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룡.

배우 류승룡이 7년여만에 코미디 장르를 들고 왔다. <극한직업>에서 그는 좀비라는 별명을 지닌 형사 고 반장 역을 맡았다. ⓒ CJ 엔터테인먼트


장르로만 치면 만 7년 만의 코미디다. 오는 23일 개봉해 설 연휴를 노리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배우 류승룡은 형사 고 반장을 맡아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졌다. 타격감 넘치는 액션 때문이 아니다. 닭을 튀기며 때론 잠복수사를 하며 상황과 사건에 오롯이 녹아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약반 리더로 좀비 형사라는 무서운 별명이 있지만, 그가 맡은 고 반장 캐릭터는 동기들보다 승진도 늦고, 조직 내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무시당하기 일쑤다. 고 반장 곁엔 각기 개성과 재능이 다른 네 명의 형사가 있다. 영화는 이 다섯 인물에 역할을 고르게 배분해 이들의 좌충우돌기를 코믹하게 묘사했다.

분명했던 출연 이유

전작 <7년의 밤> 당시 그는 "내 40대를 응축한 느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빗대면 이제 지천명인 그에게 <극한직업>은 새로운 전환 내지는 반환점일 수 있었다. "작년 개의 해(류승룡은 1970년 개띠다)에 찍었고, 이하늬(극중 장 형사 역)씨가 돼지띠인데 올해 황금돼지의 해인 만큼 잘 여는 느낌"이라며 류승룡은 답했다.

"일단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고 이병헌 감독님을 만났다. '웃기고 싶었어요' 그 한마디를 하더라. 너무 명확했다. 이 시나리오를 통해 웃음을 주고 싶다길래 나 역시 공감했다. 감독님의 전작이 점 마니아 요소가 강하지 않았나. <극한직업>은 보다 보편적이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였다."

고 반장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다. 경찰 조직에선 어쩌면 낙오자일 수 있지만 적어도 팀원들은 그를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가정에도 충실한 인물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캐릭터. 이 역시 류승룡이 적절하게 표현해냈다. 캐릭터 해석을 전하며 류승룡은 함께 고생한 동료 배우들에 대한 속마음을 더했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조직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형사로서 그 험한 일을 오래 했고, 포기하지 않고 있는 데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형사로서 꿈이나 정의감이 있었을 테고, 팀의 수장이다 보니 팀원들에게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고. 그 진심이 오랜 세월 누적됐다고 생각했다. 고 반장 앞에서 대놓고 농담하고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팀 분위기가 좋다는 증거지. 

공교롭게 제가 가장 먼저 캐스팅됐고, 이후 배우들이 한 사람씩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정말 예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그런 느낌이었다. 그 만화 있잖나. 땅, 불, 바람, 물 나오는... 제목이 <캡틴 플래닛>(웃음). 하여튼 그렇게 능력자들이 합체하는 느낌이랄까. 천군만마를 얻듯, 마지막 공명씨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단 셈이다." 


류승룡은 자신을 비롯해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 등 형사 5인방 모두 전환점이 필요했던 시기였다고 전했다. 촬영 당시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그는 "여러모로 시기와 상황이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진선규씨는 <범죄도시>의 악역 이미지가 오래 남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고, 반대로 동휘씨는 코미디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하늬씨는 여성스럽고 예쁜데 일종의 변신의 시기라 생각한 것 같다. 공명씨는 저예산 영화를 해오면서 상업영화에도 자연스러워지는 시기였고. 저 역시 50대의 포문을 열면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영화 한 편을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같이 하는데 우리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잖나.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마치 협동조합처럼(웃음) 서로 욕심과 열정을 발휘해 좋은 결과물을 냈다. 신하균, 오정세씨도 특별출연해서 잘 해주셨고. 송영규, 장진희, 양현민, 허준석씨, 신신애 선배 등 모두 제 몫을 다해주셨다." 

 
 배우 류승룡.

"영화 한 편을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같이 하는데 우리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잖나.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코미디 철학, 그리고 비워내기

시간이 많았다면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 이름을 다 읊을 기세였다. 그만큼 류승룡은 <극한직업>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처음 작업한 이병헌 감독에 대해 말하다 문득 그는 장진 감독을 언급했다. 상황 코미디, 무표정한 익살 연기라는 특기를 갖게 해준 장본인이라면서 그는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다양한 장르를 했는데 정말 코미디가 오랜만이긴 하다. <난타>라는 공연을 5년 했었잖나. 대사 없이 웃기는 공연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했다. 그리고 장진 감독님 쫓아다니면서 연극 <웰컴 투 동막골> <서툰 사람들> 등을 했지. 지난해가 <난타> 20주년이었다. 그때가 고달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 추억, 코미디 연기 등이 저도 모르게 각인된 것 같다. <극한직업>도 사실 제가 전에 많이 했던 형사, 조폭 코미디 요소가 다 담겨 있다. 싫어하는 재료들을 모아놨는데 새롭더라. 역시 요리사에 따라 다를 수 있구나 깜짝 놀랐다."

인터뷰 중 류승룡은 유독 '비워내기'에 대해 강조했다. 나이의 변화도 있겠지만 지난해 가족과 혹은 홀로 여행을 다니며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한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큰아들과는 코카서스 3국을, 작은아들과는 캄차카반도를 다녀왔다고 한다. "특별히 생각을 정리하려 한 건 아니었다"면서도 그는 지금껏 품고 있던 고민의 결과물을 밝혔다.

"연기라는 게 함께 하는 것이면서 혼자 감당할 몫도 있잖나. 또 누군가의 인생이 총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제가 많이 비워내야 잘 담을 수 있더라. 끊임없이 배우고 겸손해지자 생각했다. 그런 걸 점점 깨닫고 있다. 여행은 아들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아빠가 알려줘야 할 이야기들도 있었고. 여행이 주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갑자기 여행잡지 인터뷰 같네? (웃음)
 
연기를 안 하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하면서 행복했고, 지금도 그렇다. 힘듦은 누구나 있잖나. 당연히 겪는 힘든 일은 말고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하면서 가족에게도 행복감을 주고 스스로도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게 감사한 것 같다. 일상이 정말 소중하더라. 무료하게 느껴지다가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허둥대고 그러잖나. 일상의 거룩함이라는 게 있다."

 
 배우 류승룡.

"연기라는 게 함께 하는 것이면서 혼자 감당할 몫도 있잖나. 또 누군가의 인생이 총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제가 많이 비워내야 잘 담을 수 있더라." ⓒ CJ 엔터테인먼트


일희일비하지 않기. 지난 몇 작품의 흥행실패를 그에게 물으면서 나온 화두였다. "다양한 소재, 색다른 걸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기에 작품마다 치열하게 했다"면서 그는 "그렇다 해도 기대와 바람대로 잘 안 됐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겸허하게 인정하고 반성할 건 하는 게 맞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전 계속 참신한 걸 찾는 것 같다. 아마 모든 영화인들이 그렇지 않을까. <극한직업>에도 제가 많이 해왔던 조폭물, 형사물이 들어가 있지만 참신하게 나왔더라. 물론 변신에 대한 강박은 전혀 없다. 여전히 뛰어난 기획자와 제작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믿고 가면 되지. 전 작업하면서 치열하지만,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싶고, 결국 좋은 배우로 관객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천만 관객 영화에 출연했다고들 하는데 마냥 수치화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담담하게 해야 할 이야기들을 하겠다. 어떤 땐 거대한 세계관을, 어떤 땐 작은 문제 혹은 사회적 문제들을 말이다. 그걸 잘 표현하려면 역시 공부해야지. 여행도 하고, 많은 경험도 하려고 한다."
류승룡 극한직업 이하늬 진선규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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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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