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빙 빈센트> 포스터.

영화 <러빙 빈센트> 포스터. ⓒ 판씨네마(주) , (주)이수C&E


영화 <러빙 빈센트>는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로버트 굴라직)가 사망한 지 1년 뒤의 일을 그린다. 동생 테오에게 남겨진 빈센트의 편지가 발견된다. 집 주인은 빈센트와 친구 사이였던 우편배달부 조셉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에게 이를 전달하고, 그는 다시 아들인 아르망(더글러스 부스)을 통해 편지를 테오에게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아르망은 그다지 탐탁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빈센트의 동생을 찾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테오 역시 빈센트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아르망은 결국 빈센트와 각별한 사이였던 의사 가셰(제롬 플린)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를 만나 빈센트의 편지도 전해주고, 빈센트에 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가셰를 만나기 위해 그는 빈센트가 생애 마지막 순간을 보낸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머무르게 되고, 이곳에서 빈센트와 인연이 닿았던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일화들을 전해 듣게 된다. 아르망은 빈센트의 죽음이 왠지 석연치 않음을 직감한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 판씨네마(주) , (주)이수C&E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일단 영화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실사로 제작된 필름 위에 유화 물감으로 거칠게 덧칠된 흔적이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붓칠의 질감은 생전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작품의 그것을 고스란히 빼닮아 있었다. 특유의 질감 덕분에 그림 속 배경과 물체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양 꿈틀거리는 느낌이 강하게 들곤 했는데, 이 영화는 유화의 그 강렬함을 온전히 애니메이션 형태로 되살려놓은 게 아닌가.

그림이나 영화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정성이 가득 담긴 작품임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제작 후일담을 거들떠 보니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전 세계 화가들이 뭉쳤단다. 4천여 명의 화가들 가운데 오디션을 통해 총 107명을 뽑았고, 이들이 직접 그린 6만2450점의 유화가 영화의 프레임 형태로 되살아난 것이다. 영화가 완성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만 총 10년이 걸렸다고 하니, 전문가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수작업을 통해 정성껏 고흐의 숨결을 불어넣은 명품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

영화 <러빙 빈센트> ⓒ 판씨네마(주) , (주)이수C&E

  
제작진은 특히 고흐의 작품 가운데 '별이 빛나는 밤'으로부터 '노란 집'을 거쳐 '즈아부 병사의 반신상'에 이르기까지 무척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오프닝 장면에 유독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의 제작을 위해 모두 729장의 유화가 그려졌으며, 이 장면을 완성하는 데에만 무려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라는 놀라운 타이틀은 이렇게 하여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서양 미술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여러 갈래로 갈린다. 천재, 순수한 사람, 미친놈, 게으름뱅이 등 극과 극을 오가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빈센트가 생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시골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를 찾은 아르망 역시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법 하다. 빈센트와 친분이 있던 의사 가셰를 비롯한 그의 주변 인물들,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머물며 숨을 거뒀던 여관집 주인의 딸 라부(엘리너 톰린슨), 그리고 뱃사공(에이단 터너) 등이 평가하는 빈센트의 인물됨됨이가 각기 달랐던 까닭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 판씨네마(주) , (주)이수C&E

  
극은 아르망이 빈센트와 연이 닿은 주변 인물들을 일일이 탐문하면서 의문투성이로 남은 그의 과거 행적들을 조각 맞춤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덕분에 마치 셜록홈즈 시리즈 등 단행본으로 된 추리소설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시청하는 듯한 느낌도 문득 든다. 빈센트의 생전 활동은 흑백 영상으로 처리돼 있으며, 아르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빈센트 사후의 이야기는 실사 필름 위에 유화풍의 붓칠로 덧칠되어 애니메이션 형태로 마무리 지어졌다.

빈센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의 여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 작품 역시 이를 밝히려는 의도로 제작된 건 결코 아니다. 그가 어떤 캐릭터였는지는 작품 속 다양한 인물들의 평가를 통해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다. 다만, 빈센트가 밝혔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자살이 알고 보면 자신의 죽음으로 남겨진 자들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이타적인 행위인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던 동생 테오와 그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위대한 예술가의 짧았던 생애는 이렇게 하여 마감된 것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 판씨네마(주) , (주)이수C&E

 
이 영화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130여 점이 등장한다. 숨은 그림을 찾듯 이들 작품 하나하나를 발견해내고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영화 '러빙 빈센트'의 존재 가치는 충분할 테지만, 그 덕분에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걸출한 유화 애니메이션은 불멸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를 기리기 위한 후대 예술인들의 헌정 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오프닝에 담긴 아래의 문구는 그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의 제작에 임했는가를 고스란히 입증한다.

"그림 말고 우리를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영화 <러빙 빈센트>의 스틸 컷 ⓒ 판씨네마(주) , (주)이수C&E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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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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