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포스터.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포스터.ⓒ tvN

 
tvN 월화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흥미진진한 사극이다. 배우 여진구가 똑같은 분장으로 1인 2역 하는 모습이 관심을 꽤 집중시킨다. 분장을 달리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옷으로 진짜 임금과 가짜 임금을 동시에 연기하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도,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에 흥미를 품게 된다.
 
이 드라마는 또 다른 이유에서도 흥미진진하다. 여타 사극에 비해, 조선시대의 시대 배경이나 분위기로부터 일탈한 장면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당시 사람들의 문화나 생활상으로부터 '너무도 자유로운'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 네 가지만 설명한다.
 
1. 너무 늦게 일어나는 조선시대 사람들
 
드라마 속의 진짜 왕은 궁 밖에서 휴가를 보내고 가짜 왕이 대역을 하고 있다. 가짜 왕이 광대 출신이다 보니, 도승지와 내시가 '대역 훈련'을 시킬 일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8일 방영된 제2회에서는 도승지 이규(김상경 분)가 가짜 왕 하선(여진구 분)에게 진짜 왕의 일상을 흉내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다 나온 말이 "전하의 하루는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한다"였다. 왕의 하루가 꽤 일찍부터 시작한다는 말로, 늦잠 자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늦잠 자는 하선(여진구 분).

늦잠 자는 하선(여진구 분).ⓒ tvN


요즘에는 '저녁형 인간'이 많고, 아침 6시 이후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시대 시각에서 보면, 도승지 이규의 말이 꽤 대단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규의 말은 조선시대 사람들한테는 너무도 당연해서 굳이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게 습관이 돼 있었다. 관료들도 새벽에 출근했다. 음력으로 정조 21년 5월 5일(양력 1797년 5월 30일)에 정조 임금(당시 45세)이 '정적 같은 신하' 심환지(67세)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런 풍경이 묻어 있다. 심환지는 정조가 죽자마자 정조의 개혁을 원위치시킨 사람이다. 생전에 정조는 그를 자기편으로 만들 목적으로 편지를 자주 보냈다. 위 날짜 편지에서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

"늘그막의 근력으로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내일 비변사(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 때는 병을 핑계 대고 내일모레 강연을 열 테니, 곧바로 주자소에 출근하는 게 어떻겠소?"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기 어려울 테니"라고 했다. 이 시대의 출근 시각을 알려주는 말이다. 관료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해 뜬 뒤에 일어나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해가 중천에 뜬 뒤에 기상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시대에 "전하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에 시작한다"는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이규(김상경 분) 포스터.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이규(김상경 분) 포스터.ⓒ tvN

 
2. 임금의 권위를 깔고 앉는 충신
 
배우 김상경이 연기하는 드라마 속 이규는 매우 충직한 신하다. 그런 신하이기 때문에, 진짜 왕이 대역에 대한 문제를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이규가 편전(임금 집무실)에서 임금 자리에 앉은 채 하선을 가르치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단둘도 아니고 조 내관(장광 분)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는 화가 나서 하선을 넘어트릴 목적으로, 이단 옆차기를 하며 어좌를 향해 날아가기도 한다.

이것은 오늘날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욱더 있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임금을 신처럼 떠받들고, 임금이 없는 데서도 한양을 향해 절을 올리는 시대에, 그것도 임금의 최측근 신하가 어좌를 깔고 앉는 것은 지금은 물론이고 그 시대 관점으로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하가 어좌를 깔고 앉는 것은 군주의 권위를 깔아뭉개는 것이었다. 역심을 품지 않고서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임금이 없을 때 몰래 앉아보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드라마 속 이규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충직한 인상의 인물이다.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 속 장면은 너무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의 어좌.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의 어좌.ⓒ 김종성

 
3. '금상'을 아무 때나 운운하는 궁궐 사람들
 
조선 군주의 공식 칭호는 주상(主上)이었다. 주상 비서실 업무일지인 <승정원일기>의 고종 31년 12월 17일자(1895년 1월 12일자) 일기에 따르면, 이날 조선 정부는 '주상'을 '대군주'로, '전하'를 '폐하'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과의 외교관계에서는 조선 주상이 황제 폐하로 불리는 일도 있었지만, 조선 내부의 법률에 따르면 1895년까지는 주상 전하가 공식 표현이었다. 1895년이면 조선이 망하기 15년 전이다. 그러니까 조선왕조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주상이 군주의 공식 칭호였던 셈이다. "주상 전하 납시오"라는 말이 우리 귀에 익숙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금상 전하'란 표현이 사용된다. 금상(今上)은 '현직 주상' 혹은 '현 주상'이란 의미다. 전직 주상과 대비시켜야 할 일이 있을 때에 이 표현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현직 주상만 있는 자리에서 "금상 전하 납시오" 같은 말은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도 14일 방영된 제3회에서는 금상 전하라는 말이 아무 때나 아무렇지도 않게 쓰였다.
 
금상은 지금으로 치면 '현직 대통령' 혹은 '현 대통령'이다. 만약 언론 기사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문재인 현 대통령'이란 표현이 나오고, 대통령이 행사장에 입장할 때 "현 대통령께서 나오십니다"라는 말이 나온다면, 얼마나 이상할까? 드라마 속의 '금상 전하' 표현도 그처럼 상황에 맞지 않게 쓰이고 있다.
 
4. "나 죽이시오" 하고 광고하는 궁녀들
 
제2회 때 나온 장면이다. 왕비가 지켜보는 데서, 궁녀들이 작은 다리 위에 서서 물속으로 돌을 던지는 장면이다.
 
이 광경이 궁금해진 하선이 "저거 뭐하는 거냐"고 조 내관에게 물었다. 조 내관의 설명에 따르면, 궁녀들이 소원을 비는 장면이었다. 예전에 '임금의 아이를 갖게 해달라'며 그곳에 돌을 던지면서 기도하던 궁녀가 실제로 임금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 궁녀들이 그곳에 가서 돌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는 것이다.
 
궁녀들은 제각각 자기 나름의 소원을 빌겠지만, 그런 사연이 있는 데서 돌을 던지면 임금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다른 소원을 빈다고 해도, 외형상으로는 그렇게 해석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더군다나 왕비가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그곳에 돌을 던지기 힘들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속 궁녀들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고종시대 궁녀들의 증언을 수록한 역사학자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도 잘 드러난다. 이 책에 따르면, 고종이 특정 궁녀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징후가 보이면 그 궁녀가 다음 날 사라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명성황후(민비)나 엄 귀인이 측근 궁녀들을 동원해 고종의 시선과 언행을 항상 관찰했던 것이다. 임금이 특정 궁녀에게 너무 오랫동안 시선을 보내는 것은 그래서 위험했다.
 
그런 일은 다른 시대에도 많았다. 그래서 궁녀가 왕의 관심을 받거나, 궁녀가 왕에게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힘없는 궁녀들한테, 그것은 죽음으로 직행하는 길이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드라마 속 궁녀들이 임금에 대한 관심의 표시로 해석될 수도 있는 돌 던지기를 왕비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장면은 궁궐 생활의 실상과 너무도 동떨어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행동은 "제발 저 좀 죽여주세요!" 하고 왕비에게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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