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라켓이 산산조각났다. 게임이 자기 뜻대로 안 풀린다고 해서 크게 화난 것이다.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2세트에도 자기 서브 게임을 대부분 잃었다. 그 원인은 거듭된 더블 폴트(서브 실수)였다. 테니스의 기본부터 흔들렸으니 스트로크 싸움을 걸어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캐나다의 밀로스 라오니치(세계랭킹 17위)가 한국 시각으로 21일 낮 호주 멜버른 파크에 있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9 호주 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에서 4번 시드를 받은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를 1시간 59분만에 3-0(6-1, 6-1, 7-6)으로 이기고 8강에 올랐다.

계속되는 더블 폴트, 애꿎은 라켓 박살내고

지난 해 이 대회에서 한국의 유망주 정현을 만나서 풀 세트 접전 끝에 2-3(7-5, 6-7, 6-2, 3-6, 0-6)으로 패한 바 있는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1년 전 그 불편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라운드에서 정현을 3-1(6-2, 1-6, 6-2, 6-4)로 이긴 프랑스의 에르베르를, 3라운드에서 3-0(6-4, 6-4, 7-6)으로 이기고 올라온 밀로스 라오니치와 16강에서 만난 것이다. 

랭킹 차이가 약간 나기는 하지만 꾸준히 톱 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알렉산더 즈베레프의 승리를 예상할 수 있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관중석 곳곳에서 믿기 힘들다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상대적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노박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 믿었던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테니스의 기본인 서브에서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 상징적인 게임이 1세트 여섯 번째 게임이었다.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서브권을 쥐고 있었지만 더블 폴트를 두 개나 저지르며 라오니치에게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내준 것이다. 

상대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밀로스 라오니치는 여기서 네트 바로 앞 놀라운 크로스 발리 실력을 자랑하며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또 하나의 포핸드 크로스 발리를 건너편 코트에 뿌리며 5-1까지 달아났다.

밀로스 라오니치는 이어진 자기 서브 게임을 가볍게 러브 게임으로 끝내며 1세트를 34분만에 자기 것으로 가져왔다. 알렉산더 즈베레프의 경기력을 감안하면 2세트 흐름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믿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서브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알렉산더 즈베레프, 라켓 여덟 번 내려치고 내동댕이

이 경기는 2세트 다섯 번째 게임이 실질적인 갈림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서브가 크게 흔들린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연속되는 더블 폴트로 허무하게 그 게임을 내줘서 라오니치가 4-1까지 달아난 것이다. 

이에 벤치로 돌아와 앉은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갑자기 라켓을 바닥에 내려치며 부수기 시작했다. 라켓 헤드 한쪽 면만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돌려서 반대쪽도 거세게 내려친 것이다. 모두 여덟 번이나 하드 코트에 얻어맞은 라켓은 파편까지 튀어가며 산산조각났다. 그리고는 옆으로 휙 내던지고 말았다. 

테니스 선수들은 서브 준비 동작부터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보기 드물게 예민한 스포츠로 통한다. 관중들도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짧은 탄성을 지를 수 있지만 비교적 정숙한 관람 매너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민한 스포츠이기에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라켓을 향해 분풀이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일인데 이번 경우에는 라겟 헤드를 바닥에 내려치는 횟수도 많아서 더 놀랐다. 라오니치를 근접 촬영하고 있던 코트 안 카메라맨이 이 장면에 놀라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이처럼 서브 실수로 평정심을 잃은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2세트를 29분만에 1세트와 똑같은 게임 스코어로 내주고 말았다. 3세트에 접어들면서 그나마 평정심을 찾기는 했지만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제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밀로스 라오니치의 침착한 깎아치기 기술이 벅찰 정도였다.

3세트 들어서는 양 선수가 자기 서브 게임을 착실하게 지켜나가며 모처럼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열 번째 게임에서 모두 29회의 랠리를 주고받은 순간이 압권이었다. 그들은 결국 6-6 게임 스코어를 만들어 타이 브레이크로 3세트 주인을 가리게 됐다. 

라오니치의 서브로 시작한 타이 브레이크 초반은 알렉산더 즈베레프가 먼저 기세를 올렸다. 너무 늦었지만 평정심을 찾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손 백핸드 크로스로 네트를 살짝 넘겨 포인트를 먼저 따낸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이어진 자기 서브 기회에서 여섯 번째 서브 에이스를 꽂아넣으며 2-0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밀로스 라오니치도 이 타이 브레이크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8강을 고려해서라도 거기서 경기를 끝내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위력적인 서브를 바탕으로 넘어오는 3구 포핸드 크로스를 멋지게 꽂아넣으며 4-4로 따라붙은 밀로스 라오니치는 이어진 기회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코트 양 옆으로 많이 뛰게 만들어 포핸드 스트로크 싸움을 이겨냈다. 

이렇게 타이 브레이크 포인트를 5-4로 뒤집은 밀로스 라오니치는 침착한 스트로크 싸움을 걸어 알렉산더 즈베레프의 실수를 유도하며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라오니치의 매치 포인트는 네트 앞 포핸드 크로스 발리샷이었다.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경기 소요 시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119분짜리 간결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8강에 오른 밀로스 라오니치는 보르나 코리치(크로아티아, 12위) vs 뤼카 푸유(프랑스, 30위) 승자를 기다리게 됐다.

2019 호주 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 결과(21일, 로드 레이버 아레나-멜버른 파크)

★ 밀로스 라오니치 3-0(6-1, 6-1, 7-6{7TB5}) 알렉산더 즈베레프

◇ 주요 기록 비교
서브 에이스 : 밀로스 라오니치 15개, 알렉산더 즈베레프 6개
더블 폴트 : 밀로스 라오니치 1개, 알렉산더 즈베레프 10개
첫 서브 성공률 : 밀로스 라오니치 69%(54/78), 알렉산더 즈베레프 62%(56/90)
첫 서브 성공시 득점률 : 밀로스 라오니치 80%(43/54), 알렉산더 즈베레프 68%(38/56)
세컨드 서브 성공시 득점률 : 밀로스 라오니치 54%(13/24), 알렉산더 즈베레프 35%(12/34)
브레이크 포인트 성공률 : 밀로스 라오니치 30%(6/20), 알렉산더 즈베레프 100%(1/1)
네트 포인트 성공률 : 밀로스 라오니치 69%(33/48), 알렉산더 즈베레프 36%(4/11)
리시빙 포인트 성공률 : 밀로스 라오니치 33%(30/90), 알렉산더 즈베레프 27%(21/78)
위너 : 밀로스 라오니치 45개, 알렉산더 즈베레프 21개
리턴 위너 : 밀로스 라오니치 2개, 알렉산더 즈베레프 1개
언포스드 에러 : 밀로스 라오니치 24개, 알렉산더 즈베레프 23개
리턴 언포스드 에러 : 밀로스 라오니치 1개, 알렉산더 즈베레프 1개
서브 최고 속도 : 밀로스 라오니치 223km/h, 알렉산더 즈베레프 218km/h
첫 서브 최고 속도 : 밀로스 라오니치 200km/h, 알렉산더 즈베레프 201km/h
세컨드 서브 최고 속도 : 밀로스 라오니치 165km/h, 알렉산더 즈베레프 160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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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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