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미> 포스터

영화 <말모미> 포스터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일제 시대는 여러모로 한국의 고난기였다. 그 시기에 일본은 최대한 한국인들을 억압하기 위해 언어를 통제하고 이름을 바꿔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창씨 개명을 했고, 일부는 자발적으로 자원했다. 그들이 어떤 수모를 겪고, 어떤 고민을 하고 그렇게 이름까지 일본 이름으로 바꾸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아무 힘없는 일반 민중들이 겪는 고통이 힘들었다는 건 알 수 있다. 특히 언어를 통제당한다는 건, 그 안에 담긴 한국의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했다.

영화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 중반 이후 한국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은 동료들과 함께 각 지방의 사투리를 모아 공청회를 열어 표준어를 정하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판수(유해진)가 합류하면서 조선어학회의 분위기는 바뀌어간다. 판수는 국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다. 중학생 아들과 어린 딸 이 있는 그는 아들 학비를 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서민을 대표한다.

일반 서민 판수와 지식인 정환의 관계를 통해 전달되는 그 당시 상황

영화 속 판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반 서민의 관점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저항의 물결 속으로 서서히 발을 담그는 캐릭터다. 물론 판수는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다. 그는 아들의 학비가 급해지자 소매치기 동료와 남의 지갑을 훔치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슬쩍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야만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그런 도덕적 흠결을 가진 판수를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건, 그가 주변 동료를 대할 때나 자식들을 대할 때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늘 무시당하지만 곤경에 처한 동료를 적극적으로 돕거나 어려운 일을 자처하는 건 늘 판수다. 그런 판수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수많은 일반 민중들이 가졌던 삶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하찮았지만 결코 무시당할 만큼 바닥은 아니었다.
 
 영화 <말모이> 장면

영화 <말모이>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정환은 중학교 이사장인 아버지 류완택(송영창)의 가르침을 받고 한글을 배웠다. 그는 한글을 살리면 나라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고,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반면 아버지 류완택은 창씨개명으로 일본에게 충성을 바친다. 류완택이 변심한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이었다. 그 당시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나 주요 인물들이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일부는 일본 쪽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들은 어쩌면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싸움에 지쳤던 것인지 모른다. 영화 속 류완택의 말처럼 더 이상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념하고 그 체제 안에서 살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아들 정환을 지켰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정환이 아버지에게 배운 한글에 담긴 그 정신은 그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된다. 영화 속 정환이 기차역에서 만난 아이와 인사를 할 때, 정환은 한국어를 쓰지만, 아이는 일본어를 쓴다. 아이는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 영화는 그 장면 속 아이의 무심한 표정에서 그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미 일본화된 교육 시스템은 한국어를 금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압박하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언어를 빼앗아 정신을 지배했던 일본

그 압박의 끝에는 어린아이들이 있다. 영화는 판수의 아들 덕진(조현도)을 그 한 예로 보여준다. 그는 중학교에서 수많은 걸 목격하고 경험한다. 한국어를 쓰면 더 강한 체벌이 내려오고, 강제로 창씨 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에 불이익을 줬다. 그렇게 부정적인 이미지와 한국어가 합쳐지면서 아이들은 더욱 일본에 익숙해진다. 그런 영향으로 영화 내내 덕진은 조선어학회에서 일하게 되는 판수를 원망한다. 그렇게 그 당시 한국어는 서민들의 영역에서 서서히 그 뿌리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일본은 그렇게 아이의 공포심을 이용해 그들의 정신이 담긴 언어를 조금씩 긁어내 한국을 제거시키는 중이었다.

정환의 가방을 훔친 인연으로 만나게 된 판수와 정환은 서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다. 판수는 아주 평범하게 자란 서민이다. 반면 정환은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화이트칼라다. 일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고 각자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식인과 일반 민중이 만나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지식인들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힘들다. 그 숫자가 더 많은 일반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지식인들이 추진하는 변화는 동력을 가지기 힘들다.
 
 영화 <말모미> 장면

영화 <말모미>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의미에서 판수와 정환이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서로 다른 리소스를 공유하고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은 중요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선 어느 한쪽만 나서기보다 조화롭게 연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언어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서로의 행동을 전파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 내내 흥미롭게 펼쳐진다.

영화가 가장 집중하는 건 서민 판수의 변화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공을 들인 건 판수가 변화하는 모습이다. 까막눈 판수가 우연히 조선어학회에서 일하게 되고, 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게 되는데, 그가 변화되는 모습은 배우 유해진이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글자를 알게 된 후 길을 걸으며 간판이나 낙서를 읽으며 신나하고,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가 글자로 인해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새로운 세상 속에서 그는 한국어가 가진 정신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비록 정환이나 다른 동료들이 글자를 알려주긴 했지만 그는 스스로 그 배움을 완성시켰다. 그런 판수의 모습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영화의 말미까지 마음을 따뜻하게 움직인다.

영화 속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집단지성을 과거식으로 표현한 방식이다. 전국의 사투리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다가 판수의 제안으로 경성에 사는 각지의 일반인들을 불러 모아 사투리를 수집해 나간다. 사투리 전문가들을 힘들게 찾아다녔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주 쉽고 오히려 실생활에 가까운 언어들을 수집하게 된다. 우리가 현대 온라인에서 특정 문제를 해결할 때, 많은 사람들의 지식을 이용하듯, 영화 <말모이>에서도 일반 서민들의 지식이 공론화 과정을 통해 모아지는 과정을 좋은 아이디어로 표현해 낸다.

영화 속에 훌륭하게 묘사된 조선어학회의 주요 캐릭터, 그리고 서민의 힘

그 당시 조선어학회의 모습을 각각의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직한 조선생(김홍파), 술을 좋아하는 시인 임동익(우현), 기자 박훈(김태훈), 어학회를 부드럽게 하는 구자영(김선영), 아내 옥바라지를 하는 민우철(민진웅) 등은 실제로 존재할 법한 독립운동가들을 보여준다. 특히 그들의 과거 동료가 일본 쪽으로 넘어갔을 때의 반응이나, 형무소에 있는 아내를 위해 하는 행동, 동료를 지키려 자신을 희생시키는 모습들은 일제시대 조용한 곳에서 나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판수를 연기한 유해진은 그가 가장 잘하는 특유의 연기가 영화와 매우 잘 어우러져 관객의 시선을 끈다. 많은 캐미스트리를 보이는 상대역인 정환역의 윤계상도 심각하지만 부드러운 지식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 <말모이> 장면

영화 <말모이>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판수의 딸 순희(박예나) 일 것이다. 호떡에 미소를 날리고, 어학회의 멤버들에게 사랑받는 순희는 그에게 붙여진 이름처럼 그저 순한 어린 아이다. 그 순희는 주인공들이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언어에 대한 사랑을 대신한다. 그 순수함대로 순희는 한국어를 편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곳곳에서 민들레를 보여주며 강조한다. 민들레의 잡초와 같은 생명력, 무리 지어 곳곳에 피어나는 모습,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모습 등을 통해 그 당시 삶을 살며 아주 작게나마 일제에 대항했던 모든 서민들을 기린다. 실제로 영화는 서민 판수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대신 표현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판수가 변화되는 과정을 서서히 보여준다.

영화 <말모이>는 그동안 우리가 많이 봐왔던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글을 지키려 노력했던 그 당시의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며 그들이 가졌던 정신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영화 내내 주요 인물이 지키고자 했던 언어, 한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많은 관객들의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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