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봤을 땐 매우 조심스러운 등장이었다. 영하 21도까지 기온이 곤두박질친 한반도의 정중앙 강원도 양구, 새벽 4시 50분에 나타난 한 남자. 그는 조용히 자신의 짐을 챙겨 산골의 조용한 주택으로 향했다. 양구는 시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멤버들이 묵게 될 숙소 앞마당에는 정성스레 수확한 시래기들이 혹독한 양구의 겨울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고 더욱 맛있는 담금질을 기다리며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 그것도 야심한 시각에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히 잠들어있는 주변의 생명체들을 깨울까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 그는 과거 MBC 청춘 시트콤 <논스톱> <거침없이 하이킥>를 통해 '짠돌이' 캐릭터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탤런트 최민용이었다.
 
 SBS <불타는 청춘>의 한 장면

SBS <불타는 청춘>의 한 장면 ⓒ SBS

 
15일 방영된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아래 <불청>)에서는 한동안 TV에서 종적을 감췄던 최민용이 <불청> 멤버로 합류해, 그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신고식을 치르는 모습이 나왔다. 다른 이도 아닌 '근황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여러 가지로 궁금증을 유발하던 그였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더구나 만년 청년으로 각인돼 있던 그가 어느덧 중년이 되어 대중들 앞에 선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었다.

그러나 앞서 한 번도 <불청>에 얼굴을 비친 적 없었던 그의 행동은 왠지 모든 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미리 챙겨온 도끼와 전문가용 토치를 이용해 장작을 패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2년 동안 자연인으로 살아왔다는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장작 타는 냄새를 유독 좋아했고, 개인 도끼와 토치를 소유할 정도로 그는 어느새 자연 친화적인 인물이 돼 있었다.

단 한 차례의 도끼질로 굵은 통나무들이 반쪽으로 쪼개지며 바닥을 나뒹군다. 방송에서는 이러한 그를 향해 '장비 부심'이라는 자막을 연신 내보내며 오직 장비 덕분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그의 몸놀림 자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날렵했다. 단 한 차례의 휘두름만으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두툼한 통나무를 정확히 두 조각 낸다는 건 경험상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몸동작은 웬만큼 단련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다. 그의 2년 동안의 산속 생활이 더욱 궁금해지는 상황이다. 혹시 도라도 닦은 걸까?

기존 <불청> 멤버들은 불을 지필 때마다 꽤나 곤욕을 겪었는데, 최민용은 챙겨온 장비로 단번에 불을 지피며 놀라운 포스를 뽐냈다. 그 덕분에 냉동고를 방불케 하던 집은 어느덧 연기가 피어오르며 훈훈하게 온기가 감돌았다. 말리던 시래기들 중 일부를 걷어낸 뒤 마당 한쪽에 위치한 대형 가마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연기와 쏟아질 듯 하늘을 수놓은 새벽 별빛은 이곳이 산골임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짐짓 여유를 부리는 듯한 최민용은 자신보다 선배인 <불청> 멤버들을 위해 온갖 약재들을 아낌없이 넣은 한방차도 준비했다. 이윽고 김도균을 비롯한 기존의 불청들이 하나둘 도착하자 그들을 일일이 맞이하기 시작하는 최민용, 흡사 집주인이 손님들을 맞이하는 분위기다. 여유로웠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능청스러움은 여전했던 걸로 보인다. 처음 대면하는 불청들과의 대화에서도 특기가 발휘되는 등 아직 녹슬지 않은 느낌이다. 그는 <불청> 멤버가 도착할 때마다 자신이 정성껏 만들어 달인 한방차 한 잔씩을 내놓았다. 역대급 신입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SBS <불타는 청춘>의 한 장면

SBS <불타는 청춘>의 한 장면 ⓒ SBS

 
<불청> 멤버 김도균, 김광규, 김부용, 송은이, 박선영, 이연수, 최성국, 권민종, 구본승 이들은 함께해온 시간만큼이나 강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다. 양말을 가져와 나눠 신기도 하고,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멤버를 위해 또 다른 멤버가 내복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한 끼 식사를 나누기 위해 기꺼이 밑반찬을 일일이 챙겨오거나 귀한 먹거리도 아낌없이 다른 멤버를 위해 내놓는다.

정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무엇보다 따스하고 좋다. 이 때문인지 멤버들로부터는 푸근함이나 끈끈함 같은 정서가 느껴진다. 어느덧 정이 들은 그들은 실제로 가족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멤버가 십시일반으로 도와 밥을 해먹는 모습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여러 장면들 중에서도 가장 흐뭇하다.

최민용의 나이는 올해로 43세다.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나이가 42세를 넘어섰으니 어떻게 보면 최민용의 나이는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출연한 시트콤 <논스톱2>가 2002년도에 방영을 시작했을 당시 그의 나이가 26세였다는 걸 감안하면, 그동안 지나온 세월의 길이는 결코 짧지 않다. 20대 꽃청춘이 어느덧 40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렇듯 간만에 얼굴을 비추는 연예인들을 통해 잊고 있던 세월의 실체를 경험하곤 한다. 그리곤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하며 슬쩍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SBS <불타는 청춘>의 한 장면

SBS <불타는 청춘>의 한 장면 ⓒ SBS


장작을 태울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수한 연기 냄새는 비단 최민용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요소다. 타닥타닥 거리는 장작 타는 소리는 또 어떤가. 우리의 청각세포를 기분 좋게 자극해온다.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연기는 안구를 정화시킨다. 공감각적 감각을 깨우는 불청의 산골 숙식 체험은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게 마련이다.

장작을 때면서 발생한 열에너지는 별도로 만들어진 산골 찜질방을 후끈하게 덥히는데 쓰인다. <불청> 멤버들, 하나같이 이곳 찜질방의 존재를 가장 반가워 하는 눈치이다. 누가 중년들 아니랄까봐 말이다. 최민용의 드러나지 않은 수고로움은 이렇듯 <불청> 멤버들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비춘 최민용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범상치가 않다. 일단 날이 잘 선 핀란드산 도끼의 소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2년 동안 산에서 지내는 동안 이 도끼와 토치는 생존을 위해 절실히 필요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다. 한방차를 끓이는 솜씨 그리고 약재를 다루는 기술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 스스로는 경동시장에서 주워들은 결과물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최민용은 한동안 방송 출연과는 담을 쌓아왔다. 이날 슬쩍 언급한 산속 2년 생활도 그렇거니와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지내온 것인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낚시하는 모습, 열쇠방에 있는 모습, 캠핑장에 있는 모습 등이 네티즌들에게 포착되어 인터넷에 공개된 바 있다. 그만큼 대중들로부터 관심이 집중된다는 의미다. 그러한 최민용의 <불청> 등장은 더없이 반갑다.

최민용의 본격적인 활약은 짐작컨대 다음 회차부터 확인 가능할 것 같다. 최민용의 입성과 동시에 마침내 막내로부터 탈출하게 된 김부용이 다음 편을 통해 막내 챙기기를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앞으로 궁금하던 그의 근황도 조금씩 풀어놓지 않을까 싶다. '근황의 아이콘' 최민용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SBS 불타는 청춘 최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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