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동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최근 2018 동창 동계올림픽까지 쇼트트랙 선수들이 메달을 따오는 일은 계속됐고 영웅이 탄생했다. 그런데 그 감동 드라마가 사실 끔찍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면 어떨까.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은 빙상계 내부의 폭력 실태를 다뤘다. 전직 스케이트 선수와 코치들의 목소리로 전해진 실상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방송에 나온 폭로를 요약하면, 쇼트트랙 훈련 현장에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과 폭행이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내용이었다.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뽀뽀도 하고, 안는 것도 자주 안고, 그리고 카톡으로 사랑한다고..."
"휴대전화로 사람 머리를 찍어요. 그러면 갑자기 피가 주르륵..."


지난해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는 전 국가대표 코치인 조재범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조 전 코치는 이후 진행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초 지난 14일 조 전 코치에 대한 2심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17일 심석희 선수가 조 전 코치에게 성폭행도 당했다며 추가 고소해 판결이 연기됐다.

추가 고소장을 냈지만, 심석희 선수는 아버지가 고소장을 볼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이날 방송에서 심석희 선수의 어머니가 전한 말에 따르면, 심석희 선수가 "아빠가 (고소장 진술서를) 보면 가서 (코치를) 죽이지 싶어" 못 보게 만류했기 때문이라고.

시계 되돌려, 평창 당시 폭로됐던 조재범 폭행 사태로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 PD수첩 >은 2019년 1월 체육계를 뒤흔들고 있는 '빙상계 미투'의 흐름을 짚기 위해 시계를 되감는다. 방송에서 거슬러 올라간 시기는 지난 2018년 1월 17일,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격려 차원에서 선수촌을 방문한 날이었다.

당시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선수단 주장이었는데, 그는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엔 심 선수가 독감으로 불참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심석희 선수는 전날 훈련 이후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 PD수첩 >이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당시 폭행 상황에 따르면, 조재범 코치가 심석희 선수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라커룸으로 끌고 가 15분 이상 폭행했다고 한다. 당시 다른 선수는 모두 훈련장에 있었고, 심석희 선수는 누구도 제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머리와 다리, 허리를 구타당했다. 머리채를 잡힌 상태에서 맞다가 정신을 잃었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고 한다.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이날 폭행에 앞서 사흘 전에도 맞았다는 심석희 선수는 결국 대통령이 방문하기 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선수촌을 뛰쳐나와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놀란 심석희 선수의 아버지는 진천 선수촌으로 향했다고 한다. 심석희 선수가 선수촌을 벗어난 당시 그를 보호했다는 심석희 친구 어머니는 당시 직접 목격한 상황을 묘사했다. 얼마나 머리를 심하게 때렸는지 심석희 선수가 입은 후드티 모자에 머리카락이 수북히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심석희 선수는 선수촌에 복귀해 평창 동계 올림픽을 치렀지만, 1500m 경기 도중 별다른 충돌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 심 선수는 뇌진탕 증상을 호소했는데, 경기 전 그가 당했던 폭행 여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제작진은 2018년 불거진 조재범 폭행 사건 당시 심석희 선수가 맞았다는 사실을 대표팀의 다른 코치들이 몰랐는지도 파헤쳤다. 이에 관해 방송에 출연한 한 스케이트 코치는 당시 코치들 중 일부도 선수 폭행에 있어 공범, 혹은 방조범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때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다 (전명규) 교수 사람들이거든요. 조재범 코치가 때릴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결국 그들도 같이 본 방조범들이에요. 근데 그분들은 올해 우수 코치 상을 받고 다 그래요. 아주 깔끔하게 세탁됐어요."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선수를 상대로 한 폭행의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이날 < PD수첩 >에선, 주먹과 발로 때리는 건 예사이고 스케이트 날을 보호하기 위한 플라스틱 날집으로 머리에서 피가 날 때까지 맞는다고도 했다.

또한 전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이자 젊은빙상인연대 대표 여준형씨는 방송에서 "여자 선수들은 맞는 동안 많이 우니까 물을 먹여가면서 때린다, 탈진할까 봐"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익명의 스케이트 코치는 다른 코치가 "중3 여자애들 줄 세워놓고 한 시간 때리면 옆에 애들은 무서워서 오줌을 싼다"며 자랑하듯 말하는 걸 들었다고도 전했다.

이어 헬멧이 망가질 정도로 맞았다는 초등학생 스케이트 선수, 고막이 터질 때까지 맞은 중학생 선수의 사례까지 나왔다. 이와 같은 수준의 폭행을 그저 '체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10대 선수가 선수촌에서 겪는 폭행 피해를 부모들은 모르는 걸까. 방송에서 10대 선수들은 선수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강요받고, 폐쇄된 공간에서 묵묵히 폭력을 견디며 운동했다고 증언했다. 또 어느 10대 스케이트 선수의 부모는 피해 사실을 알더라도 신고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신고해도 큰 징계 없이 가해자가 현장에 복귀하기 때문에 차마 고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아이가) '내가 운동 아예 안 할게' 하지 않는 이상 신고할 수 없는 거예요, 저희는. 그리고 처벌? 벌금만 내면 그 코치는 코치박스에 또 서잖아요."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개인적 일탈이 아닌 빙상계 폭력

제작진은 이어 빙상계에서 빈번한 폭행이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며 폭력의 뿌리를 지적한다. < PD수첩 > 제작진이 지목한 곳에는 최근 기자회견을 연 전명규 교수가 있었다.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은 물론 폭행 사실조차 몰랐다고 주장한 전명규 교수는 과거 빙상계 현장에서 15년간 선수들을 직접 지도한 인물이다. 방송에서는 무려 780여 개에 달하는 메달을 만들어내고 그 덕분에 훈장까지 받아 체육계 영웅처럼 추앙받던 전명규 교수의 과거를 비춘다.

그리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주민진씨가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팀 시절 6년 중 5년을 당시 코치였던 전명규로부터 지도받았다는 주민진씨는 그때도 그로부터 폭행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폭행이 경기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쓰였죠. (폭행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손이나 발을 많이 썼고.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머리채를 잡고 머리가 많이 빠질 때까지 흔든다던가... 그냥 머리채를 흔든다고 생각할 텐데, (가게 앞) 풍선 마네킹 있죠? 그런 식으로 선수가 움직일 정도로, 몸이 다 날아갈 정도로 (흔들어요)."

방송에서는 전명규 교수가 과거에 쓴 책 <자식, 가르치지 말고 코치하라>에서 체벌을 당당하게 옹호한 부분을 들추기도 했다.

"체벌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체벌을 당해도 믿음이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음만 있으면, 죽이든 살리든 난 저 사람만 따라 가면 된다는 믿음만 있으면 그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방송에 따르면, 전명규 코치가 한체대에 부임한 이후 빙상 훈련장 유리창에 커튼이 설치됐다고 한다. 관중석 창문에 커튼을 쳐 코치들이 '기강을 잡는 모습'을 학부모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커튼이 쳐질 때마다 선수들은 얼마나 공포에 시달렸을까. 또한 방송에서 카메라가 비춘 쇼트트랙 훈련장 벽에는 '체벌용' 하키채들이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 PD수첩 >은 조재범 폭행 사태 후 전명규 교수가 폭행 사태 후 심석희 선수와 조재범 전 코치를 압박한 정황이라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녹취록도 다시 들려줬다. 전명규 교수가 국감 당시 본인 목소리는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압박한 사실은 없다며 발뺌한 그 발언들을 말이다.

그리고 제작진은 '빙상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전명규 교수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합숙훈련과 엘리트 스포츠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정부의 관련 부처를 오늘날 빙상계 폭력 사태가 자라난 배경으로 언급한다. 여기에 성폭력·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빙상연맹의 부실한 징계 기록도 덧붙인다.

금메달리스트 스포츠 스타마저도 폭력의 그늘에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심석희 선수가 어렵게 피해를 고백한 상황에서 스포츠계의 병폐를 제대로 파헤쳐 고치지 못한다면 안 될 일이다. 다만 냉정하게 사태를 풀어내려면 < PD수첩 >이 던진 묵직한 물음, '폭력과 맞바꾼 금메달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22일 방영된 MBC < PD수첩 >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 중 한 장면. ⓒ MBC

 
PD수첩 빙상계 전명규 조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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