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는 오프닝부터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러빙 빈센트>는 오프닝부터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 판씨네마(주)

  겨울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날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영화 모임 친구들과 <러빙 빈센트: 비하인드 에디션>을 같이 보았다. 2017년에 개봉했을 때에도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칭찬에 관심이 가던 작품이었지만 지방에서는 개봉관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2018년에 감독의 못다한 이야기가 추가된 '비하인드 에디션'으로 재개봉을 했다. 게다가, 그 사이에 포항에도 독립영화 전용관이 생긴 것도 운이 좋았다. 

'이 영화는 1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애정을 주었던 대상들

알려진 바와 같이 <러빙 빈센트>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장면을 고흐의 원본 작품에 기초해, 유화 작가들이 새롭게 손으로 그려냈다. 이번에 재개봉하면서 추가된 후반 20분은 그들이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재개봉관을 찾는 관객이라면,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 이어지는 추가 장면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의 장면은 모두 고흐가 바라보았던 세상의 풍경들과 만났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애니메이션의 단축 프레임 촬영 기법을 고려하더라도, 107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필요했던 1천 개 이상의 장면을 고흐의 작품에 기반해 새롭게 그렸다니 놀랍지 않은가? 영화는 장면을 연결할 이야기를 고흐가 세상을 떠난 1년 후의 시점으로 잡고 고흐의 죽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상상해 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화자들은 고흐가 애정을 갖고 그려내었던 인물들이다.

 
고흐의 작품에 등장했던 오베르 시청사 작품에 등장했던 모습대로 유지하고 있었어요.

▲ 고흐의 작품에 등장했던 오베르 시청사 작품에 등장했던 모습대로 유지하고 있었어요. ⓒ 이창희

 
애니메이션의 모든 프레임은 후배 예술가들이 고흐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게다가 그 화려한 장면은 고흐의 마지막 날을 되짚어가는 미스터리로 채워져 있으니, 고흐를 기억하고 싶은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테오와 조, 여기는 정말 아름다워. 북쪽의 모든 것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 -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자신의 마지막을 보냈던 프랑스 북부의 작은 마을 오베르(Auvers-sur-Oise)에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낸다. 2015년의 어느 날 나는, 고흐를 평생 괴롭혔을 우울감과는 그의 웃음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갖고 오베르로 가는 열차를 탔었다. <러빙 빈세트>에서 마주치는 모든 장면은 내가 그곳에서 만났던 초록의 자연, 푸른 하늘과 겹쳐져 있었다. 내가 걸었던 오베르 거리를 고흐가 캔버스를 든 채 걷고 있었다. 아르망 롤랭은 고흐의 마지막을 찾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고흐는 여전히 그 마을에 남아있었다.

가끔 제주를 찾을 때마다, 이중섭 작가가 머물렀던 마을에 들르곤 한다. 시간의 흐름을 모두 품어내고 있는 거리는 이미, 그가 살았던 시대를 삭제해 버린 것만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에 비하면, 덜컹거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파리에서 1시간 정도 나왔을 뿐인데, 여전히 이 마을 전체가 고흐가 살았던 100년이 넘은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들의 역사에 대한 존중은 언제이고 가장 큰 부러움이다. 

삶의 무게

 
가쉐 박사의 정원 영화에서 마르그리트 가쉐가 장미를 꺾고 있던 그 곳이네요.

▲ 가쉐 박사의 정원 영화에서 마르그리트 가쉐가 장미를 꺾고 있던 그 곳이네요. ⓒ 이창희

  
두 사람이었지만, 한 마음이었다.  고흐는 오베르에 묻혔습니다. 동생 테오도 고흐의 옆에 나란히 묻혔어요. 묘지의 담장 너머로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던 오베르의 들판이 보입니다.

▲ 두 사람이었지만, 한 마음이었다. 고흐는 오베르에 묻혔습니다. 동생 테오도 고흐의 옆에 나란히 묻혔어요. 묘지의 담장 너머로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던 오베르의 들판이 보입니다. ⓒ 이창희

 
"아직은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지만, 언젠가는 나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이 보잘것없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 빈센트 반 고흐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삶을 살다 보면 무너질 수 있어." - 우체부 룰랭


고흐가 짊어진 삶의 힘겨움을 후대가 쉽게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를 '평생 동안 동생에게 의탁했던 실패한 예술가'로 몰아세울 수도 있겠지만, 고흐의 삶과 죽음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폴란드의 작업실에 모여들었던 후배 예술가들의 노력을 보고 난 감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는 예술가들의 노력을 보면서도, 고흐의 인생을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이었지만, 한마음이었다." - 테오 반 고흐  

요즘 들어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 많다. 놀라지 마시라. 어떻게 하면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삶에 대한 자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이런 면에서 고흐의 삶은 어땠을까? 살아있는 동안 그에겐 테오가 있었고, 10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그를 위한 작업에 모여든 후배들을 보고 있자니, 그는 분명 굉장한 삶을 살아냈음이 분명하다.  제발, 고흐 자신도 그가 견뎌냈던 삶이 행복했다 느꼈기를 바란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나의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 빈센트 반 고흐
오늘날의 영화읽기 러빙 빈센트 비하인드 에디션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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