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자의 내일> 포스터

영화 <엘리자의 내일> 포스터 ⓒ 영화사 진진

 
JTBC 금토 드라마 < SKY캐슬 >은 1회 1.7%(이하 닐슨코리아 유료가구플랫폼 기준)의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다. 하지만 무섭게 입소문을 타더니 19.9%까지 수직 상승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펼쳐지는 명문가 사모님들의 자식 교육 프로젝트를 풍자한 이 작품은 신선함과 공감을 동시에 잡는 데 성공하며 크게 호평을 받았다.

대한민국 상류층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교육열은 신선함을, 아이들이 공부로 인해 억압되고 고통 받는다는 점은 공감을 주었다. 특히 이 작품은 교육문제 뿐만 아니라 상류층들이 지닌 부패하고 저속한 내면까지 조명해, 대한민국 교육 문제의 뿌리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찾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은 교육이 가장 평등하며 교육이 유일한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정유라 입시 비리, 숙명여고 쌍둥이 성적 조작 등 최근 벌어진 사건들은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지나친 경쟁과 부모들의 이기심에 의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점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루마니아 개혁을 위해 싸운 인물, 아버지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딸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한 아버지가 예기치 못한 일을 겪으며 '부정'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대한민국과 루마니아의 역사에는 공통점이 많다. 두 나라 다 독재 정권의 시기를 겪었고 국민들의 힘으로 그 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독재를 무너뜨렸지만 여전히 세상이 공정하고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 역시 같다.

로메오(에드리언 티티에니)는 젊은 시절 루마니아 개혁을 위해 정부와 싸웠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여겼지만 루마니아는 달라진 게 없다. 의사로 일하는 그는 자신의 자식만은 이 나라를 떠나 선진국으로 가길 원한다. < SKY캐슬 > 속 부모들이 대한민국 최상위 명문대에 가는 것이 아니면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여기듯, 로메오는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가 루마니아에 남게 된다면 내일이라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 여긴다.
 
엘리자는 영국 대학에 장학생으로 가게 되었지만 조건으로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Bacalaureat)에서 고득점을 얻어야 한다. 시험을 앞둔 중요한 때, 엘리자는 학교에 가는 길에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고 이 일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로메오는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엘리자가 시험 때 추가 시간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다.

두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엘리자의 말에 로메오는 불공평하다 여긴다. 이 생각은 그의 마음에 하나의 불을 지른다. 규칙을 준수하면서 정당하게 사는 건 손해를 본다. 딸에게 그런 손해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 의사라는 직업이 의미하듯 사회상류층인 그는 인맥을 통해 엘리자의 성적을 조작하기로 결심한다.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아버지?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로메오는 딸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고 노력하는 아버지처럼 보인다. 그는 딸을 공격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서장 인맥을 동원한다. 엘리자를 영국으로 유학보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쌓아올린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선택을 한 것.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이루려는 제왕적인 아버지의 측면이 존재한다. 로메오는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지만 딸 엘리자 때문에 가정의 형태를 유지한다. 그는 엘리자에게 헌신하지만 정작 엘리자가 무얼 원하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자가 영국으로 유학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도 로메오는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다. 젊은 시절을 바쳐 루마니아를 바꿨지만 바뀐 루마니아에 실망한 그는 엘리자의 행복을 명목으로 원치 않는 유학을 강요한다. 이런 로메오의 심리는 그와 어머니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로메오의 어머니는 엘리자의 유학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모든 걸 바꿀 순 없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바꿔야 한다"며 "루마니아에서도 엘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메오는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부정을 저지르려는 로메오에게 "옳지 않은 일"이라며 말리려 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아내 마그다(리아 버그나)를 다그친다. "당신은 정직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한낱 도서관 사서나 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로메오는 그토록 염증을 느꼈던 루마니아의 부정 부패를 스스로 행하는 과오를 저지른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날아온 돌맹이가 로메오의 집 창문을 깨뜨린다. 작품의 중반, 역시나 날아온 돌멩이가 로메오의 차 유리를 깨뜨린다. 그리고 한 아이가 차례를 지키지 않는 아이에게 돌을 던진다. 로메오는 아이에게 말한다.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돌을 던져선 안 된다"고. 그러면 "질서와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어찌 해야 되냐"는 아이의 말에 로메오는 침묵한다.

아버지의 고집이 만들어 낸 끔찍한 결과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로메오의 시선에서 진행되지만, 원제는 바칼로레아(Bacalaureat)다. 그리고 이 시험을 치르는 이는 딸 엘리자다. 바칼로레아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서 적는 논술시험 방식이다. 어쩌면 이 작품의 내용은 엘리자의 바칼로레아 답안지라 볼 수도 있다. 그녀가 왜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 싫은지, 왜 루마니아에 남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유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 루마니아에서의 내일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영국에서의 내일은 없다.
 
아버지는 루마니아의 오늘에 실망했기에 자식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주고자 욕심을 부리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토록 혐오했던 부패와 부정에 가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자식에게 행복한 미래를 주고자 한 로메오의 행동은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를 준다. 영화는 어른이 지닌 고집 때문에, 내일만을 바라보며 오늘을 잃어버린 엘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만약 로메오가 자신이 아닌 가족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존중했다면, 가족의 행복한 내일을 함께 그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1991년, 독재정권의 붕괴 후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루마니아는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공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국가의 모습은 어른들에게는 힘겨운 오늘을, 아이들에게는 불투명한 내일을 선사한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교육신화의 붕괴는 불공정한 경쟁과 입시비리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어른들이 만든 사회의 비리와 부패가 아이들의 영역인 교육까지 스며든 것이다. 사회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면 과도한 학업과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공정하고 정당한 미래는 찾아오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엘리자의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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