어는 무슨! 그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반쯤 놓고 있던 상황이었다.

록의 영웅, 왕좌 위에 앉다
 
 데이브 그롤 공연 모습

데이브 그롤 공연 모습ⓒ 라이브네이션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푸 파이터스가 공연을 재개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Sonic Highways'라는 투어 이름을 'Broken Legs'(부러진 다리)로 바꿨다. 2015년 7월 26일, 실제로 본 그의 모습은 더욱 경이로웠다. 부상이 다 낫지 않았기 때문에 그롤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지만, 'Foo Fighters Throne'이라고 불리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화 <매드맥스>에나 나올 것 같은, 화려한 왕좌였다. 그는 아픈 내색 없이 강력한 하드록 넘버들을 멋지게 연주했고,  'Fuckin' Crazy'라며 관중을 칭찬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흥에 겨웠던 것인지, 의자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마지막 곡 'Best Of You'에 이르기까지, 꿈결 같은 90분이었다. 무더운 날씨가 주는 불쾌함 등 따위는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의 호쾌한 면모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내 마음속의 록 영웅이 되었다. 인간이 가진 의지의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왔다. 
 
그리고 2년 후, 푸 파이터스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록의 왕좌'가 아니라, 데이브 그롤이 무대 위로 뛰어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민간인이 되었다는 것 정도?) 푸 파이터스는 'All My Life', 'Learn To Fly' 등 강력한 록 넘버들을 연이어 불렀다. 공연이 한창 뜨거워졌을 때쯤, 나의 CD 플레이어에서 지겹도록 울려 퍼지던 'Walk'가 연주되었다. 언제 들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록 넘버였다. 몸은 신나게 펄쩍 뛰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스타'가 거기에 있었다.
 
"I'm dancing on my grave
I'm running through the fire forever, whenever
나는 나의 무덤에서 춤을 추고 있어
나는 불길을 뚫고 달려가고 있어 영원히, 언제나!"
- 'Walk'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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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일곱. http://blog.naver.com/2hyun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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