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이하는 올해, 방송가에서는 특집 프로그램이 연이어 방송되고 있다. 그 스타트를 끊은 건 1일과 2일에 걸쳐 CBS에서 방송된 2부작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다.

흔히 3.1운동 생각하면 가장 떠오르는 건 유관순 열사와 천안 아우네 장터다. 하지만 CBS TV가 1년 동안 공을 들여 제작한 특집 다큐 <북간도의 십자가>는 100년 전 십자가 하나 붙들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북간도인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제작진은 왜 3.1운동 대표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북간도인들의 독립운동에 주목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 <북간도의 십자가>를 제작한 반태경 CBS PD, 김어흥 작가를 지난 23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났다.

문성근 참여한 내레이션, 대화 형식에 반말로 만든 이유는
 
 <북간도의 십자가>의 반태경(우) CBS PD, 김어흥(좌) 작가

<북간도의 십자가>의 반태경(우) CBS PD, 김어흥(좌) 작가ⓒ 이영광

 
- 3.1운동 특집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가 1일과 2일 방송되었잖아요. 소회가 어떠신가요?
반태경 PD(아래 반) : "3.1운동이라는 게 우리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있다는 걸, 이번 다큐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큰 역사적 사건이고 우리가 다 같이 기념해야 할 사건인데, 운이 좋아서 그걸 거의 1년 반 전부터 기획해서 만들어 냈어요. 제가 알기로는 3.1운동 100주년 관련 뉴스 리포트는 (타매체도) 1월 1일에 많이 했는데, 특집 다큐멘터리를 1월 1일에 방송한 건 저희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의미 있는 해에 가장 먼저 시청자들께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였다는 점이 감회가 새로워요. 물론 저희가 매체 파워가 크진 않지만, 3.1운동의 100주년의 포문을 여는 작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북간도의 십자가>는 3·13 만세운동을 중심으로 일제 시대 독립운동 이야기를 담은 거잖아요.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게 대부분 유관순 열사와 천안 아우네 장터인데, 그곳이 아닌 북간도를 주목한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반 : "기독교인 유관순을 다루는 작품은 저희가 아니라도 다른 데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3.1운동 다큐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다큐가 아닌, CBS만 할 수 있는 다큐를 만들자'고 의기투합을 했거든요. 사전에 자료를 보다 보니, 만세운동은 3.1운동 때 국내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2.8 동경 독립선언부터 시작해서 모든 곳에서 펼쳐졌어요. 가장 큰 만세시위가 북간도의 용정에서 벌어졌어요. 그 자리에서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군의 발포로 당시 13명, 나아가서 40명 이상이 죽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다큐의 모티브가 되었죠.

어떤 분은 '3.1운동 다큐인데, 국내에도 3.1운동 관련 다룰 것이 무궁무진한데 왜 북간도로 갔냐'라고 하는데, 국내는 다른 분들이 충분히 잘 다루어 주실 것 같아요. 저희는 북간도의 3.13운동부터 북간도에서 펼쳐졌던 드라마틱한 독립투쟁, 그리고 북간도 기독교인들이 내세 구원만 받으려 한 게 아니라 총을 들고 기와에 십자가와 태극기를 새겨 넣고 살았던 것들을 파고들려고 했고요."

- 어떻게 심용환 작가하고 함께하게 되셨어요?
반 : "요즘에 자주 나오는 포맷이기도 한데, 한 주인공이 프리젠터로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분위기를 느끼는 콘셉트로 기획을 했어요. 후보가 여러 명 있었는데 요새 역사 얘기를 많이 하고, 교회에 대한 기본 인식도 있고... 또 만나고 나서 알았는데 저희 다큐멘터리의 실질적 마지막 주인공인 문익환 목사님을 기리는 '통일의 집' 이사를 심 작가가 맡아서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적격의 사람이다' 싶어서 2월에 다큐 정식 제작 전에 심 작가에게 '다큐 하게 되면 무조건 나랑 같이하자'고 했고, 추후 지원받아서 간도를 다녀오게 됐어요."

- 처음 북간도에 갔을 당시 느낌은 어땠어요?
반 : "저는 본 취재하러 가기 한 달 전에 4박 5일 정도 답사를 갔었어요. 저는 중국이 처음이었거든요. 중국 자체에 대해 낯섦도 있었는데, 북간도 전체에 대한 느낌은 좀 달랐어요. 분위기가 대림동 같기도 하고 진짜 오묘한 느낌이죠. 선배들이 다큐를 보고 나서 돌과 밭밖에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냐며 칭찬을 했어요. 건물이 없잖아요. 그 장암동 학살 현장은 (현재) 옥수수밭만 있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진짜 이걸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했죠."

- 내레이션이 다른 다큐와 달라요. 배우 문성근씨가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문동환 목사 시점으로 심용환 역사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던데.
김어흥 작가(아래 김) : "(제작진끼리) 평범한 다큐를 만들지 말자고 했죠. 프리젠터 데리고 여기는 어디라고 설명하는 건 <세계 테마기행> 같은 데는 어울리는 거죠. 저희는 일부러 다 뺐어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 명이 나와서 설명을 하기에는 저희 다큐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북간도를 기억하자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러면 북간도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사람과 그걸 기억해야 할 젊은이, 두 사람이 콤비로 같이 갔으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동환 목사님은 누워계시잖아요. 그럼 좀 더 애틋하게,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두 사람 간의 텔레파시처럼 원격으로 서로 대화를 하는 느낌을 주면 분위기가 더 아련하지 않을까 했어요."
 
 <북간도의 십자가> 내레이션 녹음 하고 있는 배우 문성근씨

<북간도의 십자가> 내레이션 녹음 하고 있는 배우 문성근씨ⓒ 반태경 제공

 
- 문성근씨한테 제의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반 : "저희가 처음에 고민했던 게 '문성근 선생님의 내레이션 대본도 존댓말로 해야 하나'였어요. 그동안 다큐멘터리에 반말 내레이션은 거의 없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이건 당신이 아니라, 99세인 당신 작은 아버지입니다. 우리나라에 99세 이상인 분이 얼마나 계시겠습니까? 회고하는 식으로 1인칭으로 반말로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어요. 문성근 선생님께서 처음에는 좀 머뭇거리셨는데, 실제로 연구를 정말 많이 해오셨더라고요.

원래 녹음할 때 마이크가 앞에 똑바로 앉아서 하는 게 맞는데, 뒤에 쿠션 깔고 완전히 누워서 최대한 문동환 목사님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려고 하셨어요. 심용환 작가와 문동환 목사 역할의 문성근 선생님, 두 사람이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했어요. 특히 김어흥 작가님이 정말 글을 기가 막히게 써주셨어요. 그냥 방송작가가 아니라 소설가니까 이야기가 되도록 쓰신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 독립운동 이끌던 100년 전 교회 못 따라가"
 
 북간도에 있는 막새기와다. 막새기와엔 태극기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북간도에 있는 막새기와다. 막새기와엔 태극기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CBS

 
- 1부에 나온 것들, 기와에 새겨진 태극기와 십자가가 북간도인들의 나라 사랑과 신앙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반 : "저도 막새기와라는 단어를 이번에 처음 듣기는 했었는데, 이게 어떤 상징이잖아요. 당시 막새기와를 새길 때가 간도에도 일본 파출소랑 일본 영사관이 들어오면서 탄압을 시작한 시점인데, 기와에 태극기와 무궁화를 넣어놨다는 걸 두곤 작가님은 '그래 이게 우리 간도 사람들의 배짱이지'라고 써주셨는데, 정말 배짱이라고 생각했어요. 거기다 저희는 기독교 방송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기와 밑부분에 십자가가 같이 새겨져 있는 걸 보고, 삼위일체라고 생각했어요. 민족을 생각하고 국가를 생각하고... 그걸 또 신앙으로 민족을 지키고 국가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담은 기와가 아닌가 싶어서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게 지금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어렵게 촬영을 해왔거든요."

- 이덕주 교수님이 '기독교가 들어온 지 30년 만에 충분히 영향을 끼친 거'라고 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아주 조금인데 그렇게 많이 영향을 끼쳤다는 게 대단하던데 어떻게 느끼셨어요?
반 : "기독교를 상징하던 서구 세력, 서구 문물이 구한말 일제 강점기 초기 때 사회에 학교를 보급하고 학문을 보급하고 민주주의를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렇게 활동했던 기독교 세력, 선교사 세력의 긍정적인 면을 봤기 때문에 거기서 일부 결의된 사람들이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많은 다른 민중들이 동참하고 따르게 되지 않았을까 하죠.

예를 들어서 2019년 지금 '개독교'라는 말처럼, 기독교가 당시 사회의 비판을 받았더라면 아무리 만세 시위를 주도했더라도 백성이 존중하거나 동참하지 않았을 텐데요. 당시 기독교에서 결의한 사람들이 먼저 만세 시위를 준비했고 그 기독교 상부 세력들이 학교 병원 교회들을 세우면서 공동체를 조금씩 진보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당시 백성들이 판단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이끌었던 독립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았을까요? 역으로 그로부터 100년 지난 지금 한국의 최대 종파가 개신교라고 하는데, 20%가 넘는 개신교가 뭐만 하면 사람들로부터 희화화되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죠."
 
  <북간도의 십자가>의 반태경 CBS PD

<북간도의 십자가>의 반태경 CBS PDⓒ 이영광

 
- 이덕주 교수님이 소금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고 맛이 있냐 없냐의 문제라고 하는데 오늘의 기독교에서 생각해볼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반 : "저도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데, '지금의 한국 교회·한국 기독교는 무얼 바라보고 있는가'죠. '내세만 바라보고 있는가'예요. 내세를 떠나서 지금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 믿는 하나님의 의와 공의에 부합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업무인 것 같은데요. 그런 차원에서 지금 한국 기독교는 100년 전 1.5%에 불과했던 기독교에 발끝도 못 따라가고 있죠."

- '3.1운동은 독립이라는 열매를 거두러 가는 게 아니라 씨앗을 심으러 간 것'이라는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의 말이 인상 깊었는데요.
반 : "이게 시편 126편이에요. 저희가 다큐로 말하고 싶었던 건 솔직히 그 때 '1919년의 일본이라고 하면 거의 서구의 미국, 영국과도 '맞짱'을 뜰 준비가 되었던 그런 막강한 나라인데, 깃발 하나 흔든다고 독립될 것 같냐?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해야 하는데, 부딪히든 뭐하든 독립의 씨앗을 심으러 들어가는 거고, 그들의 눈물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 2019년을 살아가는 데에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정말 어렵잖아요. 20대들 얘기 들으면 너무 갑갑하더라고요. 취직도 안 되고 결혼도 되지 않고 이런 거대한 절벽 같은 상황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 모르겠다고 손 놓는 것이 아니라, 내 후배들, 내 자손들이 사는 삶은 바꿀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냐죠. 그게 3.1운동 정신이죠."

- 어쩌면 문익환 목사의 통일 운동도 같은 맥락 같아요. 자신이 통일된 조국을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이 씨앗을 뿌리는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반 : "에필로그로 마지막 1966년의 명동학교 동창회 사진을 썼는데, 원래 에필로그는 문성근 선생님이 낭송한 문익환 목사님의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였요. 문익환 목사님 방북(1989년)하신 게 올해로 30년이 되었고, 문성근씨가 저희 라디오 출연하셨을 때나 저희에게 알려주신 게 있어요. 실제 문익환 목사와 당시 북한의 허담이라는 책임자가 합의한 문서가 있는데요. 그 문서의 엑기스가 십수 년 뒤의 6.15공동선언이 등에 들어간 거라는 거예요. 결국, 문익환 목사도 자신이 씨를 뿌리러 가신 거죠."

3.1운동 100주년, 기억에 새기기 위해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다

- 청산리에 관해서는 김좌진 장군이 유명하잖아요.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장소인데 거기가 지금 인삼밭으로 변한 게 참 충격이면서도 안타까운 것 같아요.
반 : "저희는 인삼밭으로 남아있는 것도 아쉬웠지만, 우리가 한두 사람의 영웅만 생각하는 건 조금 아쉽죠. 청산리를 김좌진이 다 안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봉오동에는 홍범도, 청산리는 김좌진만 알고 있으니까. 저희 다큐 보면 애니메이션을 넣었지만, 옆에서 밥 날라주는 여자들 있고, 치료해주고 옷 갖다 주고, 독립군 내려오면 숨겨주고 산채해서 주고... 실제로는 자기 일만 하고 살아도 그만인데, 농사 포기하고 총 들고 나가서 장렬하게 전사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갑분이 갑돌이들을 기억해야죠."
 
 <북간도의 십자가>의 김어흥 작가

<북간도의 십자가>의 김어흥 작가ⓒ 이영광

 
- 다큐 찍으며 느낀 점도 많을 거 같아요.
김 : "삶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 전에는 (독립운동에) 큰 관심도 없었고, 아마 몰랐으니까 관심이 없었겠죠? 근데 이제 저 개인적으로 공부가 굉장히 많이 됐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구나 싶죠. 개인적으로는 저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고, 저도 방송작가지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서, 북간도에 관련된 스토리를 대하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어요. 방송으로 다루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아쉬워요."

- <북간도의 십자가>의 메시지는 아무래도 "역사는 기록되기보다는 기억되어야 한다"라는 문성근씨 마지막 멘트가 아닐까 싶은데.
반 : "특별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항상 우리가 머릿속에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고, 그 기억을 위해서 저희는 다큐멘터리로 기록을 했다고 생각을 해요. '100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았을까'를 우리 머릿속에 새기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촬영하면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반 : "문동환 목사님, 강원용 목사님이 다니셨던 은진중학교가 유일하게 돌무더기가 아닌 건물로 남아있더라고요. 건물 안에 잠깐 있었는데, 경찰들이 와서 봉변을 당할 뻔한 적이 었었어요. 다행히 위기는 잘 넘겼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봉오동 전투 촬영을 할 때 두만강 바로 앞에 북한 영토가 보이는 포인트가 있었어요. 거길 장비를 메고 올라가는데, 답사 때 못 봤던 사찰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제가 모태 기독교 신자인데 처음으로 스님께 합장하고 불공드리러 올라간다'고 하고 올라가서 촬영한 적도 있었네요. '다큐 촬영하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생각했죠.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에요."
 
 <북간도의 십자가> 포스터

<북간도의 십자가> 포스터ⓒ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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