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 포스터

영화 <그린 북>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영화 제목인 <그린북>은 인종차별이 있는 지역에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자를 칭하는 단어입니다. 1936년부터 1966년까지 흑인 운전수나 여행객에게 널리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인종차별이라는 무겁고 복잡한 주제를 이 영화 만큼 현명하게 풀어낼 수 있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린북>은 정말 '잘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설득하지 않는다, 그러나 넘어온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 CGV 아트하우스


<그린북>을 매력적인 영화로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정함'입니다. 다수의 영화들이 감동적인 영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용하는 방법이 '과잉표현'인 것 같습니다. 과장된 악당, 과장된 분노, 과장된 웃음, 감동, 눈물은 분명 다수 관객의 마음을 끄는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스토리 전개의 자연스러움을 훼손하며 자칫 거부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반면 <그린북>은 덜어낼 수 있는 만큼 덜어내 담백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표현 방법, 분위기가 과하지 않고 적정하다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억지스럽게 설득하려 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과장함으로써, 자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나쁘게, 멋지게, 대단하게 표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물들의 상황과 대화 속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살살 새겨 놓습니다.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는 자신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서로에게 설명합니다. '백인은 어떻다', '흑인은 어떻다'라는 인식의 규정이 어느 때보다 심했던 때를 1960년대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이들은 "모든 흑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다. 모든 백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다르다"고 외칩니다. 뭐가 맞고 틀리다를 이야기하는 대신, 편견과 고정관념이 아닌 진짜 '나'를 봐 달라는 두 주인공의 욕구를 보여주며 그 속에 '차별과 편견'이라는 딱딱한 소재를 녹여냈습니다. 인종차별을 주제로 내세워 이야기하지 않고 이들의 대화와 여정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인종차별 문제가 따라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 CGV 아트하우스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의 인물과 상황 설정입니다. 돈 셜리 박사에게 고용된 토니 발레롱가는 백인이지만 '밑바닥' 삶을 사는 인물이며, 토니를 고용한 돈은 흑인이지만 당시 대부분의 흑인들과는 다르게 부유층의 삶을 사는 인물입니다. 역할이 바뀐 듯해 보이는 두 사람이 운전석과 뒷좌석에 앉아 약 세 달을 함께 하는 설정은, 이들의 대화만으로 멋진 인문학 수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백인임에도 주류 백인이 아닌 토니, 이성애자-흑인-백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돈. 이러한 두 사람의 사소한 편견과 사고방식, 행동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시사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가 섬세하다고 느낀 이유입니다.

우리를 보여준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 CGV 아트하우스


<그린북>은 가상의 악을 통해 혹은 실존하는 악인을 통해 차별과 편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화 속 대부분의 차별, 편견, 혐오가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은밀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더 강하게 정곡을 찌릅니다.

토니는 친구들과 사소한 대화에서 인종 차별류의 농담을 즐깁니다. 영화 초반, 흑인 노동자가 입을 댄 컵을 휴지통에 버리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토니는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싫어하고 미워해서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차별이고 혐오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신', '호모' 등의 욕을 하며 동시에 그 표현이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듯 말입니다.

그래서 토니는 영화 속 특정 누군가가 아닌 현실의 우리들을 비춰 줍니다. 소수자에 딱히 악감정은 없지만, 편협한 사고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바라보지 않는 우리. 소수 집단일수록 그 속의 한 '개인'의 행동이 전부를 대표하도록 허락하는 우리. '가장 일반 적인 우리' 말입니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 CGV 아트하우스


일상에서의 혐오와 차별은 여느 영화에서 등장하는 끔찍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드러난 행위'가 아닌 노골적이지 않은 은밀한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런 은밀한 차별과 편견이 고착화되면, 개인의 사소한 일상과 선호를 넘어 소수자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영화 속 마지막 연주회장에서 돈 셜리 박사를 깍듯하게 모시고 진심으로 환영하던 안내원이 그를 자신들의 화장실에, 자신들의 식사 자리에까지는 모실 수 없었듯 말입니다.

개인으로는 셜리에게 어떠한 악감정도 없었을 수도, 한 곳에서 밥을 먹지 않는 것이 셜리를 면박주기 위한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밀한 편견은 돈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흑인을 차별하진 않지만 셜리를 존중하고 위대하다 여기면서도, '흑인과 화장실을 함께 쓸 수 없고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죠.

이번 국회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그린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으로 인해 특정 종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흑인이 아닌 돈 셜리 자체를, 백인이 아닌 토니 발레롱가 그 자체를 바라봐 주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 CGV 아트하우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네요. 그래서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설득하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은 강력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토니는 미국 남부를 돌며 눈에 띄는 인종차별을 목격하고 흑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마주했습니다.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굳게 믿지만 실은 편견으로 흑인을 대하는 토니, 셜리의 능력과 지위를 칭송하면서도 그의 '흑인성'을 은근하게 규정짓는 사람들. 관객들은 이를 보며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 편견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과하지 않은 위트, 유머로 즐겁고 유쾌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전개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서사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 지금의 우리를 섬세하게 보여주며 어느덧 영화에 설득당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 '편견', 다시 '이해'가 밀고 당기듯 영화의 강약을 조절하여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또한 너무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정한 영화의 온도는 <그린북>을 '잘 만든 영화'인 동시에 '재미있는' 영화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작품성, 재미 모두 잡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린북>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벼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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