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밖으로 나온 인간 진선규는 아무런 꾸밈이 없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내가 진선규 배우를 만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 속 어떤 이미지와도 겹치지 않았다.

그에게서 <범죄도시> 위성락의 화가 넘치는 모습은 단 1%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극한직업> 속 마형사의 허무맹랑한 자신감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곤조곤 다소곳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색다른 그의 모습을 보니 '좋은 배우는 역할이라는 옷을 입고 연기한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 CJ엔터테인먼트

 
23일 개봉 예정인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에 놓인 마약반 형사 5인방이 범죄 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기서 배우 진선규는 형사 5인방 중에서 마약반 트러블메이커 마형사 역을 맡았다. 이제는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 중 한 명의 역할을 당당히 해냈다. 

좋은 배우로서 인정받다
 
배우 진선규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위성락을 연기하면서 제38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로 인해 출연료도 눈에 띄게 올랐다. 가장 달라진 것은 거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는 "물질적으로 1년 전보다는 개런티(출연료)가 올랐다"면서 "연극을 후배들 가끔 만나서 밥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이라면서 수줍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로또가 된 것 같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라운드 인터뷰도 처음 해봤다. 한 명의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하는 것도 좋았는데 라운드 인터뷰를 한다니까 이 또한 너무 좋았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가끔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으시다. 요즘 그런 분들과 사진을 자주 같이 찍는다. 길을 걷다가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인사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는 과거에는 주로 북한군, 고문관, 회사원 등의 단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재작년 <범죄도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첫 번째 작품인 영화 <극한직업>은 그의 능력이 잘 드러났던 무거운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비교적 분위기가 가벼운 코미디 장르이다.

이어 그는 "불안감은 없다"면서 "<범죄도시> 위성락 캐릭터는 내 인생을 바꿔줬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슷한 악역이 들어오면 왠지 <범죄도시>의 위성락과 비교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면서 "과연 내가 또 그렇게 잘 연기해 낼 수 있을까"라며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또 그는 "그 와중에 <극한직업> 시나리오가 왔는데 이병헌 감독이라서 좋았다"고 말했다.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 CJ엔터테인먼트

 
"예전에 이병헌 감독과 술자리를 한번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팬심이 생겼다. 감독님 작품에 나중에 오디션 보고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상을 받고 난 이후 첫 시나리오가 이 감독님 작품이었다. 그날 바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되려 '이거 저 시켜줄 수 있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감독님께 '꿈만 같다'고 말했다. 술자리를 가졌을 때 이후로 불과 2년 반 만에 이 감독님과 작품을 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범죄도시> 이후의 코미디 장르 도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좋은 기회가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실패의 두려움은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맡은 배역의 캐릭터를 공부하여 이를 잘 소화해낼 생각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잠재된 여러 가지 모습들을 꺼내 볼 수 있는 장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실패가 두렵기보단 즐겁고 행복하다."


누아르 액션에 대한 열망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체육 교사였다. 배우 진선규는 학창시절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태권도, 절권도, 카포에라, 기계체조 등을 배웠다. 군더더기 없는 체격에 그는 아직도 가끔 복싱 체육관을 드나든다. 누아르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그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절권도 연습하는 장면들을 다 따라 했다"며 액션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특히 홍콩 누아르 장르를 좋아했다"면서 "향후 액션 영화를 찍을 때 마흔이 넘어간 티를 안 내기 위해 다음 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복싱 트레이닝을 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 CJ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에서 액션 장면이 제일 어려웠다. 밤을 계속 샜다. 저뿐만 아니라 다들 힘들어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어가니까 많이 아프더라. 액션의 연속이었다. 유도 기술의 경우 들어서 내리꽂는 액션이 있었는데 내가 힘들었으면 내리꽂힌 사람은 오죽했을까. 액션 관전 포인트 중 마지막 장면에 배우 이동휘가 애드리브로 소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엄청 재밌었다. 덕분에 액션을 잘 살린 것 같다."

"배우 이하늬와의 키스씬, 그건 격정적인 액션씬이었다. 대본에는 방식에 대해서 정해진 것은 없었다. '정적이 흐르고 키스한다' 약간 그런 느낌이었지만 실제 결과는 액션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배우 이하늬는 때릴 때 특별한 스냅으로 소리는 크게 나는데 실제로 아프진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 어디를 가나 인사를 잘하고 겸손하게 고개를 잘 숙여야 한다고 배워왔다고 했다. 잘한 일에 대해서도 자랑하지 말고 살라는 말을 귀에 닳도록 들어왔기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장점에 대해 묻자 한동안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들이 겸손과 인사성과 같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한평생 겸손과 인사성을 중요시하면서 한평생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인간 진선규의 근황

그는 여행에 굶주려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섣불리 어딘가로 떠나지 못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가도 이전 여행에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예스, 예스'를 외치다가 덤터기를 썼던 기억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또 최근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구매해서 기능에 대해 열심히 탐구 중이다. 어떤 앱을 깔아야 하고 어떻게 써야 아이폰으로 강점을 살려 잘 쓸 수 있는가에 대해 하나하나 탐구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배우로서, 행복을 찾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최근 그는 다도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난 이후 단체로 코엑스 차 문화 대전에 갔다가 다도에 필요한 도구들도 집에 들였다고 한다. 영화 촬영이 들어가기 전 그는 다도에 대한 관심이 없었지만 배우 류승룡이 <극한직업> 촬영이 쉬는 타임이면 다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바람에 그 역시 자연스럽게 다도에 관심이 갔다.

영화 속 그의 연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배우 진선규와 다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천히 나긋나긋한 말투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영화 밖의 인간 진선규는 다도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템플스테이에서 스님이 차 한 잔 내릴 때의 느낌으로 다도를 한다. 홍차를 자주 마셨다. 홍차에는 각성 성분이 있어 덕분에 피로가 사라졌다. 그렇게 다 같이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가 생겼다. 날씨가 추운 날엔 형님(류승룡)이 고뿔차를 구해와 한 잔씩 돌리곤 했다. 고뿔차는 감기 예방에 좋은 차다. 매일 가지 각색의 좋은 차들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주 다도의 시간을 가져서인지 술을 마시거나 회식을 하지 않았다."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극한직업> 마형사 역의 배우 진선규 ⓒ CJ엔터테인먼트

 
진선규 조선족 범죄도시 마형사 위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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