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나를 미치게 만든 스타' 공모를 보자마자 떠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 선수입니다.

아무리 게임에 관심이 없는 한국인이어도, 스타크래프트와 임요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임요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너무 유명해서, 나이드신 분들도 임요환이라는 사람이 게임으로 먹고 산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해 하곤 했습니다. 또 스타크래프트의 약어가 '스타'였으니, 스타하면 자동적으로 스타크래프트가 떠오르고 스타크래프트 하면 임요환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최근 MBN 예능 프로그램 <사돈끼리>에 출연한 임요환 선수의 모습.

최근 MBN 예능 프로그램 <사돈끼리>에 출연한 임요환 선수의 모습.ⓒ MBN

 
지금의 임요환 선수는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연예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배우 김가연씨의 남편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황제 임요환과 e스포츠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뿐만 아니라 한국 e스포츠의 기틀을 닦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스타 리그를 보던 시절 황제 임요환을 좋아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요환 선수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나를 미치게 했다
 
제가 임요환 선수를 싫어해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았습니다. 우선 너무 게임을 악착같이 잘 하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임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잘 하는 점도 참 싫었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종족인 테란도 별로 호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임요환 선수는 별명이 '황제'였고, 황제는 군림하는 존재였습니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매번 젊은 선수들을 깨부수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게이머들이 다른 직업을 찾은 것과 달리, 임요환 선수는 끝까지 스타크래프트 판에 남아 새로운 전략을 찾았습니다. 팬도 많았고 해설진도 화려한 언변으로 황제의 위엄을 높였습니다.
 
제가 임요환 선수를 좋아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제가 좋아하는 선수와 팀에 특히 강했기 때문입니다. 임요환 선수는 프로게이머 팀 SK 텔레콤 T1의 선수였습니다. 저는 POS(훗날 MBC게임으로 변경)의 팬이었고, POS의 선수들은 임요환 선수에게 역사에 남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진 적이 있습니다. 임요환 선수가 '패러독스'라는 맵에서 POS 도진광 선수에 승리한 것은 스타크래프트 방송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으로 회자될 정도입니다. 
  
 2005년 SO1 스타리그 당시 임요환 선수와 박지호 선수의 맞대결. 게임방송 화면 갈무리.

2005년 SO1 스타리그 당시 임요환 선수와 박지호 선수의 맞대결. 게임방송 화면 갈무리.ⓒ OGN

 2005년 SO1 스타리그 당시 임요환 선수와 박지호 선수의 맞대결. 게임방송 화면 갈무리.

2005년 SO1 스타리그 당시 임요환 선수와 박지호 선수의 맞대결. 게임방송 화면 갈무리.ⓒ OGN

 
아직도 가끔 그 날이 생각납니다. 스타리그의 전성기로 흔히들 2005년 SO1 스타리그를 많이 꼽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POS 박지호 선수는 SO1 스타리그에서 처음으로 스타리그에 진출했습니다. 로얄로더(첫 진출에서 우승하는 선수)가 될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4강까지 파죽지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5전 3선승제인 4강에서 임요환 선수에게 1, 2경기를 승리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하거나 멘탈이 약한 선수라면 그대로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절벽에 몰려도 절대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고, 강철같은 멘탈로 경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박지호 선수는 3연패를 하며 2-3으로 4강에서 탈락했습니다. 경기를 보면서 얼마나 씁쓸한 마음을 느껴야 했는지 모릅니다.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박지호 선수의 병력을 보면서 참으로 암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임요환 선수가 참 싫었고, 황제라는 별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황제의 무게감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침착하게 리그를 이끌었던 임요환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임요환 선수가 출연했을 당시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임요환 선수가 출연했을 당시 한 장면.ⓒ JTBC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는 임요환 선수가 정말 황제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크래프트의 황제였고, e스포츠 초창기에 스타를 시작한 거물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스타 리그와 e스포츠 자체가 그에게 빚진 것이 많습니다. 다른 신예 게이머들보다 나이도 많은 큰 형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거창하게 불리던 그도 한 명의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1980년생이었으니, 지금 보면 어리디 어렸던 나이인 20대 초반에 과중한 책임을 맡았던 것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팀도 이끌어야 했고, 너무 악착같다고 욕 먹으면서도 새로 진입하는 더 어린 게이머들과 경쟁해야 했으며, e스포츠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처신도 똑바로 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제대로 해냈습니다. 그는 기업과 연계된 프로게임팀을 만들었고,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유니폼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청와대를 방문하며 스타크래프트와 e스포츠를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모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해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이상한 질문을 받을 때도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말 실수도 하지 않았고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스타크래프트1 최고령 결승 진출자의 기록도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임요환 자신, 자신의 팀인 SK텔레콤 T1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인 스타크래프트 방송, 나아가 e스포츠를 세우고 지켜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게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 역시 바꿨습니다. 깔끔한 이미지와 언행으로 사람들이 게임에 선입견을 가지는 것을 저지하고, 직업으로서의 게이머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 자체를 세우고 지킨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게임 실력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e스포츠는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대한민국은 스타크래프트2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e스포츠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을지도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진정 e스포츠의 황제였습니다. 저는 제가 싫어했던 황제가 결국 제가 즐길 수 있던 모든 것을 만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알겠습니다. 내가 싫어했던 황제, 황제 임요환은 나를 미치게 만든 스타 그 자체였습니다. 황제와 함께해서 정말 즐거운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일 따름입니다. 나의 황제가 항상 황제로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 나를 미치게 만든 스타, 참여하러 가기 http://omn.kr/1gxsk
덧붙이는 글 당신을 미치게 만든 스타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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